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의 그림일기 1
그림은 사랑하나, 글씨체는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 적바림 - 명사. 나중에 참고하기 위하여 글로 간단히 적어 둠. 또는 그런 기록.
- 곰비임비 - 물건이 거듭 쌓이거나 일이 계속 일어남을 나타내는 말.
- 깨끄름하다 - 형용사. 깨끗하고 아담하다(우리말)
- 아망스럽다 - 형용사. 아이가 오기를 부리는 태도가 있다.(우리말)
조금 창피하지만, 악필이다. 올해 내 생각이나 글과 그림을 사랑해 주자 다짐했지만 차마 내 글씨체는 사랑하지 못하겠다. 이 비운의 악필러. 왜 ‘비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느냐. 지난 행적을 회고하면 그 이유를 아실 테다. 초등학교 시절 일기를 제출하면 글씨에 대한 적바림이 거의 빠지지 않았다. 대략 ‘즐거운 하루를 보냈군요! 내용은 좋지만, 손에 꾹꾹 힘을 쥐어 글씨를 쓰세요^^’식이다. 선생님은 웃으며 지적했지만, 그걸 읽은 엄마의 표정은 항상 심상스럽게 변했다. 폭풍우가 몰려올 것만 같은 하굣길이야. 엄마가 가방을 뒤지면 놀이터로 스리슬쩍 도망쳐야 했고, 실패하면 국어책 지문을 통으로 써야 했다...(ㅎ...)
마룻바닥에서 엄마의 서슬을 버티며 글씨를 연습하던 나날들. 한석봉이야 뭐야. 거짓 없이 ‘이 나이 먹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입을 댓 발 내민 채 손을 놀리곤 했다. 이까짓 글씨체, 고치고 말지. 결국 투지를 발휘하여 손을 아주 꾹꾹 눌러쓰니 알아볼 수 있는 글씨체로 변모하긴 했다. 그러나 그것도 의식하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학생일 땐 졸업을 맞이하는 선배 몇 명에게 편지를 줬는데 한 명이 읽고 싶어도 도저히 읽을 수없다며 울먹였다. 그 언니뿐만 아니라, 태반이 받아 놓고 내용을 못 알아본 것이다. 밤새 썼는데 무용지물이 됐다.(비교적 덜 피곤한 상태에서 쓴 걸 받은 언니는 그럭저럭 알아봤다고 말했다.)
더욱이 견딜 수 없는 건 글씨를 보면 사람이 보인다는 말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이야기하는 몇몇 사람들을 보니 아예 감추고 싶었다. 글씨체 하나로 깜냥 없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런 일이 곰비임비하니 지금은 손 편지를 쓰거나, 메모를 남기는 것도 꺼린다. 아, 캘리그래피 배워둘걸. 배웠으면 더 나았으려나. 유감스럽게도 내 주변엔 깨끄름한 글씨체를 자랑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부럽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했다. 억측으로 들리실 수 있는데 심지어 '쟨 참 아망 져. 글씨 봐. 뭘 해도 될 거야'(?)라고 생각했다. 글씨 하나만으로 이미 나와 같은 경지에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요즘 누가 손 편지를 쓰고 손메모를 쓰나. 카톡으로 다하지. 애써 씁쓸한 마음을 감췄다. 뭐 대충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의외의 곳에서 괜찮지 않은 상태에 봉착했다. 다름 아닌 그림 수업에서였다.
그림 수업이니까 손글씨 쓸 일 없을 줄 알았지! 예상조차 못 했다. 손글씨를 요하는 작업이 많았다. 구상 방법으로 아예 그림일기가 있었으니. 그림은 그런대로 괜찮게 완성했는데 그 위에 웬 갓 입학한 초등학생의 글씨가 턱 하니 자리하고 있다. 다른 사람은 그냥 지나칠 수 있겠지만, 내 눈엔 안 예쁜 게 너무 크게 보였다.
그래서 지금은 엄마 옆에서 글씨를 쓰던 초등학생으로 돌아가 다시 연습하고 있다... 피그먼트 라이너같이 얇은 펜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붓글씨 모양과 비슷하게 나오는 피그마 FB로 연습 중이다. 그때와 다른 게 있다면, 지금은 손을 그저 꾹꾹 누르는 대신 힘을 줘야 할 때와 그러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하는 걸 연습한다. 무조건 눌러쓰면 오히려 모양 잡기 힘들다. 내 나름의 요령은 생겼다. 요령만 생겼지 아직 향상은 미미하다.
남은 기간 동안 연습하면 어느 정도는... 어느 정도는 개선되지 않을까? 성공하리란 보장 없이 오늘도 종이 한 바닥을 가득 채우는 중이다.
*100일 글쓰기 곰사람카페에 올렸던 글입니다. 100일 동안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주신 따뜻한 메이트들이 '명백한 독자 기만이다', '당신이 무슨 악필이냐', '나야말로 평생 악필로 살아왔다', '내 글씨 본 적 있냐' 등 처음으로 개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디 가서 함부로 악필이라고 떠들지 말아야겠어용.
뭘 안 먹는다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