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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프란 Mar 25. 2021

시험관 임신, 그 이후의 날들

임신 사실에 안도하는 마음에 관하여  

2차 피검 결과를 마치고 일주일 뒤 병원 진료가 있었다.


12월 11일. 원장님께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네받고 나서야 다시 한번 실감이 났다. 불과 한 달 반 전 폴립 제거 수술 후 눈물을 쏟아낸 내 모습을 상기하시며, 다 잘될 수 있는 상황인데 염려가 많았다며 인사를 건네셨다. 얼마나 많은 난임 ‘환자’ 들이 원장님을 거쳐갔으며, 그중에 나처럼 한 번에 시험관 시술을 성공한 환자는 몇이나 됐을 것이며 또 여러 차수를 거듭하는 환자들에겐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셨을지 짧은 진료 시간에 많은 생각이 스쳤다.


원장실 앞에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님의 눈물 닦아 드리겠습니다”라는. 대기시간이 길어질 때마다 그 한 문장을 보면서 난임 병원 의사는 특히 공감의 영역이 전제되어야 함을, 임신이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일이고 쉬운 일이 아님을 공감해 주고 있어야 함을,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0명의 환자가 원장님을 만났다면 100가지 원인과 난임 스토리가 존재할 것이며, 그 얘기를 듣고 원인을 알아가는 과정 역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날 임신 확인증을 받았다. 정확한 명칭은 건강보험 임신/출산 진료비 지급 신청서이다. 일태아 확인증을 병원에서 발급해주면 해당 은행에 방문해 ‘국민행복카드’를 발급받은 후 국가에서 60만 원의 지원비를 수령할 수 있다. 얼마큼의 지원비가 나온다는 사실보다 임신이 ‘확인’ 됐다는 사실에 살짝 설렜다. 너무나 많은 증명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어서일까. 확인증을 받음으로써 내 임신이 진짜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임신 5주였다.


임신 사실을 알고 다음 진료일을 기다리면서 문득 난임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누군가에게는 짧을 수도 있는 한 달 간의 시험관 기록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더없이 길게 느껴진 하루하루였음을 기록하는 시간이 내겐 필요했던 것 같다. 결혼 5년 차가 될 때까지 아이가 없어본 부부라면 받아봤을 법한 무례한 질문들, 그 질문들을 받고 혼자 애쓰고 염려하던 긴긴 혼란의 나날들. 오랜 기간 아이를 바라 왔던 부부라면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를 나도 풀어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체외 수정 한 번이 임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희망의 이야기를 끄적여보고 싶었다. 대학 합격 후기처럼 이렇게 해서 성공했어요, 하는 이야기보다 진솔하고 구구절절한 내 사적인 이야기를 풀어놓음으로써 100가지 난임의 원인 중 나와 같은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공유하고 싶었다.


처음 시도한 시험관이지만, 이번 한 번으로 임신이 될 수 있다/없다에 대한 마음은 50/50이었다. 이번에 임신이 안되면 나에게 더 시간을 주고, 내 몸이 아기를 가질 준비를 해 주기 위한 시간을 가질 생각이었다. 일단 미국으로 돌아가 내 일상을 되찾고 무력해진 마음을 다잡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바라던 만 34세 전에 하고자 했던 임신이 무산되면, 조금은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학 입학, 취업, 결혼 등 일련의 과정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악다구니를 쓰고 살아왔던 내 인생에 ‘임신’이란 관문에서는 자신에게 조금 여유를 줄 예정이었다.


임신 사실에 기쁨보다 안도를 느꼈던  사실 인생의 통과의례에서 내가 뒤떨어지지 않고 살아있음이 증명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품는다는 ’, ‘하나의 생명체가 태어난다는  대한 생각과 고찰보다 ‘결혼    만에 임신이라는 팩트에 연연하며 전전긍긍 해온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둘에서 셋이 된다는  무게감보다  파편적인 것들에 골몰해 있었던  아닌가 하는 생각들. 뒤돌아서면 실망보다는 안도가 낫겠지, 하는 생각과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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