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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프란 Mar 05. 2021

시험관 시술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올해를 넘기지 않고 임신을 할 수 있을까?

11월의 두 번째 일요일이었다.


자궁경을 한 지도 2주가 지났고, 한국에 온 지 한 달 반이 지나도록 자가격리와 병원 외에는 별다른 게 없었다. 시술이 시작되기 전까지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다. 마침 2020년 10, 11월은 한국에서의 코로나 상황이 그리 심각하지 않은 단계였기에 모임을 가질 수 있었다. 한가로운 듯 분주하게 보이는 서울의 일요일이었고, 몇 년 만에 보는 친구들과의 사사로운 대화가 오고 갔고, 집에 돌아올 때는 꽤 쌀쌀한 날씨였다. 매서워진 날씨만큼 내 몸의 컨디션도 그리 좋지 않다는 걸 직감했을 땐 11월의 생리가 시작된 후였다. 통상 생리 후 3일 이후부터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게 된다. 다음날인 월요일 병원 진료예약을 잡았고, 11월의 둘째 주 화요일을 기점으로 시술을 시작하게 되었다.


시험관의 진행상황은 대략 생리 후 3일 이후부터 약 9일간 1) 과배란 주사 주입 - 2) 난자 채취 및 정액 채취 - 3) 3~5일간 수정 및 배아 배양 - 4) 배아 이식의 과정으로 진행된다.


원장님께 시술의 진행 과정을 설명 듣고, 이 날부터 과배란을 유도하는 퓨레곤 주사를 하루 250cc씩 3일분을 처방받았다. 당일은 병원 주사실에서 맞았고, 자가 주사 넣는 법도 배우며 혼자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보기도 했다. 냉장 보관하는 퓨레곤 주사를 처방받고 집으로 오는 길에 불안과 심란한 마음 반, 기대감 반의 감정이 교차했다. 다음날 아침 10시 반 매일 같은 시각에 자가 주사를 놓았다. 첫 주사는 살짝 떨리기도 했지만 병원 유튜브 영상을 통해 여러 번 보면서 숙지했기에 큰 어려움 없이 주사할 수 있었다. 퓨레곤 주사는 바늘 끝이 얇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큰 통증도 없었다.


같은 주 토요일 병원에 방문하니 대기실에 부부들이 꽤 많았다. (평일엔 보통 와이프 혼자 거나 엄마와 딸이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매년 OECD 출산율 최저를 기록하는 대한민국 난임 병원의 풍경이 꽤나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이날 원장님은 기존의 퓨레곤 주사를 300cc로 올려 처방해 주셨고, 다음 주 화요일 진료 예약이 잡혔다. 사실 과배란 주사를 맞는 동안에 나는 꼼짝없이 몸을 사리는 생활을 보내지는 않았다. 무리하지 않는 생활은 유지하되, 외출과 외식을 하며 소소한 일상을 지켜나갔다. 건강한 난자를 키우기 위해 그야말로 잘 먹고 잘 지냈다. 과배란 주사의 부작용이라고 하는 속 쓰림이나 난소 과자극 증후군 등의 증세는 없었고, 약간의 두통 증세가 있을 땐 낮잠을 자며 컨디션을 조절했다.


과배란 주사는 난자 채취 전전날까지 맞게 되는데, 그날은 병원을 방문했다. ‘시험관의 꽃’이라고도 하는 난자 채취일을 알려주셨고, 이렇게 나는 한국에 온 지 2달여 만에 수면 마취만 세 번을 하게 된 셈이었다. 난자 채취 전날 살짝 잠을 뒤척이며 인터넷에서 읽은 후기들을 읽어 내려갔다. 아팠다는 후기가 대부분이었다. 살짝 겁이 나기도 했지만 이전의 수면 마취 경험으로 병원 의료진에 대한 신뢰가 쌓였고, 어차피 나는 자고 있으면 되는 일이었기에 마음을 가다듬었다. 수술은 30~40분 정도 걸렸고, 난자는 총 18개 채취되었다. 보통 수면마취 전날 자정부터 금식을 하는데, 이날 나는 어이없게도 난자 채취 후 큰 공복감을 느껴 병원 앞 에머이에서 남편과 쌀국수를 먹고 귀가했다. (간호사 분께서 물을 마셔보고 속이 괜찮으면 식사는 해도 된다고 하시긴 했다.)


채취 후에는 후기 글을 더 읽어 보게 되었다. 내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 괜찮은 건지, 내가 느끼는 증상들이 맞는 건지 의구심이 들어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여러 후기들을 읽어보다가 든 생각은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는 게 당연한 거고 지금은 내 몸에 집중하는 게 맞다는 결론이었다. 타인의 케이스를 들여다보는 일을 멈추고 내 컨디션대로 일상을 이어갔다. 엄마와 단둘이 외식도 하고, 조카를 위해 피낭시에도 굽고, 가족들을 위해 오므라이스 카레를 요리했다. 알찬 주말이었다.

3살 된 조카주려고 만든 ‘메이플 휘낭시에’와 엄마와 둘이 먹으려고 만든 ‘오므라이스 카레’




2020년 11월 23일. 배아를 이식하는 날이었다. 오전 10시 떨리는 시각. 남편과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갔다. 시험관의 마지막 단계였지만, 시술 시간은 가장 짧았다. 환복과 대기를 제외한 시술시간만 추산하자면 10~15분 남짓에 이르는 짧은 시간이었다. 누군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데 쓰는 시간, 누군가는 이메일을 쓰며 보냈을 시간, 누군가는 유튜브 한 클립을 보고 있을 시간에 나는 남편과 나의 배아를 자궁에 이식하고 있었다. 배아 이식 전 수정란을 옆에 두고 짧게 기도하시는 원장님의 모습이 보였다. 의지가 됐고, 믿음이 갔고, 무엇보다, 감사했다. 이식의 전 과정을 마취 없이 고스란히 느낀 있던 나는 그때의 떨림과 설렘을 잊을 수가 없다. 아마 평생 잊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몸에 생명이 전이될 때의 감격과 떨림. 그 떨림은 눈물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세상의 다양한 눈물과 울음 중 내가 흘렸던 가장 간절함의 눈물이었음을 아직 기억한다.


11월 10일부터 23일까지 체외수정(시험관) 시술의 과정은 끝이 났다. 이제 오롯이 결과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2주지만, 나에겐 결코 잊지 못할 하루하루였음을 기록해 두고 싶었다. 결코 내가 하게 될 줄은 몰랐던 시술이었지만, 온전히 내가 한 결정이었고 내 몫인 것들이 대부분이었음에 후회는 없다. 매일매일의 주사 맞는 과정을 지켜봐 주고, 딸의 난포가 잘 성숙되도록 좋은 음식만 만들어주고, 혹시나 무리가 될까 설거지 한번 무거운 것 한번 들게 하지 못한 엄마의 사랑과 배려와 희생. 세상에서 나보다 내 몸을 제일 아껴주는 사람, 엄마와 함께 보낸 11월은 내 생에 가장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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