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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즈맨 Sep 02. 2020

사과의 순서

티끌모아 에세이

엊그제는 친한 친구 집에서 외박을 했다. 할 수밖에 없었다, 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우리 집은 불편한 자리가 됐고, 나는 불편함을 유발하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나는 집을 떠났기 때문이다. 가출은 아니고, 내쫓긴 것도 아니고 애매한 외박 처리. 이도 저도 아닌 이런 상황이 닥친 건 세 달 전부터 아버지의 조경 업장으로 출근 중인 사촌 형 때문이다.


사촌 형은 원래 성남에 살지만, 우리 동네에서 세 달 째 살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그와 우리 친척들을 거쳐갔는데, 그는 대학을 입학하는 동시에 사이비 종교 집단에 들어가서 이런저런 경험을 겪었다. 나도 직접 보지는 못하고, 들은 이야기로만 봤을 때도 형은 그 종교를 꽤 격렬하게 믿었던 것 같다. 어쨌든 지금은 그곳을 떠났다가, 원래 집에 있었다가 한다고 했다. 그러다가 세 달 전 갑자기 우리 아버지 업장에서 일하기로 했다는데, 본인 말로는 지나간 시간들의 후회와 현재의 우울감의 굴레를 끊고 변화를 위해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올해 서른두 살이 된 그를, 스물여섯의 나는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다. 현재 나는 그에게 불편한 존재다. 본인 과거를 후회하는 사람에게 '사촌 동생'은 어떤 존재일까. 후회스러운 과거가 무엇이든 간에, 나는 사실 사촌이라는 관계가 애초에 불편하다고 생각한다.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그마저도 만난 지 꽤 오랜 사람에게 사촌이라는 호칭은 어딘가 모르게 어설프다. 만화 영화를 보면 가끔 절벽의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붙들고 버티는 긴장감 넘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그런 식으로 떨어지기 일보 직전인 무언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느낌이라서. 게다가 형과 동생, 이라는 관계 속의 수직성까지 생각하면, 아무래도 쉽지 않다.




그러한 상황에서, 형은 결정을 내리고 우리 부모님한테 대뜸 집에 내가 있냐고 물어봤단다. 형은 내가 없기를 바랐겠지만, 공교롭게도 아버지의 업장에서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는 곳에 우리 집이 있고, 그곳엔 마침 얼마 전 퇴사를 하고 내려와 집밥을 열심히 먹는 건강한 내가 있었다. 내가 있다는 말을 듣고 형은 꽤 당황을 했다는데, 당황을 당한 내 쪽이 오히려 당황스럽긴 하다. 만나지도 않았는데 불편하고 어색해졌다.


지금은 이렇게 돼버리고 말았지만, 나와 형이 둘 다 어렸던 시절, 우리는 서로를 반가워하는 사이였다.  (경기도에 위치했기 때문에 '시골'이라고 부를 순 없을 수도 있겠지만, 경기도의 구획이 무색하게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할 게 없었던) 할머니 댁에 가면 동네에 하나 있는 흙 자갈 운동장에서 구(球)의 모양만 앙상하게 남은 낡은 공으로 축구를 했고, 더운 여름엔 산길을 타고 내려오는 개천에서 물놀이도 했고, 밤에는 레슬링을 하고, 심지어 대전에 있는 우리 집까지 놀러 오기도 했었다. 나는 형을 좋아했다.


좋은 기억은 선한 태도를 만든다. 순수했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이제는 변한 형이 100% 내키지는 않았지만 일이 이렇게 돼버린 상태에서 형을 직접 만나보고 싶기도 했고, 형의 의지를 본다면 쉽지 않을 변화를 응원해주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형이 집 근처에 자취를 시작하고 일주일 정도 됐을 때, 우리 집으로 초대해 가족들과 삼겹살을 구워 먹으려고 했으나 형은 우물쭈물 대답하다 결국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 아마도 불편함을 느낀 기색이었는데, 역시 불편함의 이유는 나였다. 나도 어색한 상황을 즐기는 편은 아니라 형이 오지 않는다고 해서 일말의 안도감이 밀려오긴 했다. 그러나 밀려온 건 안도감뿐만이 아니었는데 형의 말은 곧 파도가 될 말이었다. 잔잔했던 내 마음을 흔드는 파도.




