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때 죽고 싶던 시절을 돌아보며
퇴사하고 1년이 지난 지금, 오래전에 작성하다 묵혀둔 글을 꺼내보며.
2년을 다닌 회사를 그만두었다. 나의 20대 후반을 함께한 두 번째 회사였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절, 줌으로 온라인 회식을 하던 문화에 감격을 했던 2021년이었다. 좋은 회사 안에서 서비스기획자로 발전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던 2022년이었다. 그리고 점차 낡고 지쳐가던 2023년 7월, 퇴사를 했다.
퇴사를 하기 전에는 고민을 밥먹듯이 했다. 이직과 진급을 하면서 연봉이 많이 올랐다. 이후에 입사한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알려줄 만큼 회사에 적응도 되었던 시점이었다. 그저 스트레스가 많고 지친다는 사실로 회사를 그만둔다는 생각이 배부른 소리 같았다. 남들 다 이정도 스트레스는 받으며 사는데 나만 유난 떠는 것은 아닐까. 그냥 내가 조금만 참으면 될 일이지. 대기업이라는 타이틀과 만족스러운 연봉, 복지, 전문성 있는 직무, 조금 더 참는다면 더 멋진 커리어를 쌓아서 더 괜찮은 곳으로 이직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도 있었다. 문제는 그럼에도 숨이 탁탁 막힌다는 것이었다.
가장 답답함을 느낀 부분은 경직된 조직문화였다. 기획을 하고 컨펌을 받았지만 별다른 근거 없이 뒤집히는 일이 다반사였다. 사유는 '위에서 시켜서' 였다. 겉으로는 data-driven을 표방하지만 정작 윗선의 한 마디면 오픈 직전에도 무엇이든 다 바꿔야 하는 조직이었다. 그렇게 오픈을 하고 나면 돌아오는 것이 수정사항 목록 뿐일 때의 좌절감. (그 수정사항들조차 본질을 꿰뚫지 못한 단순한 겉핧기라고 느껴지곤 했다.) 기획자이자 PM으로서 많은 이들을 다독이고 리딩을 하지만 정작 나의 리더들은 나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 무렵 나는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상장을 받은 어린 아이처럼 좌절했다.
봄을 지나 여름의 초입에서 나는 고민의 결을 바꿨다. 어떤 회사로 갈까가 아닌 좀 더 근원적인 질문을 했다. 나는 일을 왜 할까. 어떤 일을 좋아하나. 내가 일로써 얻고 싶은 것들은 무엇일까. 내가 회사에서 포기할 수 있는 것과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결국 어떤 모양으로 살고 싶나.
나는 의미가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일은 하고 싶지가 않았다. 조직 안에서는 위에서 내려오는 업무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럼에도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이 회사의 구성원으로써 같이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필요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고 퇴근 후에도 일로 머리 싸매는 내게, 회사에서 그 정도의 의미를 줄 수는 있어야 했다. 그리고 현 조직과 나의 방향은 맞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그렇게 퇴사를 하고 1개월이 지났다. 생각보다도 더 평온한 삶이었다. 그간 스트레스가 일상을 잠식했던 시간들이 꿈만 같았다. 퇴사를 하기 전 고민거리들을 늘어놓은 일기에는 울고 화냈던 기록만 있는데 그 글을 내가 쓴 것이 맞나 싶을 지경이었다. 2년 동안 이런 생각으로 살아왔다니. 너무 가엽고 안쓰럽다.
2022.05.20
할 일은 산더미이고,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정신이 없고 하기 싫고 죽고 싶다.
월급을 받았다. 분명 큰 돈이다. 어차피 돈을 받으면 다 사라질 일을. 왜 벌어야 하지?
금요일인데 이렇게나 끔찍할 수가.
2022.06.08
집에 오며 지하철에서 엉엉 울었다. 술에 취해서 울었는지, 서러워서 울었는지.
오빠는 더 이상 회사가 나를 갉아먹게 두지 말라고 했다. 이직은 준비하되, 그것과 관계없이 그만두라고.
좋아하는 유투브 영상을 듣다가 마음에 말들이 박힌다.
힘든 상황에서는 기꺼이 도망쳤으면 좋겠다.
나를 너무 아프게 하는 것에 오래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다.
멍청해. 멍청해서 아무것도 못하는 내가 너무 한심하다.
2023.04.17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다가도, 꼭 마음이 무너질 것 같은 연락이 오면 눈물이 날 것 같다.
정말 별 일도 아닌 연락에도 눈물이 날 것 같다. 남들도 다 하는 일인데 마음이 시큰거린다.
병이다 싶다. 해야만 하는 것들, 해야 하는 일이고 그 마저도 하나씩 쳐내고 있는데 울컥한다.
더이상은 오빠에게 구구절절 뱉고 싶지가 않다.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면, 어는 순간 이 말을 아무에게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2023. 6. 8
매일 울고 있다.
오늘은 일을 하다 5시쯤, 갑자기 회사에서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와 입술을 깨물고 일을 했다.
매일 참담한 기분이 든다. 집에 오는 길에, 엄마와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적인 통화를 하고 또 눈물이 났다. 그렇게 울려는 표정을 엘베 거울에서 마주한 순간. 저게 나의 본 얼굴인가. 아주 보기가 싫었다.
축구를 보며, 아 이렇게 죽고싶다- 라고 그에게 했다. 행복한 순간에 죽고 싶었다.
매일 울던 저 시절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힘들었다는 흐릿한 잔상만 남을 뿐이다. 당시의 나는 무기력하고, 전투를 나가는 심정으로 다녔었다는데 남의 일만 같다. 삶은 참 신기하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이 기억이 나지 않는 순간이 오다니.
지금의 나는 꽤 행복하다. 술자리가 많이 줄었다.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해서 나의 계획대로 시간을 쓸 수 있다. 내가 유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기꺼이 투자할 수 있다. 프로젝트가 잘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에 불안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잘 되지 않으면 될 때까지 하거나 B를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한다. 주말에는 데이트를 하고, 평일에는 필라테스를 꾸준히 한다. 좋아하는 그릇에 음식을 요리하고 주변 사람에게 나눈다. 이제는 딱히 울고 싶다거나 행복한 순간에 죽고 싶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다. 신기한 일이다.
그 시절보다 건강하고, 마음이 여유롭고, 통장 잔고도 넉넉한 지금이다. 차근차근 나의 점을 찍다보면 몇 십년 뒤의 나는 더 근사한 모습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척박한 시절을 견뎌내준 그 때의 나에게 고맙다. 인생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힘든 시절의 결단 덕분이라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결코 쉽게 얻은 평화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