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완완 Mar 01. 2023

노란 병아리

우리 이미 완전한 존재들 12

 창작면허 프로젝트/ 대니 그레고리 87Page

 엉망인 그림 보는 법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 내 그림이 터무니없이 엉망인가? 무엇 때문에? 잘된 부분은 조금도 없나? 진짜? 흥미로운 부분이 하나도 없단 말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훌륭하고 굉장하다! 그리려고 마음먹은 걸 그렸으니까.

 

이제 멋진 걸 한번 그려 보자. 같은 방법으로 말이다. 지금까지 드로잉 한 대상들은 이제는 시간이 지나 치워 버렸거나 말라비틀어져 사라졌기 때문에 정확하게 그렸는지 확인할 수가 없다. 하지만 글 구성이라든가 분위기. 그린 취지, 빛과 톤의 풍부함과 그때의 기억들은 남아 있다. 첫 번째 그린 그림을 소중히 간직하자. 만약 그림을 전혀 안 그렸거나 몇 년 동안 그리지 않았다면 첫 그림은 아주 많은 걸 의미하게 된다. 그 그림들은 당신을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해 준 안내자다. 그러니 따스한 눈으로 애정을 담아 바라봐 주길 바란다. 당신 자신도 함께 말이다.

 


 개인 사정으로 100일 스케치북 수업을 빠졌다. 친절히 보강수업을 해주시겠다 해서 며칠 뒤 처음으로 선생님과 독대했다. 비록 줌이었지만, 현장 강의와 다를 바 없이 꼼꼼히 알려주셨다. 수업을 마치고 질문 있냐고 물어보시길래 평소에 궁금했던 걸 물었다.

 

“저는 피그먼트로 라인을 따기 전 스케칭 연필로 밑그림을 그려요. 괜찮은 방법인가요?”

 

선생님은 음_하고 잠시 고민하시다니 입술을 떼셨다.

 

“무슨 마음으로 그렇게 하는지 알 듯해요. 실수하면 안 되니까 그러시는 거죠? 연필은 지우개로 지울 수 있으니까요. 수강생분 중에 이 수업을 두 번 듣는 분이 계세요. 그분은 이제 스케칭 연필 없이 바로 펜으로 밑그림을 칠한대요. 당연히 그분도 실수하겠죠? 그래도 그림은 정말 많이 늘 거예요. 실수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피사체를 자세히 보니까요. 관찰력이 좋아지면 그림이 당연히 늘죠. 그림 그리는데 몇 분 정도 걸려요?”

“30분이요.”

“30분. 네. 그런데 우리는 100일 동안 매일 그림을 그려야 해요. 정말 바쁜 날도 있겠죠? 일하거나 외출하다 보면 스케치북을 피기조차 힘든 날도 있을 거예요. 부담돼도 짧은 시간 안에 그리는 연습을 해야 해요. 그래야 지속할 수 있죠.”

 

  보통 수업을 들으면 많은 자극을 받는데 이번엔 부담감이 앞섰다. 내 나름의 노력이 틀렸구나. 물론 틀렸다고 하지 않았지만 지금 방법으로도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기 쉽지 않은데 바로 펜으로 그려도 될까. 그날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과제를 올리지 않았다.


 하루 정도 빠진 건 그렇다 쳐도 남은 85일을 이런 식으로 피할 순 없었다. 순식간에 찾아오는 다음 날이 야속했다. 주제는 병아리였다. 자료는 왜 이리 어렵게 보이던지. 미루고 미루다가 마감 시간이 다가왔다. 스케치북을 피기만 하고 뭉그적대는데 먹구름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조금 거쳤다. 그 김에 피그먼트로 슥슥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선생님 말씀대로 그림을 전에 없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스케치북에 어떻게 구도를 잡아야 하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완벽하게 똑같이 그릴 순 없지. 그래도 내가 걱정했던 것보단 훨씬 더 나은 그림을 완성했다. 사실 스케치만 봤을 때 기존 방법으로 공들일 때보다 좋았다.

 

 16일 만에 스케칭이 향상되어 그런 건 아닐 거다. 달라진 게 있다면 조금 더 대범하게 그렸을 뿐. 내가 실수하면 그걸 넋 놓고 보고만 있을 사람인가. 그리고 실수하면 그림이 엉망이 되는 건가. 엉망인 그림은 처음부터 없었어. 그냥 그려. 괜찮아. 그런 마음으로 그렸다.


 병아리가 조금씩 완성될 무렵에는 웃으면서 그렸다. 노란 수채화 색연필로 칠한 내 병아리. 보송보송한 솜털이 따뜻해 보였다. 안아 들었을 때 남들보다 차가운 내 손이 따뜻하게 데워질 것처럼. 그 병아리를 나는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봐 주었다. 덤으로 나도.  




이전 10화 예쁘고 사랑스러운  친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