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지”로 배운 한국 근현대사

by 양경인


대학 1학년 겨울방학 때 처음으로 토지를 읽었다. 40년 전의 일이다. 그때 나는 학업을 계속할 것인지 고민하는 중이었다. 제주도립도서관에서 빌린, 삼성출판사에서 미색 하드 카버로 된 10권 전집으로 된 책. 학생이 전집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시절의 얘기다. 쏟아지는 단어가 생경하여 이희승 국어대사전을 옆에 두고 읽었다. 1년 후 지식산업사에서 보급판으로 나왔을 때는 구입하여 다시 읽었다. 내 어휘는 그때 좀 늘었을 것이다.


그때도 서희가 부럽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려서부터 병중인 아버지는 살해되고 엄마마저 작은 아버지에게 뺏긴 아이. 빼어난 미모와 재산으로 버티지만 마음속은 매우 허할 것이므로. 내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이들은 길상이, 봉순네, 간난 할멈, 두만네, 용이, 윤보목수, 구천이, 서 서방, 월선이 등인데 아마 내가 닮고 싶었던 인물이 아니었나 싶다. ㅃ그때까지 내 삶의 주변에서 그리 악한 사람을 보지 못했던 터라 강청댁의 악다구니 슬픔도 봉기의 이기심도 임이네의 탐욕도 조준구의 비루함도 ‘인간이 저럴 수가 있나’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꼽추 자식을 징그러운 동물 대하는 하는 조준구의 아내 홍 씨는 현실감이 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1979년 10월~ 1980년 2월까지 출판된 "토지"


내가 1부 (1,2권)를 가장 아껴 읽었다는 것을 위의 책 상태가 말해주고 있다. 2부(2,3권)부터는 읽기가 한결 수월하기도 했지만, 토지 1부에 삶의 모든 것이 응축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40 대, 대전에서 10년간 역사논술교사를 하면서 중학생들에게 청소년용 토지를 읽게 하였다. 격동의 근대사를 이해하는데 3부, 4부, 5부는 역사공부의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어서인지 반응이 괜찮았던 것 같다. 아이들은 1부를 가장 어려워했다. 그래서 청소년 토지가 나왔는데 개인적으로는 오세영의 만화로 된 토지가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읽기가 버거운 아이들에게는 주로 만화를 권했던 것 같다. 여름 특강으로 토지 읽기를 개설해 학생들과 함께 토지를 만났던 시간들이 아련하다.

토지의 큰 주제는 한(恨)이라 생각한다. 판소리 명창 임방울의 <쑥대머리>, 서편제 음색에서 감지되는 슬픔의 원죄의식 같은 애조가 “토지” 전 편에 흐르고 있다. 누군가 한이란 ‘죽지 못해 사는 것’이라고 표현했듯" 생명이란 자체가 이미 그 유한성으로 한을 담고 있다"는 작가의 생각을 작품 도처에서 만날 수 있었다.


토지의 서장은 1897년 한가위로 시작된다. 이 해는 동학혁명 3년 뒤이고, 대한제국이 세워진 해이다. 특히 이 시기는 전통적. 토착적인 것이 서구적(자본주의)인 것에 패배하는 상황인데 작가의 애정은 전통적인 것에 향해 있다. 토지 1부는 무대는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마을이다
만석지기 최참판 댁은 윤 씨 마님에 이르러 여성에 의해 가문을 지탱하게 된다. 아들 최치수는 병약하여 사랑방에 칩거하고 며느리 별당아씨는 아버지가 다른 아우 구천이(환이)와 달아난다. 절에 다녀온 어머니의 냉랭한 기운에 질려 자폐적인 삶을 살던 최치수는 재형 조준구의 사주로 평산이, 칠성이, 귀녀가 공모한 살해극의 희생물이 된다. 이어 흉년과 1903년 호열자가 휩쓸 때 윤 씨 마님도 죽고 최참판 댁에는 손녀 최서희만 남게 된다. 이 상황을 틈타 조준구는 최참판댁을 거머쥐고 자기 세력을 만들어나가며 마을 사람들을 분열시키자 이에 항거하던 (최참판댁과의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은 평사리를 떠나 간도로 간다. 여기까지가 1부의 서사적 줄거리다.

