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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완 Apr 24. 2023

처음은 처음일 뿐

우리 이미 완전한 존재들 9

  나에게 처음은 늘 괴롭다. 어떤 일을 처음 시작할 땐 설렘보다 혹시나 다 망쳐버리지 않을까, 걱정부터 앞선다. 오랜만에 베이비시터를 하게 되었다. 처음엔 전화로 넘어오는 어머님의 목소리가 차분하고 다정하셔서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시터 사이트에 적힌 구인 조건 모두 괜찮았다. 그런데도 전날부터 자꾸만 최악이 상상되었다. 전 직장에서 일할 때처럼 내성적인 모습을 마음에 안 들어 하면 어떡하지, 내가 아이에게 실수하면 어떡하지, 아이랑 어색하거나 놀이 합이 맞지 않아서 자꾸 마가 뜨면. 머릿속에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지고 극악의 결말에 다다랐을 무렵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후회했다. 그러다가도, 아니야, 아직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잖아. 애써 나를 다독이니 오늘이 왔다. 먼저 집 앞에 도착했다고 연락드린 뒤, 잠시 바깥에서 기다리며, 머리와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목소리만큼 다정한 미소로 어머니가 맞이해주셨다. 마음속에 울컥 올라오는 최악의 상상을 깊은 광주리에 가두고 어머니와 아이에게 인사했다. 막상 만난 아이는 너무나 예뻤다. 낯을 조금 가리느라, 어머니의 등 뒤에 숨어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던 아이가 어느새 본인이 꽤 아끼는듯한 자동차 그림판을 갖고 와 내 무릎에 앉았다. 끝날 무렵에는 다가와 착 안기기도 했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데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보는 어머니의 말에 진심으로 재미있었다고 했다. 인사를 나누고 웃는 얼굴로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데 조금은 신기했다. 내가 조금 변했나. 실습 때도, 직장에서도 선생님은 아이를 어려워하는 것 같다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해서 나는 다시는 이쪽 일을 못 할 줄 알았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시터를 다시 하게 되었고, 막상 아이랑 놀이했을 때, 예전에 내가 실수한 부분을 생각하며 그거와 반대로만 하자, 어색해도 조금만 용기 내자 생각하니 아이랑 금세 친해졌다.


 처음이 이렇게 기분 좋게 마무리될 수도 있는 건데, 나는 뭘 안다고, 뭘 예상하고 그렇게 내 처음을 괴롭혔나. 하다못해 내가 사주를 배웠으면 말을 안 해, 타로를 다룰 줄 알면 말을 안 해. 근거 하나 없이 뭘 그리 무서워했는지.


 비단 오늘만이 아니다. 나는 늘 그랬다. 글쓰기, 그림. 이외에도 조금이라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 내 처음은 긴장과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렇다 보니, 알고 있고, 할 수 있는데도 주춤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내가 자신감이나 의욕이 없다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나간 일을 후회해봤자 좋은 것 하나 없다. 그건 그냥 지나간 일이라고 하자. 대신 앞으로의 처음을 그냥 처음으로 보자. 그 처음이 잘될 거라 뻐기지 말고, 또는 잘못될 거라 난도질하지 말자. 처음은 처음일 뿐, 어떤 비극의 도입도, 복선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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