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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프란 Mar 16. 2021

시험관 1차, 한 번에 성공할 수 있을까?

난임은 곧 기다림의 과정이었다

배아 이식 후 2-3일은 절대적 안정의 기간이었다.


한국 온 지 두 달여 만에 일을 시작하게 남편과는 주말 부부 생활을 하게 되었다. 남편은 시댁에서 회사에 출근하고, 나는 본가에서 친정 엄마와 시간을 보냈다. 엄마가 차려준 정성스러운 세 끼를 먹고 나머지 시간은 책을 보고 피아노를 치는 정적인 생활을 이어갔다. 11월 23일 배아 이식을 진행하였고, 1차 피검사일(임신 결과 확인일)은 12월 3일이었다. 약 2주가  되지 않는 기간을 몸조심하면서 지내야 하기에 일부러 사피엔스 같은 두꺼운 책을 골라 보기 시작했다. 책의 진도만큼이나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11월 마지막 주 금요일엔 괜히 지난 3년간 미국에서 보냈던 Thanksgiving 사진들을 보며 시끌벅적했던 매년을 떠올렸고, 코로나 이전 사진을 뒤적뒤적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렇게 곤히 추억에 잠겨있을 때 내 몸에 증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확히 배아 이식을 하고 5일째 되는 날부터 질 분비물이 증가함을 느꼈고, 유두가 살짝 커졌으며 색이 진하게 변화함이 보였다. 장 건강이 활발한 편이었던 내가 변비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였고, 이전보다 졸리고 피곤함을 느껴 10시간씩 숙면을 취하기도 했다. 이식 후 6일째 되는 날도 비슷하게 질 분비물이 증가하였고, 가슴이 살짝 커진 느낌도 있었다. 약간의 피부 트러블과 체온이 증가하는 날도 있었다. 이식 후 8,9일 째에도 비슷한 증상이 이어졌고, 하루에서 이틀 정도 변비를 겪기도 했다.


또한 이에 동반하는 감정 변화도 나는 예민하게 느끼고 있었다. 점점 피검사 날짜가 다가오는 데 따른 불안감도 있었지만, 이때부터 읽었던 다른 시험관 고차수 후기들이 나를 더욱 우울하고 힘들게 만들었다. 비슷한 과정을 겪는 사람들을 통해 얻는 공감과 정보는 분명 큰 힘이 되었지만, 난임 병원을 선택하기까지의 고민과 시험관을 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각각의 어려움들, 난자 채취와 배아 이식 후의 개인적인 고통들을 읽고 있는 게 자꾸 미안해지는 마음이었다. 무엇보다도 시술 실패 이후의 비임신 결과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읽어 내려가는 것은 고스란히 내 눈물이 되었다. 아이를 기다리는 그 간절한 마음을 너무도 잘 알 것 같았기에.


보통 혈액 검사 2-3일 전 임신 테스트기로 임신 결과를 추정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을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테스트기를 다시 사러 갈 용기도, 테스트를 할 용기도 나지가 않았다. 내 몸에 나타난 징후들로 혹은 피검사 전날까지 생리를 시작하지 않았기에 어떤 떨리는 마음과 어떤 기대하는 마음 반반을 가지고 12월 3일 오전 병원에 도착했다. 2015년 대학원 합격 발표 이후로 이렇게 떨리는 느낌은 처음이었다. 10시 반 내원 후 바로 피검사를 하고 오후 4시 반쯤 사랑아이여성의원에서 전화가 왔다. 간호사 분이 수치가 256.5라는 결과를 전해주셨다. 믿고 싶었지만 바로 믿어지지는 않는 그렇게 원하던 임신이었다. 너무 행복해서 다시 묻고 묻고를 해서 확인을 받았다. 남편한테 얘기해서 임신이라고 전해도 되냐는 확인까지 받았다. 보통 첫 피검사 결과에 30만 넘어도 임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안정적인 수치로 임신 확인을 받고 난 뒤 조심스레 옆방에 계신 엄마에게 임신 사실을 가장 먼저 알렸다. 누구보다 딸의 임신을 기다리셨고, 시험관 전 과정을 지켜보셨고, 나 못지않게 오늘 떨리는 마음이셨을 엄마에게. 기뻤다. 가족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는 게 이렇게 행복한 기분인지 몰랐다. 엄마는 바로 아빠에게 전화하셨고, 나는 남편에게 전화해 임신 소식을 알렸다. 함께 기도해준 가까운 친구들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고, 곧 친구들로부터 시댁 어른들로부터 축하와 수고했다는 말을 들었다. 가슴이 쿵쾅하고 설레는 기분이었다. 외롭고 고단한 기다림 끝에 얻은 축복이었다.


1 피검  3 뒤인 12 5 2 피검을 하러 병원에 갔다. 수치 결과는 304 임신이 확정되었고, 조정현 원장님으로부터 축하한다는 인사를 들었다. 가장 감사한 분이었다. 살면서 가장 감사한   분을 꼽으라면 단연코 원장님을 떠올릴  같았다.   달간의 지난한 과정들이 주마등처럼 스쳤고, 이식 당일 혼자 기도를 하셨던 그분의 모습이 떠올랐다. 시험관 시술의 확률을 높이는  담당 의사의 판단과 적절한 처치이지만, 자궁에 착상해 임신으로 이어지게 하는  온전히 인간의 힘만으로는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새삼 느껴졌다.  


한달 사이에 겨울이 되었고, 12월의  주가 감사함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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