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미 완전한 존재들 11
‘더 완벽한 선을 그리겠다고 펜 꾹꾹 누르지 않기. 잘하려고 억지 부릴수록 그림이 더 안 나온다. 그림도 사람 사는 것과 다를 바 하나 없다.’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올리며 함께 썼던 글이다. 스케칭 연필로 자료를 보고 따라 그리는데 그림이 나쁘지 않았다. 욕심이 생겨 그럴듯하게 완성하고 싶은 마음에 리터칭 펜으로 여러 번 덧대다 보니, 어떤 건 너무 굵고, 어떤 건 얇고 들쭉날쭉, 일관성 없어 보였다.
손에 힘이 너무 들어가서 라인이 많이 흔들렸다. 그림이 나오지 않은 것보다 힘을 지나치게 들였던 과정에 속이 상했다. 즐겁게 하는 게 중요한 건데, 왜 그리 경직되어 있었는지. 그날 쉽사리 속상함이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내 그림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이런 시간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즐기는 것보다 실수하면 안 되고, 미술 성적을 잘 받아야겠다고 발버둥 쳤던 사람이다. 내 의지로 시작했다고 덮어놓고 즐거워하는 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나는 선 긋기도 어렵다. 손에 얼마나 힘줘야 선이 잘 나오는지 모르는 게 당연하지. 처음에 멋도 모르고 힘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점점 힘을 빼는 방법을 익히고 그림이 자연스러워지는 거다.
무엇보다 무조건 즐겨야 한다는 생각도 어찌 보면 강박이다. 세상에 무언가를 배울 때, 처음부터 끝까지 즐거워죽겠다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뭐든 고루한 시간이 따르는 법.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당연한 시간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이런 시간이 고스란히 베인 내 그림이 더 이상 나쁘게 보이지 않는다. 그런 과정을 거쳐 나온 그림이 기특하게 보인다. 앞으로도 잘 다독여주며 처음 마음처럼 그림을 사랑해 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