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골제니 Nov 02. 2021

내가 물이고, 물이 곧 나였다

When you really relax, you become water


어느덧 하와이의 마지막 날이다. 날짜상으론 내일 출국이지만, 이른 아침 비행기여서 사실상 오늘이 마지막이다.

몸이 물에 떴던 그 기억을 잊지 못해서, 아니, 잊기 '싫어서' 다시 바다로 향했다.

와이키키..가 아니라, 내가 있던 곳은 실은 쿠히오 비치였다. 와이키키 쪽은 아주 얕지도, 깊지도 않은 수심이 해안가로부터 몇십 미터나 유지되어서 서핑하기에 아주 최적이라, 서퍼들이 많다. 수영도 못 하고 이제 막 물에 뜨기 시작한 갓난아기 같은 나는 조용하고 잔잔한 쿠히오 비치에서 놀아야지.


하루 종일 바다에 있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아쉬워서 도저히 나갈 수가 없었다. 삼투 작용 때문에 몸에서 수분이 자꾸만 빠져나가서, 막판에는 손이 퉁퉁 불다 못해 저리기까지 했다


어제 이후로 몸을 띄울 수 있게 되어 계속 둥둥 떠다녔다. 바다 위의 작은 부표처럼 그저 파도에 몸을 맡기어 둥둥.

부유했다.

자유롭게 유영했다.

물에 그저 떠 있는 것도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물결을 타고 달려 나가는 서핑은 얼마나 더 짜릿할까. 저 멀리에 바다 위 작대기처럼 보이는 서퍼들이 몹시도 부러웠다.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서핑을 할 수 있을까!

신기하게도, 몇 해 전 워터파크에서 친구들을 붙잡고 덜덜 떨 정도로 물을 무서워했던 나인데. 이젠 뭐랄까, 적어도 죽지는 않겠다-는 자신감도 생기고, 물이 안 무서워졌다.



그렇게 신나게 둥둥 떠다니고 있던 중, 근처에서 물개처럼 헤엄을 치던 재패니즈 아메리칸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왔다. 선글라스를 끼고 어떻게 수영을 하냐고 묻는다.

아, 사실은 저 수영하는 게 아니라 그냥 '떠다니는' 중입니다. 수영은 이제 배워야 합니다-라고 대답하자, 할아버지는 간결하면서도 심오한 말을 했다.


"물속에서 수영을 하려면 네가 물이 되어야 해. 몸의 긴장을 다 풀면, 네 몸속의 케미컬이 다 물이 되는 거야. when you really relax, you become water."



몸이 버틸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바다에 있었다. 유명한 식당에 가서 혼자 저녁을 먹으면서도 바다를 떠올렸다.

벌써 마지막 날이라니.. 내일 아침에 공항 가기 전에 나가서 수영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힘들겠지. 방수팩 하나 사서 바다에서 사진 좀 찍을 걸.. 진한 아쉬움이 섞인 작은 후회들이 조금씩 피어났다.


아롱아롱 일렁이는 물결과 빛나는 햇살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는데. 그래도 눈에, 마음에 가득 담았으니 되었다.

지금의 아쉬운 마음이 언젠가 나를 다시 와이키키로 데려오리라 믿는다.


(完)

작가의 이전글 영원히 잊지 못할 경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