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가 심부름할 때 일어난 일

by 양경인

이솝우화에 공작 깃털로 검은 몸을 치장하고 공작 무리들과 어울리다 발각되어 쫓겨난 까마귀가 나온다. 온몸에 상처를 입고 까마귀 세계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왕따가 되어 있었다. 한 까마귀가 조언한다.

" 네가 우리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면 우리도 널 반겼을 거야"

<여우와 까마귀>에선 꾀 많은 여우에게 넘어가는 어리석은 새로 나온다. 고기를 물고 있는 까마귀에게 "당신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듣고 싶다"라고 했더니 까마귀는 깍~ 하며 고기를 떨어뜨린 것이다.

자라면서 내가 무얼 자꾸 잊어버리면 부모님은 “까마귀 고기 먹었느냐”라고 꾸중했고, 어딜 가서 늦게 오면 “까마귀가 말 죽은 밭에 들었구나” 했다. 오랫동안 그게 무슨 말인가 했는데 제주도 신화를 읽으며 이해하게 되었다.

제주도 신화 <차사 본풀이>에는 강림도령이 저승과 이승을 왔다 갔다 하는 능력을 갖게 된 내력이 나온다. 여기서 압권은 인간의 죽는 차례가 왜 뒤죽박죽인 지 설명하는 대목이다.

강림은 이승 왕의 편지를 저승 왕에게 전하는 메신저였다. 어느 날, 저승 염라대왕이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게 된 강림에게 분부했다.

- 인간세상 내려가서 여자는 칠십, 남자는 팔십 되거들랑, 저승에 차례차례 올라오라고 본향(本鄕, 제주에서 마을의 신을 모신 곳)에 가 적패지 붙여두고 오라.

‘적패지(赤牌旨)’는 ‘붉은 바탕에 흰 글씨’로 기록하는 저승의 편지다. 말인 즉 죽은 사람의 집 대문에 사망증명서를 붙이고 오라는 것이다.

저승 문서 '적패지'를 등에 붙인 심방. 적패지를 다는 순간부터 심방은 영혼을 데리러 오는 저승 차사가 된다. ⓒ 문무병 글. 사진


강림이 적패지를 갖고 인간세상 내려오다 힘들어 길 옆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때 밭갈이 한 밭에 까마귀가 지친 강림의 모습을 보며 제안했다.

-그 적패지를 앞날개에 달아주면 인간세상 가서 붙이고 올게.

강림은 얼씨구나 까마귀에게 맡겼다. 까마귀는 앞 날개에 적패지를 달고 본향으로 가는 길에 말 죽은 밭을 지나가다 말을 잡고 있는 광경을 보고 ‘말 피라도 한 점 먹고 가야지’ 담 위에 앉아 가옥 까옥 울었다. 이때 말을 잡던 피 쟁이(백정)가 탁한 울음소리 시끄럽다고 말발굽을 끊어 훅~ 까마귀 쪽으로 던졌다. 까마귀는 자기에게 던지는 줄 알고 놀라 앞날개를 벌렸더니 도로록 그만 적패지가 땅에 떨어졌다. 그때 마침 담 구멍 있던 백 구렁이가 적패지를 옴찍 한 입에 삼켜 담 구멍으로 들어가 버렸다. 적패지를 잃은 까마귀는 인간세상으로 내려와 아무렇게나 호명하며 늙은 이 갈 데 젊은이 보내고, 젊은이 갈 데 아이더러 가라고 하다 보니 죽는 순서가 고르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심방은 받아들이기 힘든 죽음까지 까마귀 탓으로 슬쩍 돌리며 유족에게 고인을 잘 위로해서 보내자고 차사 본풀이를 하는 것이다

반면 적패지를 삼킨 뱀은 죽는 법이 없이 아홉 번 죽어도 열 번 환생하는 칠성신(부귀를 주는 뱀신)이 되었다. 농가에 뱀이 많다면 최고의 먹거리 쥐가 많다는 뜻이고 쥐는 곳간이 든든해야 몰려들 것이니 농경시대 뱀은 부귀의 상징이 될 수 있었다.

