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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성 Dec 28. 2018

조직에서 뒤처질 때, ‘꼰대’가 취하는 방법

꼰대의 무기 ‘나이’와 ‘직책’

조직 내에서 실력으로 뒤처질 때, 간혹 그 차이를 ‘나이와 직책’으로 메꾸려는 사람이 있다. 즉, 부족한 실력을 감추고자 나이와 직책으로 밀어붙이는 전형적인 ‘꼰대’ 스타일을 말한다.


대부분의 상급자는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는 걸 거부한다. 젊은 신입사원이 기존의 방식보다 더 나은 방식을 가져와도, ‘내 말대로 해’, ‘까라면 까’라는 말로 되돌려 보낸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아랫사람의 능력을 배우면 자신의 능력도 훨씬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머릿속으로 이해해도 그러하질 아니한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나이도 어리고 직책도 낮은 친구에게 배울 순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랫사람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꼰대의 무기인 ‘직책’은 노력으로 추월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그러나 나이로 밀어붙일 때는 답이 없다. 내가 노력한다 해서 상급자보다 한 살 더 많아지는 것도 아니고, 한국사회의 ‘나이 문화’는 더더욱 깰 수 없다. 실제 몇 개월 차이가 나지 않더라도, 연도가 다르면 대우하는 사회다. 십 년 이상 차이가 난다면, 불변이다.


나 또한 실력이 바닥이었던 적이 있고, 때문에 조직 내에서 맨 뒤로 쳐졌을 때가 있었다. 물론 직책도 ‘신입’과 다를 바 없었지만, 나이는 중간 정도였다. 그래서 나이를 앞세워 실력을 감출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나이'란 그저 숫자란 것을 깨닫게 해준 스키장 이야기

새로운 팀은 강습이 없을 때, 함께 스키장으로 올라가서 스키를 탔다. 자유스키를 탈 때도 있고, 팀장님을 중심으로 다 같이 훈련할 때도 있었다. 나는 체육학도생이 아니었지만 신체를 쓰는 것에 자신 있었다. 초등학교 내내 육상선수를 했었고, 청소년 시절부터 사회초년생까지 킥복싱, 무에타이, 수영 등을 꾸준히 했기도 했다. 그리고 나름 힘들다는 해병대도 나왔다. 그래서 다른 강사들과 훈련에서 뒤처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훈련에 임하니 허황된 자신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훈련하는 동안 팀장님은 나에게 자세교정이나 기술지도를 해줄 수가 없었다. 나는 다른 강사들보다 늘 늦게 도착했고, 도착해도 다리가 후들 후들거려 온전히 서 있는 것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강습팀에는 고등학생부터 많게 30대 중후반까지 있었다. 그런데도 20대 초반의 젊은 나에 비해서 아무렇지 않게 훈련을 받았다. 헐떡이지 않고, 힘들어하지 않는 모습이 놀라웠다. 아니, 그들도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었다. 오랫동안 훈련했고 죽을 만큼 노력해서 지금 이 자리에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쉬는 시간에 구석진 곳으로 가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내게, 강사들 중 가장 어린 친구인 고등학생이 다가왔다. 그리고 “힘들었을 텐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형”이라며 웃으면서 말했다. 똑같은 훈련을 받고도 멀쩡히 돌아다니는 것에 속으로 놀라며, “존댓말 쓰지 않아도 돼, 편하게 해”라고 말했다. 실력도 한참 낮은 내가, 무슨 자격으로 대우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말한 거였다.


"아뇨, 계속 존댓말 쓰겠습니다. 이런 건 확실히 해야 제가 편하거든요:)"


그 친구한테서 뭔가 모를 감정이 느껴졌다. 또래의 친구들과는 다른 ‘어른스러움’이라고 해야 할까. 그에게 스키와 관련 없는 것들은 일절 관심 대상이 아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스키를 잘 탄다고 해서 못 타는 사람에게 으스대는 것도 흥미 없을 것이고, 비웃을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자신보다 실력이 낮더라도 예의를 갖추는 것이다. 물론 그 친구가 애초부터 예의 바른 친구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한편으로는 ‘스키를 진심으로 대하기 때문일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멋스러움, 자만심, 겉멋에 빠져드는 게 고등학생이라면 고등학생이다. 여기에 실력까지 있다면 말 다했다. 그런데도 절제하고 통제하는 ‘어른스러움’을 보일 수 있는 것은 스키에 대한 진심 때문일 것이다.