“토지”의 가장 큰 매력은 인물에 있다고 생각한다. 박경리 소설은 그가 창조한 인물로 떠오른다. “토지”속의 수많은 인물들은 등장하는 순간 그가 세상의 주인이 되어 자신의 한을 끌고 간다. 이 과정에서 인물의 캐릭터가 완성되는 것이다.


윤 씨 마님은 사생아 김환을 낳게 한 동학 접주 김계주를 어둠에 묻었지만 며느리 별당아씨는 삼엄한 봉건 윤리를 깨고 사랑을 선택했다. 하지만 지리산 화전민이 되어 생을 마쳤다. 손녀 서희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상징인 호주법을 고치며 머슴 길상이와 사랑을 획득한다. 개인의 성격 차이도 있겠지만 구한말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사회적 가치관의 변화가 가능하게 했으리라. 그 변화는 봉건시대가 무너지면서 형성되어가는 민(民)이 주(主)가 되는 과정, 인간성 회복이라는 긍정적 근대 윤리의식의 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모성을 버리고(?) 사랑을 따라간 별당아씨의 선택은 딸 서희를 집념 덩어리로 만들었지만, 인력으로 안 되는 게 또 사랑의 본성일 것이다. 윤 씨 마님의 손녀 서희는 ‘한 번도 살아본 것 같지 않다’는 자조처럼 몰락한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집착의 과정이 서희의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절의 불목하니로 있다가 최참판댁 머슴으로 간 길상은 사춘기를 겪으며 서희를 사랑하게 된다. 마음에 대상을 두면 다른 사랑을 받아들일 공간이 없게 되나 보다. 길상은 딱이 싫은 것도 아닌데 침모 딸 봉순이가 다가올수록 역정을 내는 것이다. 최참판 댁에 기대어 사는 농민들과 간도로 떠날 때 조준구 일행의 추격의 흐트러뜨리려고 노출이 쉬운 코스로는 봉순이가 탄 가마가 먼저 떠나고 서희는 다른 길로 간다.

신분제도가 엄연했던 사회라 계급의 슬픔은 도처에 넘쳐난다. 애기 씨 서희를 보호해야 한다는 길상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봉순은 이때 길상과 결별한다. 동시에 자존감도 무너져 기구한 인생으로 이어진다. 반면 길상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존감을 잃지 않는다. 길상에게는 태생과 더불어 주어진 어떤 불성(佛性)이 있는 것 같았다. 흠결 없는 사람을 우러를 수는 있지만 사랑하기는 어려운 것처럼 그런 점들이 오히려 길상에게서 점점 멀어지게 했다.

농부 용이와 무당 딸 월선이가 나오는 페이지마다 내 눈물 자국이 남아있을 것이다. 용이는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인물인데 그때의 내 상황과 닮아있어서 더 그러지 않았나 싶다. 나도 날고 싶었지만 제도와 윤리의식에 스스로 포박되어 신음을 하고 있을 때였다. 무당의 딸이라 관습의 벽 앞에 월선이와 사랑도 멈춰 서야 했던 용이, 관습이 제도보다 더 무서운 위력으로 그들의 삶을 죄었다. 윤리에 복종한 그에게 길상이 " 아제는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것 같다"라고 했을 때, 용이는 "많이 살았다"라고 답한다. 그리고 월선의 죽음 앞에서 " 여한이 없제?" 묻고 " 없심더"라는 답을 듣는다. 용이는 타고난 바탕은 어질고 순한 심성으로, 사람의 도리를 지키기 위해 무섭게 인내하지만, 사랑에는 누구보다 진실했던 사람이다. 최치수가 부러워하듯 용이와 월선은 사랑의 승리자들이었다.

월선은 무당의 자식이라 용이와 맺어질 수 없었다. 무당은 그 시대 종교의 사제 같은 역할을 하였지만 사농공상 근처에도 못하고 천대받았는데 그들- 갖바치, 백정, 무당 등-의 지난한 삶이 월선의 사랑을 통해 더 다가왔다. 월선이 죽은 어머니를 위해 우란분재를 지내는 모습 등은 당시 샤머니즘과 불교는 혼합된 형태로 그들의 삶 속에 사이좋게 공존했음을 보여준다.

