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미 완전한 존재 7
3월부터 한겨레에서 주관하는 그림책 아카데미(오전)를 다닌다. 어제 수강 신청을 마쳤다. 수업은 주 2회로 총 48회에 걸쳐 진행된다. 이제 여름까지 내 일상은 그림책을 축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동안 그림책 학교, 아카데미는 멀게만 느껴졌는데. 사실 금액대가 만만치 않아서 신청하는 걸 망설였다. 누가 그림책 학교를 입학했단 이야기만 들어도 부러웠다. 부담이 훨씬 덜 되는 취미용 그림책 만들기 수업이나 특강을 들으며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아쉬운 마음을 달랬었는데. 결국 작년에 부었던 적금을 깨서 듣는다.
내가 그동안 들었던 수업과 차원이 다르다. 기존에 수강했던 수업이 취미용 그림책 만들기에 그쳤다면, 아카데미 수업의 목적은 작가를 양성하는 데 있다. 예컨대, 지난 수업이 내 이야기를 16페이지에 담아내는 과정과 그림책을 인쇄하는 방법 등에 초점을 뒀다면 이번에는 책과 그림 언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까지 요구하는 것이다. 작가에게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배운다. 커리큘럼과 후기만 봐도 쉽지 않은 수업이 될듯하다.
‘작가가 되고 싶어서’라는 거창한 이유도 있지만, 그거보다 이 애매한 삶을 끝내고 싶었다. 애매한 삶을 끝내려면 ‘애매하지 않은 결정’을 해야만 한다. 속절없는 삶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이 정도만 목소리 내면 되겠지. 이 정도만 들어주면 되겠지. 씁쓸한 표정으로 억지 만족하고 싶지 않다. 충만한 삶을 살고 싶다. 나에게 충만한 삶이란, 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데 몰입하고 그 이야기를 사람들이 들어주는 삶, 때론 누군가의 목소리를 귀 기울이고, 그 목소리를 이야기로 만들어 울려 퍼지게 만드는 삶이다. 내겐 어마어마한 삶이다. 그런 삶을 살려면 큰 결정을 내릴 수밖에.
굳게 결심했는데도 하루에도 몇 번씩 두려움이 불쑥 찾아와 나를 흔들었다. 할 수 있을까, 치기 어린 결정이 아니었나 불안했다. 근심에 잠식되어 커서가 깜빡이는 흰 화면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는데 문득 나를 다독이는 메시지를 적고 싶었다.
분량이 어찌 됐든,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가든 그 시간 동안 최고로 진실하게 임하자. 내 미만함을 마주 보고 도망치지 말자. 끝에는 ‘난 전공자도 아닌데 이 정도면 잘했지,’ 체념하는 게 아닌, 한 장 한 장을 넘겨보며 ‘의미와 최선이 부재한 면이 없구나’, 그렇게 회고하며 진심으로 만족하자.
무거운 고민이 조금 가벼워진다. 맞다. 공모전에 낼 그림책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내 미흡함도 끌어안는 성숙한 삶, 나와 다른 이의 이야기를 메아리치게 하는,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도 배울 수 있는 거다. 부디 과거와 오늘보다 밝은 표정으로 그런 삶을 살아가는 내가 되었으면. 오늘의 글은 기록이 아닌, 예언으로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