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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제니 Apr 10. 2024

Total Eclipse, 개기일식을 보다 -1

개기일식 당일에 천둥번개 예보라니...

부분 일식이 시작되었다!

비행기 티켓 거의 2배 가격, 호텔비는 거의 3배를 주고 예약한 텍사스행이었다.

완전일식이 미국 본토를 관통하는 흔치 않은 이벤트. 남부에서 중부를 지나 동북부까지 올라가서 캐나다를 지난다. 내가 사는 버지니아 지역에서는 약 80% 정도가 가리는 불완전일식을 볼 수 있다. 나와 남편은 완전 일식을 보기 위해서 어느 지역으로 가는 게 좋을지 오랫동안 고심했다. 남부에 가려면 비행기를 타야 한다. 중부~북동부 지역은 차를 타고 다녀올 수 있다.

문제는 날씨. 4월까지 종종 눈이 내리는 미 북동부 날씨를 생각하니 그쪽을 선택하는 건 위험부담이 있었다. 북중부 오하이오로 갈까도 생각했는데, 거기도 마찬가지. 아무래도 텍사스가 날씨로는 가장 안전할 것 같았다.

일식 당일의 날씨가 어떨지 온 뉴스에서 몇 달 전부터 보도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예년 날씨를 바탕으로 예측해서 텍사스가 오하이오보다 맑을 확률이 훨씬 높다고 계속 보도되고 있었다.
마침 만료일이 얼마 남지 않은 항공사 크레딧도 있어서 텍사스로 결정!

일식을 두어 달 앞두고 예약하려니 모든 게 말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비행기도 거의 2배 가격이었고, 호텔은 이미 거의 다 만실, 예약 불가. 남아있는 호텔들은 원래도 아주 비싼 고급 호텔이거나 아니면 inn급의 방인데 호텔 가격으로 받는..ㅋㅋ 그런 방이었다. 어쩌겠나.
원래는 일식 보러 가는 김에 주말 동안 여행이라고 하자며 샌 안토니오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뭐 미국 사람들 다 비슷한 생각이었겠지? 나름 휴양지인 샌 안토니오행 비행기는 정말 너무너무 비쌌다. 호텔은 더더욱 비쌌다. 그래서 다시 계획 변경. 볼 거 없는(?) 도시로 가자. 달라스 선택.
달라스라니! 달라스는 미국 올 때 비행기 환승 외에는 와본 적이 없는 도시다.

그렇게 한 두 달 전에 필요한 예약을 마치고 잊고 지내다가 일식 2주일 전쯤부터 날씨 예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어째서? 텍사스에 천둥, 번개, 폭우 예보가 뜬 거죠?
어째서 뉴잉글랜드 지역은 맑을 예정인 거죠???
날씨 때문에 텍사스로 정한 건데,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우리 돈 많이 썼는데 좀 봐줘라 제발..

출발 사흘 전에는 정말 우울했다. 날씨 앱을 열어서 달라스 날씨를 보면 그냥 구름 아이콘도 아니고 구름에 번개에 비 다 있고 옆에 빨간 느낌표까지 떠 있었다. 이게 뭐람. 실화냐..

출발 이틀 전에는 남편이랑 달라스 호텔 그냥 노쇼 하고 차 타고 당일치기로 클리블랜드를 가야 하나 30초 정도 진지하게 고민했다.
출발 하루 전, 이때는 이제 그냥 마음을 좀 내려놓고, 구름 껴서 못 보더라도 여행 자체에 의의를 두자ㅋ... ㅋㅋ.. 일상을 벗어나는 것에 의미를 두자며 정신승리를 하고.
출발 당일, 아침부터 폴댄스 학원 다녀오고 임보 고양이들 다시 보호소에 데려가고 짐 싸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나서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모자 눌러쓰고 부랴부랴 공항으로 가니까 그때부터는 이제 뭐가 됐든 재밌게 놀자, 비행기 타고 놀러 간다는 설렘으로 가득 찼다.

늦은 밤 달라스 공항에 도착했고, 남부 억양이 진한 우버 드라이버와 잡담을 하며 숙소로 향했다. 힐튼 계열사 중 Spark라는 곳인데 고속도로 옆 모텔 같은 느낌이었다. 진짜로 모텔 건물을 힐튼이 사들여서 개조한 거였다! 여기서 2박 하는데 $700불을 태웠나.. (원래는 1박에 $150 정도다) 현타가 아주 씨~게 밀려왔다. 그런데 또 체크인하고 막상 들어가 보니 침구도, 가구도, 화장실 어메니티도 모두 새 거였다. 그런 물품만이 아니라 복도에선 페인트 냄새도 채 가시지 않았고 화장실 샤워부스에는 사용의 흔적조차 없을 정도로 새 건물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레노베이션 후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마음이 다시 슬그머니 풀어지면서 여행이 즐거워졌다.

그날 밤 남편과 호텔 방 안에서 염원의 춤을 췄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춤을 췄다. 마치 공작새가 날개를 활짝 펴고 구애의 춤을 추는 것처럼 두 팔을 하늘 높이 들고 펄쩍펄쩍 뛰면서 구름 걷히게 해 주세요~~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파묘]의 김고은처럼 태양을 기원하는 의식을 치렀다.

다음 날, 일식 하루 전인 일요일, 우리는 달라스 시내에 가서 미술관도 가고 맛있는 멕시코 음식도 먹고 좋은 시간을 보냈다. 이 날 정말 날씨가 얼마나 맑았는지 모른다. 문자 그대로 구름이 한 점도 없는 새파란 하늘. 햇살은 따사롭지만 선선한 바람이 불어 그늘 아래로 들어가면 시원한, 그야말로 최.상.의 날씨였다. 왜 이게 내일이 아닌 거야? 왜죠?
날이 이렇게 맑은데 다음날 천둥 번개 먹구름 폭우는 도저히 말이 되지 않았다. 날씨 앱에서는 이제 1시간 단위의 예보를 볼 수 있었고 불행 중 다행으로 일식이 일어나는 동안은 비가 오지 않을 예정이었다. 대신 구름이 하늘의 90프로를 덮는다고 나왔다.

90프로! 그럼 어쨌든 어느 순간에 잠깐이라도 볼 수는 있겠네!
나의 마음은 다시금 긍정으로 가득 찼고 (컵에 물이 반이나 있잖아!)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그간 이것저것 일이 너무 많아서 바빴던 터라 그 정신없던 일상을 벗어나서 분위기도 날씨도 억양도 전혀 다른 도시에 와 있는 것 자체가 환희였다. 푸드 트럭에서 타코를 사서 공원 벤치에 앉아 먹으면서 삼삼오오 나들이 나온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니 무릉도원 같았다. 그 순간에는 정말이지, 설령 내일 개기일식을 보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다음 날의 구름 커버리지 예보 또한 하루 종일 실시간으로 바뀌고 있었다. 90프로에서 조금씩 떨어져서 어느새 60%대까지 떨어졌다. 희망으로 가득 차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잠에 빠졌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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