월선의 삶을 보면 결국 인간의 선함이 악을 이긴다고 믿게 된다. 현실에서는 그 반대일 경우가 많지만 궁극적으로는. 정에 치우친 사람은 팔자가 고단하다는 말이 있듯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우유부단한 인물, 과단성이 부족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정리(情理)를 내던지면서까지 추구해야 할 높은 가치를 나는 모른다. 월선이도 한 세상 살아가며 사랑을 잊고(버리고) 추구할 그 무엇을 찾지 못한다. 역사적으로 살펴봐도 이런 성정을 가진 사람들이 현실사회를 잘(?) 사는 경우가 드물다. 요즘 사회에서는 더더욱. 하지만 또 이렇게 반문해본다. 무엇이 잘 사는 것일까?

흉년에 굶주리는 시어머니를 살리려고 친정 가서 곡식을 얻어오는 서 서방의 며느리, 그 사이에 숨진 시어머니로 미친 시아버지 서 서방. ‘정이 지나쳐도 미치는가’로 압축되는 서 서방의 아내 사랑도 눈물겹지만 실성한 시아버지를 성심껏 바라지하는 며느리의 모습은 도리를 넘어선 그 무엇이 있었다. ‘인간의 도리’란 무엇일까. 작가의 말을 들어본다.

"식자들 뿐 만 아니라 서민들이 즐겨 쓰는 도리라는 말이 있는데(중략) 이 도리야말로 생활의 규범이다. 천재(天災)를 제신의 노여움으로 감수하듯이 무자비한 수탈 속에서 가난도 이별도 견디어야만 하고 도리를 준열한 계율로 삼아온, 이 자각 없이 고행해 온 무리가 조선의 백성이요, 수구의 벌판이다. 이조 5백 년 동안 씨 뿌려 놓은 유교사상의 끈질긴 덩굴이며 무수한 열매인 것이다. 이 공자의 서자(庶子)들이 지금 도도히 흘러들어오는 약육강식 하는 무리들을 맞이하는데 과연 무엇으로, 사람의 도리로 대적한단 말인가."

꼬질꼬질한 무명 두루마기를 입고 담배냄새에 절은 몸을 곧추 세우며 허리를 약간 젖히고 위엄 있게 걸어가는 김훈장의 면모에서 골수 유학자의 모습을 본다. 사서삼경의 이론이 인간 세계의 정답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그는 얼치기 근대사상을 접한 조준구에게 모욕당하고 동학에 참가한 경력이 있는 윤 보목수에게 비웃음거리가 된다. 구한말, 지방으로 갈수록 이런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김훈장을 통하여 우리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가 어느 만큼 진실에 근접했는가를 되묻게 된다. 의병모집에 열을 올리고 조준구에 군자금을 요구하는 그의 행동은 근대문명을 중세의 창칼로 덤비는 돈키호테의 모습과 비슷했다. 자신보다 조상숭배가 중요하고 그보다 나라가 더 중요한 중세의 왕조 사상이 조선왕조 500년을 지탱했다면 김훈장도 공신 중의 한 명이다. 그는 구한말의 의병이 그러했던 것처럼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백성이었고 삼강오륜에 벗어나지 않으면 신분이 낮아도 존중할 줄 안다. 하지만 좁은 세계관은 그를 우매하고 고지식하게 만들어 시대에 뒤떨어진 ‘황혼의 만가’로 전락하게 된다.
윤보 목수는 일찍이 목수 기술을 배워 전국을 돌아다니며 살아가는 남자로 중인 신분에 가깝다. 토지의 대부분 인물들이 최참판댁 토지(땅문서)에 매여 살고 있다면 윤보는 그들의 소유관계로부터 자유롭다. 동학에도, 의병에도 참가하였으니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의식이 앞서 있다. 그가 싫어하는 것은 가족 이기주의, 노예근성, 양반 의식 등이다. 그는 가족이 없다. 그러한 사회적 신분적 조건이 그를 훨훨 날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젊었을 때는 윤보 목수가 무척 부러웠다. 그의 진보 의식, 구습 제도의 의연한 거부, 진짜 귀한 사람의 내면을 알아보는 통찰력. 그런 삶을 동경했었다.

