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에서 시작한다는 것 그리고 장단점
가평의 꽃, 수상레저
나의 첫 레저 활동은 가평에 위치한 수상레저였다. 충북에 살던 나로서는 가평을 갈 일도 없었고, 보트는 낚시터에서나 보던 것이었다. 그래서 보트 운전 경험도 없었고 웨이크보드나 수상스키를 타 본 적도 없었지만 무작정 짐을 싸들고 가평으로 떠났다. 적어도 물에 빠졌을 때 해병대에서 배운 전투수영이 나를 살릴 것이라 믿었으니까.
스물 두 살의 레저경험도 없던 나를, 사장님은 해병대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흔쾌히 받아주셨다. 물이랑 친하겠구나, 해병대니까. 일만큼은 제대로 하겠구나, 해병대니까. 고생한 기억만 있던 해병대가 도움 될 때도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항상 군대 얘기 나오면 해병대 출신이라는 것을 숨겼었는데, 조금은 자부심을 품어야겠다고 느꼈던 날이다.
그러나 강사를 바로 하는 것은 무리였다. 안전과 직관된 보트운전은 면허증이 필수였고, 웨이크보드는 타본 적도 없으니 누구를 가르치는 수준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손님이 되어 돈을 주고 타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웨이크보드·스키 정리부터 시작해 화장실 청소, 테이블 정리, 유리창 닦기 등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그리고 틈틈이 강사들한테 부탁해서 웨이크보드를 탔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보트 운전연습도 했다.
밑바닥부터 시작한 것이지만 분명 좋은 점은 있었다. 남들은 비용지불하고 타는 것을 나는 월급 받으며 타고, 잠도 재워주지, 밥까지 준다. 또, 나도 배우는 처지로서 손님들의 마음을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다. 초보자의 마음은 초보자가 더 잘 안다고. 손님이 ‘뭐’가 잘 안 된다고 ‘요래 안 돼요. 이래해도 안 됩니다’ 이상하게 설명하면,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는 바로 포인트를 알아채서 전문용어로 강사들에게 설명해주었다. 같은 한국인인데 통역을 하다니, 역시 나는 무역인 체질인가 보다. 다시 한 번 무역을 선택한 것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도 있고 보트도 있고, 재화와 용역을 손님과 거래하니 이것도 무역 아닌가 싶다.
반면에 단점은, 뭐랄까 직원 같지 않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나도 손님과 실력이 별반 다르지 않으니, 손님들도 나를 직원보다는 그 이하의 사람으로 대했다. 섭섭하지만 어쩌겠는가. 실력을 키울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꾸준히 노력해서 다행히 지상교육 담당강사로 올라갔다. 참고로 웨이크보드, 수상스키는 물에서 탄다. 지상에서는 탈 수가 없다. 따라서 지상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은 자세 교정밖에 없다. 여기까지 설명했으니 지상교육 담당강사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것으로 생각한다.
바닥부터 시작한다는 것
어쨌든 바닥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했다. 잡일부터 시작해야 했고, 간혹 손님들의 조롱이나 무시도 견뎌내야 했다. 그리고 전공자가 아닌 만큼 업계에서 사용하는 용어들 또는 관행을 몰라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한 적도 많다.
한번은 선배가 ‘데크(deck)를 가져오라’고 말했는데, ‘갑자기 먼 데크를 가져오라는 거야?’ 의문이 들었다. 무역에서는 데크(deck)를 선박의 갑판으로 해석해서 사용한다. 무역인이었던 나는 뜬금없이 선박의 갑판을 가져오라는 말이 이해되지 않아서 어리바리 멍청한 표정으로 선배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시켰으니 뭐라도 해야 할 듯싶어 ‘보트 위에 놓인 판때기나 방석을 가져오라는 건가?’ 생각하며 보트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있는 선배는 더 어처구니 없었겠지.
알고보니, 데크(deck)는 웨이크보드 장비를 다르게 표현하는 말이었다. 수상스키와 웨이크보드 중 웨이크보드를 타려는 손님이 방문하면 웨이크보드를 가져다 드려야 하는데, 이때 ‘웨이크보드’ 자체를 다 말하며 가져다 달라는 것은 비효율적이었나 보다. 그래서 줄인 말로 ‘보드’를 가져오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면 ‘보트’와 ‘보드’가 헷갈릴 수도 있다. 그래서 ‘보드’라는 단어를 ‘데크’라는 단어와 바꾸어서 사용했다. ‘데크’를 쓰면, 웨이크보드라고 길게 말할 필요도 없고, ‘보트’와도 헷갈릴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다.
