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고의 추석 선물
근간에 소소히 주고받은 선물은 많다. 준 것도 더러 있겠지만 거의 기억나지 않고, 받은 것은 현물로도 존재하니까 여운이 길다.
올여름은 지인이 선물한 민소매 원피스로 여름을 났다. 옷을 물려주는 동생 덕에( 결혼 전 내가 물린 옷을 지겹게 입었던) 내 의류비는 생활비 절감에 톡톡한 역할을 한다
젊었을 때 친구 결혼식에도 부조한 기억이 없다. LP판을, 도자 꽃병을, 스탠드 같은 것을 선물했다. 신혼집 방문에도 화장지 하이타이가 대세일 때 난 꽃을 들고 갔다. 이상주의가 작동해서일까. 친구를 현실적 관계로 가두고 싶지 않아서?
결혼 후 사정이 좀 달라졌다. 선물은 주로 내 취향으로 했지만 받는 것은 먹거리가 최고였다. 특히 본인이 농사지은 것을 갈무리해 보내주는 먹거리 양념 들은 메마른 도시 생활로 건조해진 나에게 단비가 되었다.
며칠 전에 ”글짓기 코칭“ 수강생께 받은 먹거리 선물, 그분은 나 연배인데 충남 예산에서 10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소녀가장 역할을 지금까지 하는 분이다.
강의 첫날, 의젓하게 앉아있는 그분을 보는 순간 만만찮은 내공이 느껴져서
" 글 잘 쓰시겠는데요 “
했는데, 이 한 마디가 그분께 내가 인생의 두 번째 스승으로 자리 잡았다고 ~
계양산 자락에서 퇴직금 털어 1500평 땅을 사 가족들 먹일 농사를 지으며 몸에 달고 살았던 각종 질환을 자연 치유했다고, 내 몸이 시원찮다는 걸 알고 간간히 보리수 열매며 개복숭아 청을 갖다 주셨다.
계양산 기슭 농장의 보리수 열매
그것만으로도 넘치는데 추석선물이라며 이번엔 씨간장까지 챙겨 준다. 농장에 있는 건 3년밖에 안된 거라 10년 된 씨간장을 가지러 예산 고향 집을 다녀왔다고.
요즘, 간장의 종자라 불리는 ‘씨간장’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씨간장’의 사전적 의미는 ‘햇간장을 만들 때 넣는 묵은 간장’이다. 우리 조상들은 잘 숙성된 간장을 적당량 남겨 다음 해에 새로 만든 장에 부어서 기존 간장의 맛의 균형과 향을 유지해 왔다. 씨간장을 통해 간장 맛과 향을 대물림해 온 셈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간장 속 발효에 영향을 미치는 세균·곰팡이·효모의 수가 증가하고, 감칠맛을 내는 유리아미노산의 함량이 높아진다. ‘씨간장’은 진간장 가운데 가장 풍미가 좋은 것을 골라 애지중지하며 오랫동안 유지해 온 것이다. 말 그대로 맛의 씨앗이 되는 ‘씨간장’은 진득한 흑색을 띠며, 짠맛에 더해 기분 좋은 단맛을 내고 부드럽지만 화려한 풍미를 자랑한다.
우리 전통 간장은 장독이라고 하는 전통 옹기에 보관한다. 옹기는 숨을 쉬는 용기로 간장의 숙성을 돕는다. 담아두기만 한다고 숙성이 절로 잘 되는 건 아니다. 낮에는 장독 뚜껑을 열어 직사광선에 노출해 잡균을 없애고, 밤에는 수분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뚜껑을 닫아 줘야 한다. 조상들은 그 집안의 간장 맛과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 왔다. 각 가정의 음식 맛은 장맛으로 좌우되고 그 맛은 대를 이어 가문의 자랑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씨간장’은 어떻게 수백 년을 면면히 이어올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은 ‘덧장(또는 겹장)’ 문화에 있다. 장독대에 있는 간장은 요리에 사용되면서 당연히 줄어들게 마련이고, 숨을 쉬는 옹기의 특성상 수분이 증발하여 양이 줄기도 한다. 때문에, 매년 새로 담은 햇간장을 조금씩 더해 ‘씨간장’의 맛과 양을 유지하는 덧장 문화가 생겨난 것이다.
- 임경숙 (한식진흥원 이사장)의 글에서
구로공단에서 40년 일하며 눈빛 하나로 200명의 여성노동자를 움직였다는, 노조위원장도 했던 분. 짐작대로 글 솜씨도 필체도 훌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