나도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나서, ‘무언가를 진심으로 대한다는 느낌’을 대강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한때 나는 스쿼시, 스키, 웨이크보드 등 운동을 할 때마다 초급 티를 벗어나면 곧바로 거만해졌었다. 나보다 초급자를 보며 이러해라 저러해라 지적질도 했고,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며 비웃기도 했었다.


그러나 ‘아는 만큼 보인다’고 중급자 이상으로 넘어가면서 나의 행동이 부끄러운 일이었다는 것을 깨우쳤다.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이자, 그때부터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다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어려워하고 힘들어하는 기술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들을 보며 ‘겸손’이란 걸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후부터 나는 운동을 진심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내 앞에 초보자가 있더라도, 지적하거나 비웃지 않았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넘쳐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누구를 지적하고 비웃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 앞에 있는 초보자가 언제까지 나보다 아래일 리는 없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추월당하는 게 운동이다.


아마도 그때의 고등학생 친구는 나보다 이런 것들을 일찌감치 깨우쳤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에서 ‘어른스러움’을 느꼈던 것 같다. 어쨌든 고등학생 친구를 보며 문득 어수선했던 머릿속이 정리된 기분이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그리고 왜 해야 하는지를 알 듯했다. 다음날 고등학생 친구들을 찾아갔다. 그리고 말했다.


“스키를 잘 타고 싶다, 그러기 위해 강습팀에 들어왔다. 부탁한다.”


그 친구들 표정을 보니 어지간히 당황했었나 보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자신보다 윗사람이 무언가를 부탁하는 것 말이다. 나도, 전 사장님이 나에게 고개를 숙였을 때 적잖이 놀랬었다. 그래도 성격 좋은 친구들이어서 다행이었다. 놀라긴 했어도 내 눈빛을 읽었는지, 매일 저녁 시간마다 스키장에 함께 올라가 스키를 탔고, 덕분에 스키 실력이 많이 늘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어려움은 따로 있었다. 강습을 배정해주기 위해 강사들이 다 같이 모일 때였다. 강습은 지원하는 순서대로 배정하지만, 많은 인원이 겹치면 연차 높은 사람에게 양보하는 것이 예의였고 암묵적인 룰이었다. 물론 강제성은 없다.


사람이 하고자 하면 방법을 찾고, 하지 않고자 하면 변명을 찾는다

그때의 나는 가장 부족했고, 가장 필요했던 것이 ‘강습 경험’이었다. 그래서 강습 기회를 얻고자 무조건 지원해야 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암묵적인 룰 같은 것들 때문에 처음에는 그러하질 못했다. 겹칠 경우에는 연차 높은 강사에게 양보했고, 또 나보다 쟁쟁한 친구들도 많았기에, 내가 나설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묵묵히 있었다. 어쩔 수 없으니 주어진 강습이라도 제대로 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고등학생 친구를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예의니 배려니 따질 때가 아니었다. 모든 지원에 손을 들었다. 비가 오는 날에 강습을 원하는 고객이 있으면 지원해서 나갔고, 늦은 새벽에 강습이 있을 때도 쪽잠을 자가며 강습했다. 다른 강사들이 꺼려했던 외국인 고객들 혹은 몸이 불편한 친구들을 가르쳐야 할 때도 나는 손을 들고 지원했다.


