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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경인 Jun 20. 2023

에드워드 호퍼 "철길의 석양"

- 나는 누구인가



 휴일의 인파 속에서 처음 이 그림을 보았을 때는 서양의 흔한 가스등인 줄 알았다. 서울시립미술관 1,2,3 층에 걸쳐 있는 270점의 그림을 대충 본 후 3층 전시관 끝에 걸린 이 그림을 다시 만나러 갔을 때야 제목을 살폈고 가스등이 아니라 신호탑인 걸 알게 되었다. 미국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는 도시인의 소외, 고독을 담아낸 작품들로 더 알려져 있다.

 철길 옆에 우뚝 선 신호탑 뒤 산 넘어 일몰을 묘사한 '철길의 석양'은 기차 창문 너머로 목격한 장면에  작가 내면이 더해진 풍경이다. 작가는 ” 나는 나를 그릴뿐이다 “라고 했으므로. 이 작품을 완성한 1929년, 호퍼 부부는 뉴욕에서부터 찰스턴, 사우스캐롤라이나를 거쳐 매사추세츠주와 메인주까지 여행했다고 한다. 그의 모든 작품이 그러하듯 여정 중 길 위에서 얻은 인상은 기억 창고에  차곡차곡 저장되어 술이 발효되듯 영감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시립미술관 전시 제목도 “ 길 위에서”이다.


철길의 석양(1929. 캔버스에 유채, 74.5 ×122.2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화면 아래부터 차례로 철길, 산등선, 지평선, 석양, 구름이 가로 놓여있다. 싸늘하게 가로지르는 차가운 철로를 화가는 갈색의 변주로 표현했고, 검푸른 산 너머 대담한 녹색은 산안개 같다. 저렇게 강렬한 녹색을 본 적이 있었던가.  지평선과 산 노을 구름이 수평으로 깔리고 신호탑, 전봇대, 신호기가 돌출되어 수직선을 이루고 있다. 호퍼는 낮게 깔린 수평의 자연과 수직으로 솟아오른 문명의 만남을 그렸다고 한다. 

 나도 자연과 가까이 있을 때는 오후 6시 전후 일몰 시간에 비애의 감정을 느꼈었다. 호퍼의 노을은 보색의 색채 대비를 통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마주하게 한다. 장엄한 노을을 보며 숨 가쁘게 지나간 삶의 파노라마를  슬몃슬몃 마주치는 것이다. 도시가 산업화되고 문명화될수록 인간과 자연은 소외되고 고립된다. 그 틈바구니에서 노매드의 삶을 살고 있는 내 처지,  황량한 철길 위에 서 있는 신호탑도 나처럼 고독해 보인다. 그래도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푸른 밤> 같은 역작에 이입되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그림 속을 들여다보았다. 


푸른 저녁, 1914. 파리


고등학교 영어 배울 때 Blue rose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의미했다. 지금은 파란 장미 색소도 얼마든지 만드는 세상이 왔다. 그래도 여전히 난 "랩소디인 블루"는 '우울한 광시곡'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파랑은 바다빛이 그러하듯 한 없이 깊고 끝을 알 수 없어서 '우울'의 은유로도 쓰인다. 유리처럼 창백하고 차갑고 싸늘한 색이기도 하다. 호퍼는 특히 파란색을 많이 쓰는 화가였다. <푸른 저녁>도 시린 도시인들의 관계, 그 온도를 사람들의 엇갈린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다. 모델들 중에는 호퍼가 추앙했던 빈센트 반 고흐의 모습도 있다.  에머럴드 블루 하늘빛과 남빛 블루의 수평선이 밝게 보이는 것은 동양의 한지로 만든 것 같은 조명등 역할인데 손님들의 모습(특히 의상)과 대비된다. 조커 영화의 주인공 같은 하얀 옷의 광대에 시선이 꽂힌다. 민소매를 입은 여성들과 외투를 입은 남성들의 대비도 불균형하지만 직업을 시사하는 붉은 화장을 하고 요염이 눈을 내리까는 여성은 하얀 옷으로 감싼 광대를 내리깔아 보고 있다. 푸른 저녁은 기괴하고 슬픈 장면이다.  서로서로 다른 곳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 예술가 호퍼의 고뇌가 있을 것이다. 자기 세계를 갖기 위해 파리의 뒤안길을 서성이며 내면으로 분투하는 호퍼의 모습이 광대 모습에 투영되어 있다. 


박연폭포( 종이에 수묵, 1750년대, 119.7*52.2, 개인소장)


 호퍼는 인상파의 영향을 받았지만 자연을 보는 자신의 심상, 즉 내면의 진실을 담았다.

진경산수를 그린 조선의 겸재 정선(1676-1759)도 자연을 변용하는 화풍으로만 봤을 때 동양화의 후기 인상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겸재의 박연폭포 그림은 주역의 해석을 덧붙어야 온전한 감상이 가능한 작품이다. 그러나 얼핏 보아도 폭포소리를 강조하기 위해 물줄기를 길게 늘어뜨리고 폭포에 부서지는 바위를 반달처럼 단순한 모양으로 그러나 내리꽃히는 폭포의 압력에도 끄떡없는 단단한 먹빛으로 표현되어 있다. 저 바위를 보면 겸재의 그림 속 먹을 쥐어짜면 한 동이가 될 것이라는 어느 미술사가의 과장도 받아들이게 된다. 그에 더하여 미국의 현대화가 호퍼의 그림에는 문명을 향한 근원적 물음이 담겨 있고, 그 모순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나를 압도했던 장엄한 노을은 갈색의 차가운 철길과 초록빛 산, 그위의 다시 검은 산 위로 붉은 노을과 황금빛이 엹어지며 구름을 물들이고 있다. 중간중간 끼여있는 검은색의 지평선을 보며 호퍼는 세상의 색을 장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 그림은 색채의 조화가 신호탑, 신호기와 어우러지며 "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가"의 물음처럼 들린다.  

호퍼가 활동한 1930년대 우리나라는 예술의 암흑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림도 후퇴하여 왜색풍의 풍경화 인물화가 성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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