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일까, 끝일까

40대 후반 여자 팀장으로 살아가기

by 이름없는선인장

2년 만에 다시 팀장 발령을 받았다.

너무나 갑작스레 통보를 받았고,

아무런 준비 없이, 그럼에도 어렴풋이

무엇이 예견될지 대충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맡은 팀 자체가

워낙 모두가 맡고 싶어 하지 않는 자리여서

팀장을 맡고 나서,

나에게 우려 섞인 축하 인사를 했다.

다들 내게 "괜찮냐" "실장님과 잘 지내냐"라고

떠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약간의 불쌍한 눈빛으로 말없이 감싸

안아주기도 했다.


어쨌든 그런 자리에서의 시간은 예상하던,

예상하지 않았던 그 이상이었다.

회오리와 태풍의 중심에 있듯,

휘몰아치듯 시간이 흘렀다.

버티면, 오는 기회, 아니 승진은 기회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


항상 말로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일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적어도 내가 원하는 선택이 아니었을 때에는.

나는 그렇게 월급에 포함된, 정치적 성향과 외향적 성향을 가지기 힘들 다는 것을.

사람들은 연기를 하라고 말하고, 자존심도 버리고, 비굴해져야 한다지만.

어디까지 내 자신을 내려놓고

일을 해야 하는 것인지.

모든 돈 버는 일이 다 이렇게 자신을 버리는 일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냥 모든 것이 내게 맞는 옷이 아니어서일까.

상사와 180도 다른 성향이어서 힘든걸까.




이번에도 팀원들은 다 세팅이 되어 있다.

다른 점이라고 하면, 모두 주니어급이나 입사한 지 4~5개월 정도의 팀원이라는 것.

그러나 팀이 맡는 업무는 시니어급에서나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일들.

내부 상황에 대해 알려주거나, 히스토리를 아는 팀원이 전혀 없다.

예전엔 그래도 팀원들에게서 그런 부분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팀장이 되고 자리에 있는 시간은 1시간 남짓.

회의의 연속에, 후속 보고도 하루나 이틀 안에 빠르게 보고하길 원하는 상사.

그리고, 팀장님에게 보고하고 피드백이나 결재를 기다리는 팀원들.

지난 한 달, 나는 끊임없는 야근과 주말에도 버겁게 새롭게 탄생한 팀을

잘 이끌어보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팀의 R&R은 명확하지 않았고,

실장님이 시키는 일들을 쳐내기에도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도 실장님의 의중을, 지시사항을 한 번에 알아듣는 사람들도 흔치 않았다.

그전에 팀장이 왜 3개월 만에 퇴사했는지,

왜 꼭두각시 같은 기분인지.

그리고, 나는 하물며 그 전 팀장이 제대로 해놓지 않는 일들을

정확한 지시사항도 모른 체 수습하느라 힘든 시간을 겪고 있다.


팀원들에게도 왜 해야 할지 가끔은 설득을 시키고,

수정 보고에 힘을 기울여도, 지시 사항이나 수정 방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3-4시간을 붙들고 같이 보고서 작업을 하는 것도 너무 힘이 들었다.

직책 수당에 이 정도의 업무 강도가 추가된다면,

차라리 워라벨이 있던 기존의 삶이 더 나은 것 같다.



이게 정녕 나은 삶일까?


매일 두통을 달고 살고, 어지럽고, 체력이 떨어져서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잠도 부족하고, 머리도 무겁고, 혈압은 정상이지만, 빈혈이 온 것 같다.

입맛도 없고, 머리는 과부하에, 지난 한 달이 한 일 년 같았다.


친구가 말한다.

'그곳에 버티고 있다고 해서 버티는 게 아니다. 그렇게 힘들다면"

나이가 들어, 어느 한 조직에 버티는 것이, '존버'하는 것이 이기는 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행복하지 않다면, 과연 그게 내 자신을 위한 시간일지.

지금 당장 퇴사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이렇게 그 자리에 버티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칭찬은 하지만.

내가 내 자신을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나를 위한 삶이 무엇인지.


이제는 내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결단코 아니라고 단언하지 않아야 한다.

삶에선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고,

내가 의도하는 데로 되지도 않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적어도 하루에 10분, 나를 위해, 내가 하고 싶은 일에 꼭 투자하는 것으로

하루하루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버티자라고 생각한다.


이 나이가 돼서도 받는 질문,

"넌 뭘 할 때 제일 행복해?"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인생.


아직 내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일까.

이게 시작일까, 끝일까.

아직도 내 자신을 모를지언정

오늘 행복하지 않다면

이 선택이 딱 버틸 만큼만의 선택이기를.

그리고 편해질 수 있는 선택도 할 수 있음을.

모든 것은 열려있다고 다짐해본다.


불안정한 미래에

나 또한 불안정한 것은 자연스러운 거겠지.

답이 없어도 살아지는 인생.

40대 후반에서 내가 보는 인생은

살아지는 데로 답을 찾아가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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