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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완 Sep 16. 2023

노란 악어

진지한 끼적임

우리 집 화장실엔 노란 악어 두 마리가 살지.

구석 진 곳에서 물기 없이, 메마르게.

우는 소리 하나 없이 살아가지.

발사이즈 평균 245.

우리는 악어의 등을 탈 수 없지.

여섯 살 조카아이 소란이 들어올 때  

노란 악어는 이보다 더 구김 없고

이보다 더 꼿꼿할 수 없는 몸을 더욱더 꼿꼿이 펴겠지. ​


내리쬐는 백색 빛과

조카의 서투른 손 닦이에 떨어지는 물방울 맞으며

빛 한 줌 없는 어둠에서 잃어간 믿음을 깨우리라.

우리는 악어였지.

빛도 없고 아무도 없으면

서로의 몸에 바싹 기대어

플라스틱 눈알을 옆으로 한껏 돌리며

서로를 보며 속삭이리라.

우리는 바다로 버려지겠지.

입 안으로 들어오는 짜디 짠 바닷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바닷바람 쐬며 파도 위를 영원히 유영하겠지.

아니지. 정글로 버려지겠지.

그 매서운 밀림에서 먹히지 않으며

열대의 더운 공기를 마시며

영원을 살아가겠지.

이브이에이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짐에 감사하며. ​


둘은 한날한시에 버려지겠지.

조카아이 발조차 들어맞지 않는 그날에.

애써 눈을 감으려 해도 감기지 않는 눈꺼풀

타들어 감을 지켜보겠지.​


한 짝이 아니었음에 감사해.

고마웠어.

작별을 고하겠지.  

손 잡아주지 못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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