지금 설명하고 있는 나조차 실효성이 있는가 싶기도 하고, 굳이 해야 하나 싶기도 한데, 입에 달라붙기 시작하면 확실히 ‘데크’라고 표현하는 것이 편리하다. 시끌벅적하고 바쁜 와중에 직원들끼리 빠른 의사소통이 이루어져야함에 있어서, ‘웨이크보드’는 너무 길고, ‘보드’를 가져다 달라고 했더니 ‘보트’를 끌고 오는 강사도 있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모르는 용어나 관행이 있을 때마다 자존심은 내팽개치고 집요하게 물어봤다. 그런 용어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고, 알아갈수록 나도 전문인이 되는 듯해서 나름 괜찮았다.
무지함은 잘못이 아니다
무지하다는 것은 약점이 될 수도 있고, 부끄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때때로 지나친 에너지를 써가며 노력한다. 그러나 나는 무지함을 대놓고 알리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창피함은 잠깐뿐이며 오히려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드니까 말이다.
내가 모르는 것을 들키지 않고자 질문하지 않으려 한다면, 선배들은 ‘이 녀석은 당연히 알겠구나.’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주의사항을 설명하지 않고 어떠한 일을 시킬 수 있다. 그럼 나는 주의사항도 모른 채 원래 알고 있던 것처럼 행동할 것이다. 물론 난이도가 낮은 업무라면 무지해도 그럭저럭 해낼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게 안전과 연관된 업무이고 주의사항을 꼭 숙지해야하는 업무라면 어떻겠는가? 오로지 창피함 때문에 무지함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무지함을 알리는 게 업계를 더욱 자세히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선배를 잘 만나는 운도 필요하지만, A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B, C까지 알려주는 선배도 있다. 아니면 A를 배웠더니 자연스레 B, C를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수상레저에서 웨이크보드를 배울 때, ‘서핑’이라는 기술을 배웠었는데, 나중에 겨울이 되어 스노보드를 탈 때 턴 연습에 많은 도움이 됐다.
마지막으로 무지함을 드러냈던 것이 나한테 있어서 가장 좋은 점은 ‘눈치’가 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무지함을 감추려는 손님들을 빠르게 구별할 수 있다. 눈빛이나 말투를 봤을 때, 이 손님은 잘 모르지만 창피하지 않으려고 아는 척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확 온다. 그럴 때는 티내지 않고 다른 손님들보다 더 친절하고 자세히 설명해준다. 그리고 그것은 단골손님을 모으는 나만의 노하우가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손님들 입장에서는 무지함을 알리지 않으면서도 이를 존중하며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강사를 원했을 테니 말이다.
우리 팀 강사 중에는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지금부터 알려줄 테니 제대로 들으세요.’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옳고 그르다는 것을 말하자는 게 아니지만, 굳이 손님의 자존심을 짓밟을 필요가 있나 싶다. 물론 그 친구도 베테랑 강사다. 보유하고 있는 손님도 많다. 직언이 때로는 도움 될 때도 있으니까 말이다. 확실히 가르치는 표현은 강사마다 다르고 이를 선호하는 손님도 제각각 다른 것 같다.
이제, 무지함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친구들에게, 종교는 없지만 좋은 성경 구절 한 마디를 쓰며 마무리를 할까 한다. 인생은 길다. 무지함을 드러내는 경험 한 번해본다고 해서 나쁠 건 없잖나.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PS. 웨이크보드? 수상스키? 무얼 타야 하나, 뭐가 더 재밌을까
강사마다 기준이 다르다. 청년층에 속하면 웨이크보드를 추천하고, 중장년층에 속하면 수상스키를 권하는 강사가 있다. 웨이크보드는 유연할수록 기술범위가 넓어지고 기술 특성상 관절에 무리 될 수 있으므로 청년층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반면에 엄마가 좋니 아빠가 좋니. 질문과 똑같은 의미라며 마음에서 이끌리는 것을 선택하는 강사도 있다. 불친절한 강사가 아니다. 맞는 말이다. 선수급 또는 동호인 상위급 수준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즐기는 수준까지는 웨이크보드나 수상스키 둘 다 특별히 어려운 과정이 없다. 따라서 본인의 취향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