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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름없는선인장 Oct 14. 2023

퇴사, 나만 하는 건 아니지...

내가 퇴사하고 3개월이 채 되지 않았는데,

빌런 1과 2의 퇴사 예정 소식을 들었다.

허무했고, 화도 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빌런 1의 '화려한'

(공식/비공식) 퇴사 송별회와

끊임없는 회식 자리의 일화들을 들었다.


동시에 도망치듯 나온 나의 퇴사날이 생각났고

세상에서 제일 힘들었던 나의 마지막 근무 일주일이

스쳐 지나갔다.


시간만 다를 뿐, 같은 공간,

같이 일하던 팀장들이나 팀원들이

한 퇴사자와 대하는 '이별'의 자세에 약간 화가 난다.

서운함이었을까. 비참함이었을까.





퇴사 시, 그가 건넨 마지막 사과는

어찌 보면 나를 위한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의 죄책감을 덜거나

내가 나가서 고소를 하는 걸 막기 위한 게 아니었을까.


그리고 오히려 남는 팀원들에게,

적어도 나를 또 다른 면에서 힘들게 했던

내 선임 팀원들에게, 어른으로서

예의를 갖추라고 해야 하는 게 필요하지 않았을까.


오히려 그들만이 만든 리그에서,

나는 마지막 날까지 투명인간이었다.


퇴사 후 3개월이 되어가는 지금,

빌런 1의 송별회에는 영상제작, 롤링페이퍼, 감사패 등이 이벤트처럼 진행되고,

빌런 2도 이번 달까지만 재직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그와 함께 가냐고 했지만  그녀는 아니라고 했다고 한다.

나도 그녀가 그를 따라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퇴사하는 날에도 본인의 곧 다가올 퇴사에

내가 아닌 신임 팀장이 원인이 되어 퇴사하는 것처럼

비칠까 봐 화를 내던 사람이었으니.


그 외 팀원들이 퇴사 때

나를 위해 아무것도 안 해 준 건 아니다.

팀장들도 환송회를 안 해 주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특정 선임 팀원들은

마지막 날까지 아무 인사도 하지 못했다.

퇴사 이메일이나 카톡방에서도,

그들은 침묵 밖에 하지 않았다.


내가 팀장이었을 때도

내가 투명인간인 것처럼

실장님과 셋이서 주기적인 점심을 먹으며

'모임'을 만들었던 선임팀원들.


내가 팀에서 선임으로 믿고 의지해야 했지만

팀워크를 이루어내기 힘들었던 그들만의 반항.

내가 퇴사할 때 마지막 인사조차 없던 그들이

빌런 1의 송별회를 준비하고 하물며

회식자리에도 참석했다고 하니, 그저 허망했다.

(한 명은 계열사로 가서, 현재 같은 소속도 아니었다.)


내 팀원들이라고 나를 꼭 다 좋아할 필요도 없고

내가 그들을 질투하는 건 아니다.

나도 내가 모신 모든 팀장이나 임원을

다 좋아했던 건 아니니까.

지금 연락하는 모셨던 상사는 한 두 명 정도이니.


내가 이리 신경 쓰는 건

어찌 보면 그들에겐 내가 팀장으로서,

그들의 신임을 얻지 못했다는 게,

나에겐 리더로서의 첫 '실패' 같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배려나 존중이 없었서 힘들었던 그 시간들이

정말 어제일처럼, 치가 떨리던 그 힘든 시간의

그 생생한 기억 속에


나의 초라하고, 처참했던 리더로서의 내가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방치되었던 그 시간의 내가

미안함과 억울함에 누구라도 탓을 하고 싶었을까.


지금의 나의 상처가, 나에게 유독 더 또렷하고

깊은 상처에 지금도 허덕이게 된 내가 억울했다.

그래서 그렇게 기쁘게 서로 각자의 퇴사를

축하하고 아쉬워하는 그들의 모습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퇴사하고 회사 소식을 듣게 된 것은

오히려 거의 맨날 연락하는 후배도 아니었고,

동료 팀장도 아니었다.


후배는 일부러 빌런 1,2 등 회사 이야기를

나한테 먼저 하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현재 몸이 좋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신경 쓰면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았을 걸 아니까.

그래도 어쩌면 나는 상대적 박탈감에 그들의 불행을 들었으면 했을 거다.


수시로 모든 회사의 정보통을 옮겨주던 다른 팀장은

오히려 이번 빌런 1과 2의 퇴사 소식에 대해서 한 마디 연락이 없다. 또 다른 팀장은 빌런 1의 퇴사 소식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와 잘 맞는다고, 그 사람과의 이별을 슬퍼한다고

그 사람들이 이상하거나 야비하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내가 그의 타깃이 되고, 이용당하는 것을 보았지만

성향도 달랐던 그들이 그저 '나였으면 그렇게 안 할 거라는' 말과 함께 내 자리를 대신할 생각도 없었다.


그저 달라진 일상 속에 나는 퇴사자로

그들의 일상에서 빠진 건 뿐인데

그들에게 섭섭함은, 내가 다가갈 수 없는 지금

나만의 1인칭 투정인 것도 안다.





오랜만에 들은 회사 소식에

나는 어제 악몽(회사와 관련된 꿈)을 꾸었다.


빌런 1의 마지막 출근날에 내가 굳이 회사를 가서

회사 동료들을 만나며 분위기를 살피고

친했다고 생각했던 팀장들이

변해 있는 낯선 모습을 맞닥트린다던지

빌런 2와 마주치는 꿈이었다.

이런 꿈을 꾸게 된 내가

유치하고 한심하지만 그만큼 과거의 상처가 아직 치유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그들이 상처를 줬기에 빌런이고

내가 비련의 피해자라고 계속 주장하고 싶은 걸까.


어느 환경이나 상황에서는

서로 다른 주장과 의견이 있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나는 이렇게

마지막으로 퇴사자로서

전 회사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내일을 위한 글들을 쓰고 싶다.


내가 퇴사하게 만들었던 그들의 퇴사 소식에

나도 나의 퇴사에 대한 글은 이 글로 끝맺으려고 한다.


이렇게 또 다른 한 챕터에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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