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여권으로 가능하다면서요
해외여행을 가본 지가 10년이 넘었다. 동남아로 여행을 갔었는데 싱가포르, 발리, 세부였다.
직장을 통하여 갔었는데 그곳에서 내가 충격을 받고 여행이 그다지 가고 싶어지지 않았다.
공항에서 내리자 후덥지근한 공기와 노후된 버스의 에어컨을 보면서 어떤 여행을 상상했었는지 실망스러웠다. 또 하나는 "원 달러" 라고 외치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나는 우리나라의 구한말 시대의 아이들이 오버랩되는 것을 느꼈다. 나의 상상과 완전히 다른 모습에 짐을 풀자마자 풀빌라에서 책을 읽다가 귀국했다.
유럽을 가보았냐는 말에 유럽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나라보다 문화 선진국에서는 다른 느낌일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는데 그곳도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다. 누군가의 치열한 삶의 터전이고 나는 그곳에 무엇을 보러 가는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 이곳은 가장 여행을 제대로 하고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나는 여행이 그다지 간절하지 않다.
# 왜 여행이 가고 싶어질까
어떤 사람은 쇼핑을 하러 여행을 한다. 어떤 사람은 휴양을 하러 여행을 한다. 어떤 사람은 식견을 높이고 싶어서 여행을 한다. 나는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다. 외모가 출중하지 않고, 그 부분으로 예민하지 않아 외적인 것에 관심이 없어서가 가장 큰 이유이고, 개인적인 성향인데 쇼핑하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쇼핑하는 내내 들기 때문이다. 복잡함을 잊고 싶으면 너튜브의 자기 계발 콘텐츠를 보는 게 훨씬 더 리플래쉬가 일어나는 것을 나는 매번 느낀다. 쇼핑천국에 이미 살고 있고, 집은 너무나 편안하고 안락한 보금자리이며, 너튜브나 내 직장이나 사회 공동체에서는 다양한 인간의 식견이 무수히 존재하고 이미 너무 포화상태여서 제발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을 때도 너무 많다. 그러면 이것은 내 삶 속에 다 들어 있는 것들이다. 여행과 나의 삶이 공간이동을 제외하고 똑같다는 것이다.
나의 여행의 본질적 목적은 무엇인가... 똑같은데 왜 가려고 했는가... 그것은 휴양하고 싶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궁색하고 전혀 미학적이지 않는 이 현실을 벗어나서 다른 세상으로 가서 스위치를 끄고 싶어 하는 것이다. 현실의 시름을 잊고 싶기 때문인데 내가 속해있는 공동체의 공간을 벗어나면 현실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잠시 순간은 다른 공간에서 잊어버리기도 한다. 현실을 잊고 싶어 하는 것이 나에게 여행인 것이다. 그런데 나의 여행은 현실을 떠나서도 현실을 떠나지 못했다. 내내 직장에 대한 고민이 머리 한 곳에 머물고 있었다는 느낌이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느껴진다.
#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내가 떠났어야 할 여행은 나 자신에게 떠나야 했던 것임이 밝혀졌다. 나는 현실을 무시하지 못하고 있다. 현실에 갇혀있다. 현실이 힘들 때는 현실을 잊고 삼일 정도 지내면 오히려 새로운 에너지가 발생한다는 것도 안다.전전긍긍하지 않아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을 일은 일어나지 않는 데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내 인생의 핸들을 잡으려 굳이굳이 애쓰는지 나도 나 자신의 용감무쌍함에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결국 나의 내공의 정도가 거기까지라는 것이다. 끌끌끌...
내 의식은 내 삶은 여행이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자아는 여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삶은 감추고 싶은 치부이자, 이제 막 겨우 일어난 나의 심난한 모습 같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싫은 이유는 나는 멋져 보이고 싶다. 나는 내가 바라는 나이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현실에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여행을 통해서 잠시 여왕과 왕이 되어보고 싶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여행의 목적은 자기 객관화
또 한측면은 자신을 객관화하고 싶은 것이다. 현실에선 내가 잘 보이지 않고 내 감정만 뒤섞여진 길고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므로 새로운 나를 만나고 싶은 것이다. 감정이 없는 이성적인 나의 모습 보고 분석하고 평가하여 뭔가 새로운 길을 찾고 싶어서 말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자기 객관화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나의 경험담이다
책을 읽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책을 읽을 때는 책임감은 없다. 그저 저자의 생각이 나와 비슷한가 다른가 합당한가 창의적인가 배울 점이 있는가를 본다.
나의 뇌에 신선한 자극을 찾는 향상성인 것이다. 인간만이 갖는 유일한 본능 말이다.
# 저는 여행을 가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여행을 가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다. 유럽은 누구나 가보고 싶은 곳이지만 여의치 않으면 안 가고 죽어도 별로 상관없을 것 같다. 가면 좋고 안 가면 말고 정도. 여행을 백번 갖다 오더라도 내가 더 좋아지지 않으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내가 더 훌륭한 인격이 되지 않으면 그 시간은 소모적인 느낌이 들어서이다.
즐기기 위한 것의 경우는 다를 수 있다. 내 경우 즐기는 것의 기준이 조금 다르다. 내가 즐기는 것의 실체는 내가 쓴 글을 발행하여 보고 있을 때 즐기는 기분이다. 열심히 살고 나서 하루를 마감하며 집에서 무엇인가를 할 때 즐기는 기분이며, 기가 막힌 스토리의 드라마를 잠깐 볼 때 즐기는 기분이다. 내가 즐기는 것은 나의 활동 후의 마감을 즐기는 것이다.
나는 현실을 관망하려고 애쓴다. 내가 직접 참여하는 자가 아니라 지켜보는 자로서의 마음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내가 직접 참여하면 나무만 보이고 숲을 보지 못한다. 물론 순간순간 나무만 봐야 하는 몰입의 순간이 있다.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시선은 숲을 보고 있다. 그리고 진리를 향하여 나아간다. 그것은 선이다.
옳은 방향 말이다. 바른 방향을 향하여 나간다. 그것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때로 나의 성향과 바른 방향이 부딪히기도 하며 나는 바른 방향으로 갔다가 내 성향을 못 이기고 자주 패배자가 된다.
그것이 나의 한계점이다. 나의 메타인지를 기록하는 지점이다.
# 정말 근사한 메타인지 여행
뭐니 뭐니 해도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이 가장 즐겁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타인을 아는 것이고 세상을 지각한다는 것이며, 그 세 가지의 균형점을 더 정확히 찾아낸다는 것이다. 균형점이 보일 수록 더 정확해 질수록 실수를 줄이게 된다. 그리고 조금씩 점점 더 편안해지게 된다. 그런 기분 정말 최고로 좋다.
나무만 보는 것은 많은 오류를 낳기에 나의 대분류는 숲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무는 몰입해야 하는 순간에 보지만 그 순간조차도 내가 여행자라는 정체성을 잊지 말고 전체적인 배경은 숲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는 매일 나에게로 여행을 간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이 들지? 내가 왜 어리석은 행동을 했을까? 나는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것인가... 뭐 이런 생각들로 하루를 보낸다. 좀 더 좀 더 여행자의 관점을 강화해야겠다.
내가 온전하게 여행자가 되는 날을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