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군대 선임과 고기를 먹으며 술 한 잔 했다.
사실 약속한 자리는 아니었고,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카페로 놀러 온 선임과 간단하게 저녁이라도 먹자고 해서 만들어진 자리였는데, 한잔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둘이서 소주를 다섯 병을 마셨으니까 날 잡고 마신 날보다 훨씬 더 얼큰하게 취하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약속에는 나도 상대방도 충동적인 것들을 어느 정도 허용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런 형태의 약속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아무튼, 원래 주량을 훨씬 초과해서 먹기도 했고, 오랜만에 먹기도 해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탄 지하철에서 내내 속이 불편했는데, 결국은 지하철역 화장실 변기에 토를 쏟고 말았다. 비위 약하신 분들에겐 이런 정보를 알리는 것에 대한 심심한 사과를. 그러나 저는 아무리 술을 마셔도 멀쩡한 멋진 사람은 아닙니다.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 쓰러지기 위해서는 아직 끝이 아니었고, 아직도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그래도 속을 비우고 나니 정신을 좀 들어서 시간을 보니 모든 시내버스들이 운행이 종료된 시간이었다. 할 수 없이 택시를 탔다.
여기서부터는 기억이 흐릿한 관계로, 기억나는 것들만 말해보면 - 모두가 월요일을 준비하는 일요일의 늦은 밤에 술에 거나하게 취한 내 모습이 어딘가 청승맞게 느껴졌고-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부모님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힘들다, 힘들다를 연발하시며 나무를 운반하시는 아버지의 모습과 갱년기로 힘들어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번에는 갑작스럽게 눈물을 쏟았다.
집으로 돌아가 방으로 바로 들어갔더니 다 큰 아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어머니가 달려오셨다. 어머니를 안은 채로 나는 "엄마 아빠 내가 호강시켜 주지 못해서 미안해"라고 말하며 한참 울었고 그 뒤로는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괜찮아. 너 아직 젊어.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위로만 짧게 기억날 뿐이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양말이 벗겨져 있었고 이불까지 덮인 채로 잘 자고 있었다. 호강을 위해서는 부모님의 만수무강이 필요하다는 것이 조금 더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