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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름없는선인장 Oct 05. 2023

퇴사 후 3개월째 - 빌런 1의 퇴사 소식

*지극히 개인적인, 나만의 퇴사 후 이야기.


황금 같은 긴 추석 연휴는

백수에게는 그저 평범한 날들에 불과하다.

사회인이 아닌 신분이 되니, 형식적으로나마 오가던

인사메시지도 없던 조용한 날들이었다.


나는 퇴사 후 두 달 사이에 암환자가 되었다.

난생처음, 하나도 아닌 두 가지의 진단을 받았다.

(암 종류도 여러 가지고, 다행스럽게 치료만 하면 생명에 지장은 없다.)


진단을 받는다고 바로 치료가 시작되진 않는다.

치료 전에도 끊임없는 검사들을 진행하고, '최종확진'에 '병기' 정도까지는 파악되어야 암치료가 시작될 수 있다.


그 기나긴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조직검사 > 진단 > 추가 검사 > 결과 기다리기를 반복하며 치료를 확정하기 전까지 피 말리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병원 최종 결정, 전원이 있을 수도 있고... 질병과 관련된 환우 카페 가입, 정보 수집, 투병 일기 등 을 지속 접하며 걱정 가득한 정보의 홍수 속에 마음이 더 편하진 않지만, 적어도 지금 이 치료의 시간을 좋은 기회로 삼자고 매일 다독인다)




두 개 중 조직검사 결과를 들으러 외래 가는 길.

전 회사의 팀장님이 안부 인사를 주셨다.

내 건강은 어떤지… 차마 얼버무리며 정확히 말은 하지 못했다.

뭐 좋은 일이겠나... 히스토리를 말한 들, 병과 싸우는 것은 오롯이 이제 나의 몫이다. 반반의 기분이다. 예전에는 병은 알리면 알릴수록 빨리 낫는다고도 했지만,

친한 사람이 아니면 알리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계속 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가끔 이직이 궁금하여 잘 살고 있냐는 안부 문자에도 답할 문장을 준비해 두어야 할지, 아프다고 말해서 빌런 1에게 죄책감이라도 줄 수 있다면 퍼트려야 할지 여러 생각이 든다. (나만의 착각이겠지만)


소식을 전 해 준 팀장님은

퇴사 전 다른 곳에 면접 보고 합격해서

이직을 어쩌면 같이 한다고 했었는데

지금까지 그 직장에 다니고 있다.

(그 두 달 동안 본부장 면담까지 하고

잔류하기로 했다고.(벌써 후회한다며 연락을 했다)

그러면서 나를 괴롭히던 직장 상사, 자칫 빌런 1이

10월 중순에 퇴사한다는 뉴스를 던져 주신 거다.

순간 그 소식에 좀 억울하고 화가 났다.

난 병원 내 벤치에 앉아있었을 때 소식을 접했다.

이렇게 빨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그렇게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하고...

얼마 안 돼서 이렇게 집에 가신다니

(물론 집에 가신다는 그 표현을 다 믿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미리 알았다고 한 들, 내가 퇴사를 그 시점에 안 했을 거란 건 아니다.(지금도 몸이 이 모양인데) 단지 그냥 알았다면 내 마음에 위로가 되었을까?


날씨까지 스산해지는 요즘.. 더 마음이 씁쓸해진다.

지난 시간들을 다시 생각하니 이런 소식들이 종종 들려올 것이고, 혹시 빌런 2까지 퇴사를 한다고 내가 기뻐하거나 뭔가 후련해질 것 같지는 않다. 그냥 씁쓸함만이 남는다.


사람들은 그분의 퇴사 소식을 전하여 내 반응을 본다.

내 퇴사 사유에 50프로 지분이 있다는 걸 알기에.

내가 해 준 말은 '대박' '좀 화가 나네' '원망스럽네'.. 였고, 보란 듯이 당당하게 잘 지내고 있지도 못하니, 그럼에도 더 중요한 건 솔직히 이젠 별 감흥이 없다. 분명 감정을 다시 싣는다 해도, 그때를 떠 올려봤자, 지금 내 현실에서 내가 달라질 것 없기에


그저 그곳을 나온 나에게,

더 늦기 전에 나오길 잘했나는 생각만 든다.

이 정도인 것에 감사하자.

이 정도, 지금, 오늘... 이 정도만 아픈 것에.

인생 후반부에는 좀 더 잘 살 수 있는, 도약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인 걸로. 내 몸을 리셋하고 정비하는 시간인 걸로.


나 자신을 위해 사는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나 자신울 보호하기 위해 이제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야 하는지. 남이 나를 컨트롤하지 못하게 헤야 한다는 것을 비싼 인생 레슨값을 지불하고 있다.


오늘도 걷자. 앞으로 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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