이 일이 있는 후로, 나나 우리 가족이 먼저 형을 초대하는 일은 없었다. 나는 그 날 먹었던 삼겹살도 보지 못했던 형도 잊은 채로, 내 인생을 준비하는 여유 없는 날들을 시작했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의 일상 속에서 뜨문뜨문 형을 접했다. 어제는 나무를 옮겼네, 오늘은 풀을 깎았네, 형의 향상되는 기동력에 안심했고, 때로는 이제는 내 앞에서 잠도 자네, 말대꾸도 하더라, 늘어지는 편안함에 못마땅해하기도 했다. 비율로 따지면 안심 4 못마땅 7이었던 것 같다. 10이 아닌 이유는 내가 그 형을 향해 가진 마음속 인내의 용량을 남들에 비해선 조금 크게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엊그제. 형의 부모님, 그러니까 나에겐 큰아빠, 큰엄마 되시는 분들이 오시기로 했다는 소식을 갑자기 접했다. "이걸 지금 말한다고?" 아침 운동을 다녀온 뒤 씻고 나오자마자 소식을 들은 나는 더운 몸이 3도 정도 더 달아올랐던 것 같다. "코로나 때문에 어떨지 모르겠었는데 오신다네~" 어머니는 별 문제 있냐는 말투였다. "뭐야.. 언제 오시는데?" "오후 5시쯤?" "성남에서 오시는 건데 5시? 설마 주무시고 가셔?" "아마도?" 어머니의 대답은 아마도지만, 이미 주무시고 가시는 게 결정이 난 거다. 찬 물에 씻었는데도 몸의 열기가 가시질 않아 에어컨을 켜고 강풍 버튼을 누르면 나오는 선풍기의 흐름에 잠시 몸과 기분을 맡긴 뒤에 "뭐야... 내 방을 내어 드려야 되는 건 아니지"라며 차분한 말투로 아주 냉정한 말을 했다.


갑작스러운 일에 원체 대응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이럴 때는 일단 이기적인 태도를 취해버리고 만다. 마치 복어가 몸을 부풀리거나, 몸의 색을 변하게 하는 동물들의 그것. 그러고 분위기를 살핀 뒤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확인한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완전 먹이사슬 최하 단계다.) "내가 친구 D 집으로 갈까?" 여기서 친구 D는 나와 가장 친한 친구로, 가족끼리 안 지 오래된 사이이기도 해서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거리낌 없이 보러 갈 수 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럴 필요까진 없다곤 했지만, 막상 물어본 친구 D의 상황이 괜찮자 넌지시 유도하신다. 나도 편하고, 그들에게도 편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면서 친구에게 답장한다. "미안한데 나 갈게."




괜히 신경이 쓰였는지 코로나 때문인지 아버지가 직접 운전하셔서 친히 친구 집에 데려다주셨고, 차 안에서 이 일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갔다. 주로 아버지 시점의 이야기였다. 당신이 본 형이 어떻다고 생각했는지, 큰엄마-큰아빠의 마음이 어떠실지, 그분들이 어떤 젊은 시절 아버지에게 도움을 줬는지, 그래서 지금 본인의 마음은 어떠신지, 그리고 우리가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이런 이야기들은 나의 이해를 돕기도 했지만, 결국은 내가 디폴트 값으로 MUST 이해를 해야 하는 입장이 돼버리는 것만 같았다. 안타깝지만 26살 취준생의 입장은 아버지와는 조금 달랐다. 나는 아직 이해를 바라는 존재니까.


돼지 꼬리가 돌돌 말려있는 정도로 돼지가 가진 스트레스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돼지 꼬리가 배배 꼬이면 꼬여있을수록 그 돼지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는 것. 돼지는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내가 불편한 존재라고 인식되는 것, 코로나 시국에 '우리'집에서 '내'가 나가야 했다는 것, 그리도 원치 않은 지출이 있어야 된다는 것들은 사람인 나에게 역시 스트레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지나친 감정들이 올라왔고, 결국은 생각을, 팔짱을, 다리를 꼬게 됐다.




아니꼬운 밤을 지나고 다음 날. 점심때가 돼서야 돌아가시는 두 분을 배웅한 뒤 부모님께서 나를 데리러 와주셨다. 미안한 마음에 애써 오셨구나 싶었지만, 어제 꼬인 똬리를 풀기엔 나에겐 이른 시간이었다. "잘 잤어"라고 퉁명스럽게 말한 뒤 별 말없이 집에 왔고, 별 말없이 점심 식사를 했다. 부모님은 미안해하시고, 그러나 섭섭한 감정은 들고. 모두가 선의를 베풀었을 뿐인데 우리 가족의 관계가 어색해지는 이 상황이 짜증이 나서 그냥 형 호칭을 빼고 이름을 그냥 불러버렸다. "걔도 어제 왔어?" 어머니가 그건 잘 못 됐다는 듯 말하신다. "걔가 뭐야 형이지." 이 말을 마지막으로 그 식탁에서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더 뜨거웠던 찌개 속 고기에 집중했다. 집중했지만 뭘 씹는지도 모르겠는 식사는 그렇게 끝이 났고 이제는 미안함보다 화가 난 듯한 부모님, 그리고 애초에 화가 나있던 나의 감정선은 아직 평행이다. 함께 어색한 동거 3일 차. 사과의 순서는 아직 모른다.


마음에 걸리는 일을 써야 한다.'는 은유 작가님 말을 따른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내가 너무 마음이 좁은 사람인가' 싶은 생각과 '아니, 충분히 이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이 싸운다. 대체로 후자가 내 생각으로 굳어지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사과는 어렵고, 대화를 먼저 걸어줬으면 좋겠는 내 마음이 좁은 것도 사실이기는 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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