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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난달 Jul 23. 2020

단편 습작

9

죽으려고 하는 이유요? 글쎄요. 나열하자면 너무 길어요. 근데 뭐 어쩌겠나요. 써 내려가야죠. 어차피 떠날 세상 이렇게 제 삶의 가치라도 남길 수 있으니 오히려 기분이 좋네요. 얼마만인지. 아, 말이 많았군요. (쓰는 거긴 하지만요.) 죄송해요. 지금처럼 말을 많이 한 적이 오랜만이라. 그래도 이해해주실 거죠? 음... 일단 제가 죽자고 생각한 것은... 한 달만에 나간 집 앞 거리가 너무 이뻐서였어요. 여름답지 않은 시원한 바람, 흔들리는 가로수, 그 아래 세 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어린아이, 그 뒤에 걱정하면서 쫓아가던 한 엄마의 모습까지. 모두가 이쁜 거예요. 정말 그렇죠?


아, 왜 나갔냐고요? 궁금하실 수 있겠네요. 방 안에 쭉 있을 수도 있는데. 그날은 제 생일이었어요. 요즘은 생일이 되면 막 사람들에게 알려줘요. 카톡이나 페북이나 뭐 그런 것들이요. 뭐라 하더라... 아! SNS! 영어론 소셜 미디어죠! 그런 앱들은 생일이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생일이라고 알려줘요. 저 같은 사람에겐 정말 신기한 일이에요. 뭐 그렇다고 축해주는 사람은 없지만요. 그래도 저번에 통신사가 보낸 문자엔 세상에 기프티콘이 있는 것 있죠? 그것도 스타벅스 아이스 아메리카노로요. 뭐 우리 집에선 아니, 제 집에선 좀 떨어져 있지만요. 덕분에 좋은 풍경들도 봤답니다.


카페에 들어서니 또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엔 뭐냐고요? 세상에 저는 그렇게 사람들이 쉴 틈 없이 일하는 것은 처음 봤어요. 인상을 쓰면서도 손님이 오면 바로 웃어요. 누가 봐도 가짜 웃음이에요! 근데 전 부럽더라고요. 억지로라도 웃는 이유가 있다니. 아무튼 제가 카페에 갔을 때가 공교롭게도 점심시간이었어요. 아시죠? 저희 집은 옆엔 회사들도 있고 좀 더 멀리 가면 바다도 있는 곳이라는 거. 점심시간에 사람은 얼마나 많던지. 다들 삼삼오오 모여서 커피를 시키고 아르바이트생들은 진짜 분주하게 움직여요. 그렇게 몰입해서 무엇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오랜만에 봤어요. 그 시원한 카페에서 땀방울이 이마에 맺히더라고요(사장은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말이죠).


얼마 지나고 저는 커피를 받았어요. 테이크아웃 잔이었는데 그냥 창가 쪽 빈자리에 앉았어요. 아 그러면 안 되는 거는 저도 알아요. 근데 그 자리 옆 원형 테이블에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눈길이 갔어요. 사원증이 목에 걸려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한 때 제가 정말 원했던 거예요. 너무 멋있지 않아요? 저 작은 게 있어야 엄청 큰 건물에 들어갈 수 있잖아요. 가끔은 그 사람들에 대한 시기나 질투 열등감도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최종면접에 떨어진 회사에 욕을 하기도 했어요. 물론 그 사람들을 욕한 것은 아니에요. 그 정도로 망가지진 않았다고요. 이젠 소용도 없지만요.


아아, 전 카페를 나왔어요. 아직 컵 안에 얼음이 녹기 전이죠. 이 얼음이 녹기 전에 전 무엇이든 했어야 했어요. 안 그러면 저도 사라질 것 같아서요. 길을 따라 걸으니 어느새 바다가 보여요. 예전에는 정말 좋아했는데 까먹고 있던 풍경이었어요. 날아다니는 갈매기, 바닷가에 서있던 자전거, 낡은 우체통 하나 남아있던 폐역까지 모두요. 한 바퀴 걷고 나니까 기분이 얼마나 좋았는지 아세요? 이렇게 걸어도 좋은데 왜 이제야 알았을까요. 이미 죽어버리자고 생각한 지금이요. 그거 알아요? 죽음을 다짐하는 건 삶에 너무 진지해서래요. 좀 더 웃어볼걸 그랬어요.


파도가 밀려와요! 그리고 다시 물러가요. 계속. 그렇게 계속. 거기에 제 과거도 가면 좋으련만. 지나가버린 그 모든 것들도 가면 좋으련만. 그런 일은 없네요. 내일도 오늘과 같겠죠? 내일을 바꾸려면 오늘을 바꿔야 하는데. 아, 저도 알아요. 안다고요. 다 알고 그런 거예요. 그런데요, 세상 사람들은 왜 그렇게 보챌까요. 제가 마치 정답을 모르는 것처럼 설명하더라고요. 다 알고 있는데. 제가 바란 것은 그런 게 아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우린 따스함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저기 등대도 빛으로 알려주네요. 저는 저 빛이 따스하던데. 다른 사람들은 길만 알려준다고 하더라고요.


아아 벌써 돌아갈 시간인가요? 마지막으로 노을은 보고 싶었는데. 그래도 다행이에요. 이런 이야기를 들어주는 당신 같은 사람이 있어서요. 죄송해요. 저는 어느 순간부터 표현하는 게 서툴어졌어요. 오글거렸죠? 저는 나름 낭만이었는데. 그럼 어쩔 수 없죠. 당신은 그 어디에서도 떠올리지 않길 바라요. 죽는다는 생각이요. 학원에서 넘기는 문제집의 종이도, 다음 학기 등록금을 확인하는 손에도, 야근하고 돌아가는 가로등의 불빛 아래서도.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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