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장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것은 어떤 상황과 결과에서도 실패가 아니라는 패러다임이다. 특히나 끝없이 너는 '루저야'라고 강요하는 사회속에서 마음을 지킬 수 있고,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
특별한 나의 삶은 누군가 보기에 팔자가 사납고, 박복하고, 혹은 불행한 이라고 명명지을 수 있겠지만 자신은 이제 좀 다르게 보는 안목이 생겼다. 물론 자신도 어느 순간 현타가 오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지금의 내 현재는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니며 그리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인생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너무나 복잡하며 깊이를 알 수 없는 다양함과 본질들이 있다. 단지 우리는 먹고 살기에 너무 정신없고 바빠서 그런 인생의 법칙들을 알려고 하지 않고 그저 편하게 살고 싶어하는 것 뿐이다.
물론 자신도 편하게 살고 싶어 하는 게으름이 있다. 그리고 인생 자체가 너무나 복잡하고 많은 업무에 치여, 현대사회에는 누구나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다른 부분에는 복잡함과 부지런함이 있는데 그것은 생각하는 뇌와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이다.
그 욕구는 아마도 어렸을때 멋지고 훌륭해보였던 위인전에 나오는 사람을 보면서 갖게된 우상일 수도 있겠다.
인생을 살면서 내가 몰랐던 것들을 알아가는 일은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겉으로 보면 우리 인생이 복잡할 것은 없다. 하루 세끼 식사를 하고 일을 하고 잠을 자고를 반복하면서 100년이라는 인생을 살아가면 그만이다. 그런데 인생은 정말로 간단하지 않다.
인간의 내면은 우주처럼 복잡하다. 자신도 자신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것이 90%는 족히 될 것이다.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왜 그사람이 좋은지 알 수 없고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도 본질이 아닌 것이다.
나중에야 알게 되는 것이다. 인생에는 수없이 많은 파도가 밀려오고 멀어져 간다. 쉴새없이 몰아치는 파도를 보노라면 저 파도를 내가 만들었다는 것에 기가 찰 때가 있다. 자신 스스로가 자신을 고단하게 만든것이다. 물론 그것은 타고난 기질인 경우가 많고 그래서 자신을 알기 위해 애를 쓰곤 한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자신의 타고난 기질, 사고방식, 행동패턴 , 무의식 등등이 될 것이다. 자신을 사용하려면 자신의 사용법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현대사회는 자신 사용법을 몰라서 수많은 방황과 시행착오를 겪는지도 모른다.
실패는 더 많은 자신의 사용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우리의 청춘은 당연히 자신을 알기 위한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실패는 청춘의 특권이 맞는 말이고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다.
그런에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면 실패보다 성공을 이뤄야 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실패만 하고 성장만 하다가 인생이 끝난다는 것은 결론이 없는 느낌이다. 물론 완전한 것이 있을 수는 없지만, 성장의 나이테를 가져가야 하는 것이며, 그때문에 우리에게는 시간과 달력이 있고 1년이라는 쉽표가 있는 지도 모른다.
성장하는 자신을 보면 안심이 된다. 그래 헛살지 않았어. 허무하지 않았어.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어. 라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하지만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이 사는 것은 불행이다.
성장한 후의 자신의 삶을 펼쳐 나가야 한다.
감정을 절제 할 수 있고, 웃을 수 있고, 이해 할 수 있고, 손해 볼 수도 있고, 용서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 점점 더 커져야 한다.
또한 달려나가야 할 때와 멈춰야 할 때를 알고 있게 되었다면 그것을 할 수 있는 실력이 되어야 한다.
세상의 자기 분야에 달인이 많다. 달인의 특징은 반복된 훈련과 더 좋은 방법을 위한 고민이다.
또한 세상에 무림의 고수가 많다.
나의 시선은 그들을 향해 있다. 아마도 나는 고수가 되고 싶은 것 같다.
자기 분야에서의 고수.
성숙한 인간으로서의 고수.
고수는 전체를 파악하고, 본질을 파악하는 혜안을 가지고 있다.
그 결과치로 어떻게 대안을 세우는 것이 가장 모범적인 것인가를 알고있다. 보이지 않고 조용하며 능숙하다. 그리고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리더이다.
내 인생의 목표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삶이 특별해지는 것은 금수저여서가 아니다. 주어진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주인공의 고군분투에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