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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지 못한 뇌, 쉬지 못하는 돈 고민

퇴근을 했는데도 머리가 복잡할 때가 있죠.
단순히 생각이 많아서가 아니라,
아직 ‘일하는 뇌’가 완전히 꺼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뇌과학에서는 우리의 뇌가 두 가지 회로로 작동한다고 말합니다.
집중하고 문제를 해결할 때 활성화되는 TPN(Task Positive Network, 작업 모드 회로),
그리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 자연스럽게 켜지는 DMN(Default Mode Network, 휴식 모드 회로).

문제는 현대인의 뇌가 하루 종일 켜져 있던 TPN의 스위치를 쉽게 끄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회의가 남아 있고, 메신저가 울리고,
‘내일 해야 할 일’을 계속 시뮬레이션합니다.
몸은 소파에 앉아 있어도,
뇌는 여전히 사무실 한가운데 서 있는 셈이죠.


이때의 상태를 연구자들은
‘인지 부하(cognitive load)’라고 부릅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과제나 감정이
작업 기억(working memory) 속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ChatGPT Image 2025년 10월 21일 오전 11_29_41.png

생각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닫기.


그래서 퇴근 후 진짜 필요한 건
‘덜 생각하기’가 아니라 ‘닫기’입니다.
오늘의 일을 종이에 적어두고,
머릿속 작업 테이블을 비워내는 것.

이렇게 기록을 남기면 뇌는 그 일을 ‘대기 모드’로 전환합니다.

“이건 저장됐으니, 나중에 다시 열면 돼.”

그제서야 뇌는 감각 모드로 넘어갑니다.
커피 향, 음악의 리듬, 발끝의 바람이
조용히 인식되기 시작하는 순간 —
그게 바로 ‘스위칭 투 센서 모드(Switching to Sensory Mode)’입니다.


미래에 대한 계획도

결국 뇌의 퇴근과 같다


이건 돈을 다루는 우리의 태도와도 닮아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란 결국
끝나지 않은 업무처럼 뇌의 작업 공간을 차지합니다.

“내 노후는 어떡하지?”
“아이 교육비는 감당될까?”
이런 생각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죠.


그럴 때 계획을 세우는 행위는 그 불안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잠시 대기 모드로 옮겨 두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가계부를 쓰고, 목표를 정리하고,

‘이 정도면 된다’는 기준을 세우는 일은
단지 숫자를 맞추는 작업이 아니라
그 순간 뇌가 현실에 집중할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 주는 시도일 수 있습니다.


즉, 재무 계획은
미래를 통제하려는 수단이라기보다,
지금의 불안을 다루는 방법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계획을 세운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지만,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고민의 회로’를 닫고,
현실을 살기 위한 감각의 모드로 전환될 여지를 얻게 되니까요.


오늘의 퇴근, 그리고 고민의 퇴근


일에서의 퇴근은
뇌의 스위치를 잠시 내려놓는 일이라면,

고민에서의 퇴근은
불안을 잠시 대기 모드로 옮겨 두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일을 내려놓듯,
걱정도 잠시 내려두는 연습.
그때 비로소
우리는 ‘생각하는 사람’에서 ‘느끼는 사람’으로
조용히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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