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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n Park Feb 01. 2021

차라리 그 겨울이 더 따뜻했던, 영화 <블라인드>


눈이 보이지 않는 루벤(요런 셀데슬라흐츠)의 난폭함은 현악기의 소리들과 신경질적으로 위태로움을 더한다. 알비노증을 가진 마리(할리나 레인)가 루벤에게 책을 읽어주는 낭독자로 고용된다. 극의 초반 분위기는 채도를 낮추어 거의 흑백처럼 보이는 효과를 주었다. 명도를 낮추고 콘트라스트를 주어 짙은 어둠과 밝은 빛의 차이를 더 깊게 하였다. 눈이 보이지 않는 루벤을 향한 카메라의 시선은 정적이거나 루벤을 중앙에 두지 않는다. 마리와 루벤이 긴장감 넘치는 관계의 설정을 마리와 루벤을 한 프레임으로 잡으면서도 마리를 뚜렷하게 루벤을 흐릿하게 잡기도 한다. 팽팽한 대립의 관계였던 루벤이 변화하며 마리에게 호기심을 갖게 된다. 차갑고 어두운 톤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둘의 감정이 발전함에 따라 영화는 색을 입고 밝음과 따스함이 극대화되기도 한다. 마리와 루벤의 감정의 파고에 맞춰서 명 채도의 톤이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겨울의 한가운데 한적한 곳에 위치한 루벤의 집은 외부 세계와의 분리된 것처럼 보인다. 흉측한 외모라고 학대받았던 마리의 마음은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 마리와 루벤은 감정이 커지면서 갇힌 세계를 깨고 꿈과 현실 사이 어딘가에 있을 듯한 둘만의 감정의 공간을 만든다. 손으로 만지며 세상을 보는 루벤은 학대의 흔적이 있는 마리를 아름답다 한다. 그의 손길에서는 흉터도 얼음꽃이 된다. 루벤의 엄마(카텔리네 버벡)와 마리는 누군가가 줄을 놓거나 힘을 주어 잡아당길 수 없는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눈 수술의 소식을 듣게 되자 루벤은 잡고 있던 마리의 손을 놓게 된다. 눈을 떠 루벤이 보게 될 자신의 모습이 두려운 마리는 결국 루벤을 떠나고 엄마마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 홀로 된 루벤은 마리를 찾는 여정을 펼친다.




제공 -컨텐츠 썬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을 모티브로 만들었다. 사람과 사물의 좋고 아름다운 면을 반영하지 못하고 나쁘고 추한 면만을 비추어 주는 거울 조각이 박힌 소년 카이를 구하는 소녀 게르다의 이야기이다. 영화 <블라인드>를 보고 있으면 누가 과연 거울이 박힌 카이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거울을 보지 못하고 거울을 가리던 마리가 사랑을 깨닫고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속옷 차림이던 루벤이 옷을 갖춰 입기 시작하고 마리와 집 밖으로 나가기 위해 외투를 입고 결국 눈을 뜨면서 안경을 쓰고 거울 앞에 선다. 그 둘은 서로에게 삶의 의지였고 성장의 동력이었다. 누군가의 진심이 거울에 담긴다면 이 이야기의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 눈을 뜨고 세상을 볼 수 있는 루벤은 보이는 것이  더 뚜렷해질수록 견딜 수 없게 되고 차라리 볼 수 없던 그 겨울이 따뜻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루벤의 사랑은 여전히 떠난 마리를 향하고 있고 그 마음을 어떻게 사용할 수 없는 혼돈스러운 상태가 되어 결국 파괴적으로 새로운 자기 서사를 만든다.



사랑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을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는 과정이다. 루벤에게 마리는 눈이 되어 의존적인 사랑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루벤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자각하고 미묘하고 운명적인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된다. 결국 하나가 되려는 슬픈 융합의 욕망을 보여주며 자신만의 밝고 따뜻한 세상에 도달했다.



서재의 책 냄새, 얇은 커튼 사이로 마주하고 있는 두 사람의 촉각, 스케이트로 얼음 위를 가르는 소리, 마리의 향을 맡는 루벤, 계획된 조명의 분위기, 축음기 미술품 등 소품들이 대사로 전달될 수 없는 몽환적이며 동화적인 분위기를 내며 감각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매드 맥스’ ‘데드풀’ ‘배트맨 대 슈퍼맨’ ‘툼레이더’의  음악을 했던 정키 XL가 선보이는 감각적인 음악과 클래식한 선율도 극을 이끄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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