추수 마친 밭에 어기작 어기작 걷는 까마귀 걸음걸이는 화가 난 강림이 때죽나무 막대기로 아랫도리를 후려 쳤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까마귀는 앙기 조침* 걸음이 되었다는 얘기다. 가을에 조나 메밀을 베어 낸 밭은 뿌리를 갈아엎어야 다음 해 보리 씨를 뿌릴 수 있다. 흙이 뒤집어진 이랑을 걸으려면 우리 인간도 앙기 조침 걸음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생물학을 전공한 딸은 이솝우화 까마귀 일화는 대부분 외모에 집중된 것이고, 까마귀 생리와 습성을 잘 표현한 이솝우화는 < 항아리와 까마귀> 란다.

- 까마귀는 부력의 원리를 아는 새에요, 도구도 사용할 줄 알고, 동물 시체의 청소부 역할도 하고, 산에 낙엽을 분해하는 버섯만큼 유익한 새죠, 얼마나 영특하다고..

목이 마른 까마귀가 물 항아리에 자갈돌을 하나씩 집어넣어 가장자리까지 물이 차오르게 해서 먹을 줄 안다며 까마귀를 적극 옹호하는 딸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새라고 한다.

고광민 민속학자의 책 "제주 생활사"에는 까마귀를 보며 농사의 흉 풍년을 가늠했던 분의 얘기가 나온다.


"까마귀 새끼 짝 맞힌 헨(짝수로 낳은 해는) 풍년 들고, 짝 그른 헨(홀수로 낳은 해는) 숭년( 흉년) 든다"


까마귀는 삼월삼짇날에 나무 위에 둥지를 짓고 4.5개의 알을 낳는 데 이때 흉풍을 가늠하여 새끼의 숫자를 가늠하는데, 풍년이 들 것 같으면 두 마리를 부화시킨다. 흉년을 예감하면 한 마리만 남기고 나머지 알은 주둥이로 굴러 땅에 떨어뜨려버린다. 그런데 가뭄이 들 것 같으면 세 마리를 부화시킨다. 가뭄이 심하면 땅 속에 숨어 사는 벌레나 지렁이 따위가 수분 섭취하러 지상으로 나와 까마귀 먹이가 풍성해져 까마귀는 가뭄이 예상될 때 풍년보다 새끼를 더 친다는 것이다.


고구려 고분 (각저총 ) 벽화 속의 삼족오

세발 까마귀는 태양 안에 산다고 여겨졌던 전설의 새로 중국, 일본에도 등장하는 6세기~7세기 동아시아 문화 코드이기도 했다. 북방민족 고구려 벽화에서 태양의 새로 등장하는 까마귀가 농경사회 제주에서는 구박덩이 수난의 새가 되었다. 그러나 옛 어른들도 까마귀의 예측 능력은 무시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런 까마귀들은 모두 몸피가 큰 텃새 까마귀이다.

까마귀 (사진 윤무부)


이십 대의 어느 겨울, 우연히 제주시 화북 근처에서 까마귀를 보게 되었다. 가까이서 보니 놀랍게도 광택이 흐르는 비단 같은 날개를 가진 새였다. 천지를 암흑으로 만드는 무거운 날갯짓의 시대를 넘어 마른풀 더미에 포근히 앉아 있었다. 겨울 햇살에 초록과 보라 빛이 영롱대는 깃털의 새가 신기해 뚫어지게 바라보던 시간, 고정관념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었다.

바람까마귀

내가 어린 시절 하늘을 점점이 검게 물들이던 수많은 바람 까마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철새 까마귀인 떼까마귀를 제주에서는 바람과 논다고 해서 '바람 까마귀'라 불렀다. 제주시 남문통 공터에서 들었던 그 까마귀 소리는 조금도 불길하지 않았고 높푸른 하늘을 지휘자의 신호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까옥 까아옥 우소리는 바람소리처럼 호쾌하고 나름 구성졌다.



*까마귀가 아장아장 걷는 모습을 표현한 제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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