가장 아픔을 준 인물은 삼월이었다. 침착하고 자애로운 봉순네는 조준구에 대한 애증의 감정으로 몸부림치는 삼월에게 " 네 마음을 네 마음대로 못할 것이 걱정이구나" 위로를 한다. 비열한 인간에게서 성폭행당한 후 본처 홍 씨의 가혹한 매질에도 조준구를 거부하지 못했던 삼월의 말로는 처참했다. 그 당시 양반이 갖고 놀다 버린 노비 이야기는 비일비재했겠지만 그 구체적 정황을 삼월이 삶 속에서 보게 된 것이다.

계급과 신분이 개인을 옭아매던 그 시대 인물들은 "토지"1부 작가의 서문처럼 포기함으로써 좌절하거나 항거함으로써 방어하거나 도전함으로써 비약한다. 백정으로 태어나 '형평사'운동을 통해 자신을 키워나간 관수나 최치수를 죽인 아버지의 업을 닦고자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한복이, 윤보 목수, 공노인 등은 "도전함으로써 비약"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토지" 1부를 쓸 즈음의 박경리 씨


나는 한국 근대사를 토지로 배웠다.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물음도 토지를 읽으며 해답을 찾아갔다. 그 속의 인물들과 같이 살며 인간의 다양한 관점, 시대의 가치관, 성격과 운명의 관계, 사람의 본성이라는 것 등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미래가 막막하고 현실은 무겁고 생활은 허기지던 이십 대에.

우리 세대 중에는 1980-90년대 한국사회 정치상황의 혹한을 박경리 선생님을 마음으로 의지하며 견딘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토지를 마치고 난 후의 모습


작가는 딸의 삶이 애달파 서울 정릉에서 외동딸이 사는 집 근처로 이사해서 토지를 완성하셨다. 원주에서 사는 동안 새와 대화하고 길고양이들을 돌보며 모든 쓰레기를 자체 해결하였다. 환경운동은 너무 안일한 말이라고, 생명. 생태운동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자연의 원금을 갉아먹으면 안 된다고 하셨다. 그러한 말들이 내 삶에 스며들어 불편한 적도 많았다.


2008년 5월 초, 대전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정신없이 살고 있을 때 어버이날이 다가와 친정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찾아뵙지 못한다는 말을 하려던 참이었다.

- 근데 너 박경리 씨 장례식 갔다 와시냐(갔다 왔니)?

- 아직, 고민 중 이우다, 워낙 호상이라 안 가도 될 것 같기도 하고...

- 이제라도 가라, 안 가면 너 평생 후회한다. 너를 사람 만들어 준 분 아니냐, 나야 낳기만 했지... 나한테 뭐 보내지 말고 그걸 그분 장례 부조금으로 써라


대학을 중퇴하고 공장에 다닐 때 어머니는 한숨을 쉬며 만류했다.

- 무사 는 기는 꿩을 놔두고 나는 새를 잡젠 햄 시냐( 왜 너는 기어가는 꿩을 두고 날아가는 새를 잡으려 하느냐)

그 후로도 나는 어머니의 속을 무던히 썩이며 어머니가 생각하는 지름길을 두고 에돌아가는 길을 걸었다. 어머니는 내가 결혼 안 한다고 아끼던 박경리 책을 몰래 불사르기도 했다.


새벽차로 갔지만 아산병원 영결식장은 해산하고 있었고 나는 거기서 만난 가수 김민기 씨 부탁으로 영정을 안고 원주 자택으로 갔다. 운구는 원주를 거쳐 충무로 간다고 했다.

"님은 떠났지만 우린 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 대지의 어머니시여" 등의 글귀가 만장에 휘날리고 있었다. 말년에 작가는 토지 문화원 위 쪽에 집을 짓고 사셨는데 장례식 때 가보니 후배 문인들 반찬거리를 위한 수많은 장독대가 즐비했고 뒷 산에는 선생님이 틈날 때마다 심었다는 잣나무가 푸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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