수업 시간, 선생님은 정확하고 검증된 정보를 전합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고개를 떨군 채 졸거나 딴청을 부립니다. 반면, 밤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읽은 ‘충격적인 이야기’에는 눈이 번쩍 뜨입니다. 마치 세상이 감춰둔 비밀을 자기 혼자 발견한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요?
사실 우리는 정보를 얻는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쉽게 얻은 건 덜 가치 있다’고 여기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건 단순한 게으름이 아닙니다. 심리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인간의 본능이죠.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인간은 원래 생각하는 데 에너지를 아끼려는 존재입니다. 교과서에 적힌 정보, 선생님이 알려주는 지식은 쉽게 얻어지니 ‘머리를 많이 쓸 필요가 없는 정보’로 분류됩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귀를 닫아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인터넷을 뒤지고, 커뮤니티 글을 몇 시간씩 읽으며 직접 얻은 정보는 내가 공을 들였으니 더 소중하고, 더 신뢰할 만하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심지어 그 정보가 틀렸을 가능성도 있는데 말이죠.
여기서 또 하나의 심리가 작동합니다. 바로 노력-정당화(Effort Justification)입니다. 고생해서 얻은 정보는 내 머릿속에서 스스로 ‘가치 있는 정보’라고 포장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애쓴 것을 헛수고로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인터넷에서 수고를 들여 찾은 정보는 과도하게 믿게 됩니다. 반대로 학교에서 공짜로 받은 지식은 노력 대비 성취감이 없으니 '시시한 것'처럼 느껴지는 겁니다.
여기까지도 모자랍니다. 사람은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습관도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합니다.
마치 학생 A가 학교에서 배우는 경제 원칙이나 과학적 사실보다는 인터넷에서 찾은 음모론에 더 쉽게 설득당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가 이미 믿고 있는 이야기’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논리보다 감정이 우선인 거죠.
이쯤 되면, ‘도제 효과(Endowment Effect)’가 작동합니다. 내가 손에 넣은 물건이나 정보는 실제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갖는다고 착각하는 현상입니다.
쉽게 말해, 내가 돈 주고 산 물건은 남이 봤을 때보다 내가 더 좋아 보인다는 심리와 비슷합니다. 정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고생해서 찾은 정보니까 ‘맞을 거야’라고 뇌가 착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심리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다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입니다.
지식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무지를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를 과신하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그래서 지식이 적을수록 '이거 진짜야!'라고 확신하고, 틀린 정보를 더 적극적으로 퍼뜨리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인간은 ‘쉽게 얻는 것’은 무가치하게 여기고, ‘애써 얻은 것’은 진실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위에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 편향’, ‘내가 가진 건 더 가치 있다’는 도제 효과, ‘내가 똑똑하다고 믿는’ 다닝-크루거 효과가 한꺼번에 작동합니다.
결국, 인터넷에서 주워온 ‘자극적이고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맹신하게 되는 것이죠.
공부는 힘들어하고, 커뮤니티 속 음모론은 진리처럼 믿는 심리. 생각보다 복잡하고 깊은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1. ‘내가 찾았으니까 맞겠지’라는 착각 내려놓기
내가 애써 찾았다고 해서 반드시 옳은 정보는 아닙니다. 내가 수고한 만큼 정보를 더 객관적으로 검토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2. 검증된 출처 먼저 체크하기
네이버 블로그나 커뮤니티 글보다, 뉴스, 학술자료, 공식 사이트의 정보를 우선적으로 살펴보세요. ‘출처가 어디냐’는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듭니다.
3. 내 신념과 반대되는 정보도 일단 읽어보기
불편하더라도 반대되는 정보도 한번은 눈여겨보세요. 확증 편향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4. 비판적 사고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전제로 시작하기
정보를 읽을 때 ‘이거 맞을까?’가 아니라 ‘혹시 내가 틀릴 수도 있지 않을까?’를 먼저 생각하면 실수가 줄어듭니다.
5. ‘정보 소비 습관’도 훈련된다
정보를 의심하고, 검증하고, 비교하는 습관도 반복하면 능력이 됩니다. 꾸준히 연습하면 자동적으로 ‘정보 필터링’이 되는 시점이 옵니다
정보를 의심하고, 검증하고, 비교하는 습관도 반복하면 능력이 됩니다. 꾸준히 연습하면 자동적으로 ‘정보 필터링’이 되는 시점이 옵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더 똑똑해져야 하는 게 아니라, 더 신중해져야 하는 시대입니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이 정보를 다루는 태도만큼은 조금 더 성숙해졌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