비 오는 날에도 스키를 탈 순 있다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강사

고객들이 선호하는 강사 스타일은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 스타일을 갖추면 고객에게 선택받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그리고 지목률이 높은 강사는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강사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고객들이 어떤 스타일을 갖춘 강사를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 답은 현장에 있을 것이다. 고객의 마음은 고객과 직접 부딪혀봐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가 더 많은 강습을 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그러나 아직 강습팀에서 나의 위치는 맨 밑바닥이었다. 조직에서 뒤처진다는 느낌을 항상 받았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행동을 취했다.


1) 무엇을 해야 할지 그리고 왜 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 두 가지는 실행력과 추진력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것이다. 나는 현장 경험이 부족했고, 손님들을 끌어모으는 ‘힘’이 모자랐다. 때문에 많은 강습 경험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서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수없이 지원했다. 예의니 배려니 언제까지 따지고 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건방져 보일지라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닥치는 대로 했다. ‘겸손과 예의는 평소 일상에서 나와야 하고, 실전에서는 승부욕이 나와야지’라는 한 가지 신념과 함께.


2) 나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서 나이는 매우 중요하다. 실제 몇 개월 차이가 나지 않더라도, 연도에 따라 대우를 달리하는 게 중요한 사회다. 물론 나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에게는 깍듯이 대우를 취했다. 그러나 반대로 나이가 어리다고 아랫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오히려 배울 게 있으면 자존심을 내려놓고 배우려 했다.


‘나이’에 관한 생각은 레저강사 때부터 시작된 것만은 아니었다. 나이는 그저 숫자에 그칠 뿐이라는 것을 어렸을 적부터 일찌감치 깨달았었다. 특히 군대 시절에 크게 느꼈다. 나이도 많고 계급도 높았던 간부한테서 배울 게 하나도 없었던 반면에 나이는 어리고 후임이었지만 배울 게 많았던 적이 있었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일찍 입대하여 상급자가 된 경우, 그에 걸맞은 어른스러움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었다. 반면에 사회에서 늦장 부리다 입대했던 나이 많은 친구는, 나이와는 다르게 어리숙한 모습을 보여 고문관이라 불렸다. 나이와 상관없이 이병 계급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서른을 내다보는 지금의 나도 ‘나이’에 대한 생각은 변함없다. ‘나이’는 그저 숫자에 그칠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여전하다. 그러나 한 가지 욕심은 있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은 만큼 적어도 동생들에게 ‘함께하고 싶은’, ‘닮고 싶은’ 사람으로 성장하고픈 그런 욕심 말이다.



PS. 날씨에 관해서

레저스포츠의 특성상, 계절성과 날씨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스키장도 마찬가지다. 겨울에만 운영할 수 있고, 눈이 녹지 않는 추운 날씨가 좋다. 계절성은 어쩔 수 없지만, 날씨가 좋지 않다고 해서 스키장이 운영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스키장 내부 관계자가 아니라서 어떤 기준으로 개장 여부를 논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내가 본 바로는 다양한 날씨에도 스키장을 개장했다.


폭우가 아닌 이상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에도 개장했었고, 더운 날씨 때는 미리 인공설을 뿌려 놓고 개장했다. 반대로 폭설 내리는 날이 스키 타기 가장 좋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오히려 가시거리가 확보되지 않아 힘들다. 그리고 인공설과는 다르게 자연눈은 끈적끈적? 쫀득쫀득? 해서 스키가 잘 나아가질 못한다.


강습생의 유형

강습생은 대부분이 평범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의외로 다양한 친구들이 스키를 배운다. 필리핀, 베트남, 중국 친구들부터 겨울이 없어 스키를 타본 적이 없는 인도네시아 친구들도 있다. 그리고 귀가 불편한 친구(청각장애인), 의사소통이 어려운 친구(언어장애인)들도 충분히 강습을 받았다.


강습하면서 신기했다는 느낌을 받아, 여기에 쓰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이 친구들도 충분히 재미있게 강습 받았으니, 혹여 해당되는 사람들 중 망설이는 분이 있다면, 강습 받을 수 있다고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써보았다. 실제 현장에서, 망설였던 분들을 상담했던 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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