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일식이 미국 본토를 관통하는 흔치 않은 이벤트. 남부에서 중부를 지나 동북부까지 올라가서 캐나다를 지난다. 내가 사는 버지니아 지역에서는 약 80% 정도가 가리는 불완전일식을 볼 수 있다. 나와 남편은 완전 일식을 보기 위해서 어느 지역으로 가는 게 좋을지 오랫동안 고심했다. 남부에 가려면 비행기를 타야 한다. 중부~북동부 지역은 차를 타고 다녀올 수 있다.
문제는 날씨. 4월까지 종종 눈이 내리는 미 북동부 날씨를 생각하니 그쪽을 선택하는 건 위험부담이 있었다. 북중부 오하이오로 갈까도 생각했는데, 거기도 마찬가지. 아무래도 텍사스가 날씨로는 가장 안전할 것 같았다.
일식 당일의 날씨가 어떨지 온 뉴스에서 몇 달 전부터 보도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예년 날씨를 바탕으로 예측해서 텍사스가 오하이오보다 맑을 확률이 훨씬 높다고 계속 보도되고 있었다. 마침 만료일이 얼마 남지 않은 항공사 크레딧도 있어서 텍사스로 결정!
일식을 두어 달 앞두고 예약하려니 모든 게 말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비행기도 거의 2배 가격이었고, 호텔은 이미 거의 다 만실, 예약 불가. 남아있는 호텔들은 원래도 아주 비싼 고급 호텔이거나 아니면 inn급의 방인데 호텔 가격으로 받는..ㅋㅋ 그런 방이었다. 어쩌겠나. 원래는 일식 보러 가는 김에 주말 동안 여행이라고 하자며 샌 안토니오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뭐 미국 사람들 다 비슷한 생각이었겠지? 나름 휴양지인 샌 안토니오행 비행기는 정말 너무너무 비쌌다. 호텔은 더더욱 비쌌다. 그래서 다시 계획 변경. 볼 거 없는(?) 도시로 가자. 달라스 선택. 달라스라니! 달라스는 미국 올 때 비행기 환승 외에는 와본 적이 없는 도시다.
그렇게 한 두 달 전에 필요한 예약을 마치고 잊고 지내다가 일식 2주일 전쯤부터 날씨 예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어째서? 텍사스에 천둥, 번개, 폭우 예보가 뜬 거죠? 어째서 뉴잉글랜드 지역은 맑을 예정인 거죠??? 날씨 때문에 텍사스로 정한 건데,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우리 돈 많이 썼는데 좀 봐줘라 제발..
출발 사흘 전에는 정말 우울했다. 날씨 앱을 열어서 달라스 날씨를 보면 그냥 구름 아이콘도 아니고 구름에 번개에 비 다 있고 옆에 빨간 느낌표까지 떠 있었다. 이게 뭐람. 실화냐..
출발 이틀 전에는 남편이랑 달라스 호텔 그냥 노쇼 하고 차 타고 당일치기로 클리블랜드를 가야 하나 30초 정도 진지하게 고민했다. 출발 하루 전, 이때는 이제 그냥 마음을 좀 내려놓고, 구름 껴서 못 보더라도 여행 자체에 의의를 두자ㅋ... ㅋㅋ.. 일상을 벗어나는 것에 의미를 두자며 정신승리를 하고. 출발 당일, 아침부터 폴댄스 학원 다녀오고 임보 고양이들 다시 보호소에 데려가고 짐 싸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나서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모자 눌러쓰고 부랴부랴 공항으로 가니까 그때부터는 이제 뭐가 됐든 재밌게 놀자, 비행기 타고 놀러 간다는 설렘으로 가득 찼다.
늦은 밤 달라스 공항에 도착했고, 남부 억양이 진한 우버 드라이버와 잡담을 하며 숙소로 향했다. 힐튼 계열사 중 Spark라는 곳인데 고속도로 옆 모텔 같은 느낌이었다. 진짜로 모텔 건물을 힐튼이 사들여서 개조한 거였다! 여기서 2박 하는데 $700불을 태웠나.. (원래는 1박에 $150 정도다) 현타가 아주 씨~게 밀려왔다. 그런데 또 체크인하고 막상 들어가 보니 침구도, 가구도, 화장실 어메니티도 모두 새 거였다. 그런 물품만이 아니라 복도에선 페인트 냄새도 채 가시지 않았고 화장실 샤워부스에는 사용의 흔적조차 없을 정도로 새 건물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레노베이션 후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마음이 다시 슬그머니 풀어지면서 여행이 즐거워졌다.
그날 밤 남편과 호텔 방 안에서 염원의 춤을 췄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춤을 췄다. 마치 공작새가 날개를 활짝 펴고 구애의 춤을 추는 것처럼 두 팔을 하늘 높이 들고 펄쩍펄쩍 뛰면서 구름 걷히게 해 주세요~~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파묘]의 김고은처럼 태양을 기원하는 의식을 치렀다.
다음 날, 일식 하루 전인 일요일, 우리는 달라스 시내에 가서 미술관도 가고 맛있는 멕시코 음식도 먹고 좋은 시간을 보냈다. 이 날 정말 날씨가 얼마나 맑았는지 모른다. 문자 그대로 구름이 한 점도 없는 새파란 하늘. 햇살은 따사롭지만 선선한 바람이 불어 그늘 아래로 들어가면 시원한, 그야말로 최.상.의 날씨였다. 왜 이게 내일이 아닌 거야? 왜죠? 날이 이렇게 맑은데 다음날 천둥 번개 먹구름 폭우는 도저히 말이 되지 않았다. 날씨 앱에서는 이제 1시간 단위의 예보를 볼 수 있었고 불행 중 다행으로 일식이 일어나는 동안은 비가 오지 않을 예정이었다. 대신 구름이 하늘의 90프로를 덮는다고 나왔다.
90프로! 그럼 어쨌든 어느 순간에 잠깐이라도 볼 수는 있겠네! 나의 마음은 다시금 긍정으로 가득 찼고 (컵에 물이 반이나 있잖아!)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그간 이것저것 일이 너무 많아서 바빴던 터라 그 정신없던 일상을 벗어나서 분위기도 날씨도 억양도 전혀 다른 도시에 와 있는 것 자체가 환희였다. 푸드 트럭에서 타코를 사서 공원 벤치에 앉아 먹으면서 삼삼오오 나들이 나온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니 무릉도원 같았다. 그 순간에는 정말이지, 설령 내일 개기일식을 보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다음 날의 구름 커버리지 예보 또한 하루 종일 실시간으로 바뀌고 있었다. 90프로에서 조금씩 떨어져서 어느새 60%대까지 떨어졌다. 희망으로 가득 차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잠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