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그 자체, 글쓰기

글과 생각

by 김이난달

출근하면서 시작되는 글쓰기

출근하면 제일 먼저 열어보는 건 메일함이다. 하루 동안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은 창구다. 그 속에는 크고 작은 글쓰기의 순간들이 숨어 있다. 회의 공지, 일정 변경, 버그 추적 내용, 혹은 짧은 확인 메모까지. 업무는 늘 글로 시작해서 글로 마무리된다. 어쩌면 우리는 하루 대부분을 ‘글쓰기 노동자’로 살고 있는 셈이다.


장식보다 중요한 것은 정확함

이 글쓰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글과는 조금 다르다. 멋진 문장을 만들 필요도 없고, 감각적인 표현이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정확하게 전달되었는가’, 그리고 ‘오해 없이 읽히는가’이다. 업무 글은 마치 도로 표지판과 같다. 짧고 단순해야 한다. 하지만 단 한 글자라도 잘못되면 큰 혼란이 온다. 나는 대부분의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이런 작은 일에서 시작한다고 본다.


길게 쓰거나 짧게 쓰거나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작성한 버그 리포트가 너무 장황했다. “때때로 개발자들은 제목만 보고 넘겨요.” 누군가의 한마디가 내게 큰 울림을 줬다. 그날 이후 나는 버그 리포트를 쓸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문장으로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는가? 이 단어가 없으면 내용이 달라지는가?” 답이 ‘아니요’라면 과감히 내용을 지운고 고친다.

반대로 너무 짧게 써서 문제가 된 적도 있었다. 메신저에 “이거 확인 부탁드립니다”라고만 남겼다가, 동료가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몰라 헤맨 적이 있었다. 업무 글은 길면 안 되지만, 그렇다고 모호해서도 안 된다. 정확성과 간결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한다. 또한 가독성을 중시한다. 그냥 문장으로 길게 나열하기보다는 내용별로 나눠서 하단에 꼭지를 달아 나누기도 한다.


업무 글과 에세이 글의 닮은 점

업무 글은 사실 위주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반면 지금과 같은 에세이는 해석과 감정을 자유롭게 허용한다. 업무 글이 바둑판같은 글이라면, 에세이는 수채화 같은 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는 닮아 있다. ‘다른 사람에게 닿기 위해 쓰는 것’이라는 점에서.

나는 QA라는 일을 한다. 게임 속 버그를 찾아내고, 오류를 문서화한다. 이 과정은 거의 전부 글쓰기다. 버그를 정확히 묘사하지 못하면 개발자가 수정할 수 없다. 업무 글쓰기는 결국 책임의 글쓰기다. 지금의 한 문장이 다른 업무 시간을 뺏은 것일 수도 있고 사용자에게 오히려 불편을 주는 방향으로 상황이 급변할 수도 있다. 글은 빠르게 쓰되 무거워야 한다.


일과 글은 같은 태도에서 비롯된다.

일을 글처럼, 글을 일처럼 대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일은 문제를 정리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과정이고, 글도 복잡한 마음을 정리해 독자에게 작은 답을 건네는 과정이다. 둘 다 ‘정리’와 ‘전달’이 핵심이다. 그래서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일을 잘할 가능성이 크고, 일을 치밀하게 하는 사람은 글도 탄탄하게 쓸 수 있다. 말 또는 글로써 서로 생각을 전달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진 인간이란 종은 결국 두 가지 능력 모두 발전시키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오늘 당신은 어떤 글을 썼나요?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오늘 어떤 글을 썼을까?” 메일, 보고서, 회의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루 종일 남겨온 글이 내 일의 흔적이다. 그 기록이 쌓여 내 커리어가 되고, 동시에 내 글쓰기 습관이 된다.(실제 이 브런치 글들 덕분에 취업에도 도움이 됐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은 어떤 일을 하든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오늘 남긴 채팅한 줄, 회의 준비 자료, 혹은 거래처에 보낸 짧은 문자까지. 모두가 글쓰기다. 우리는 이미 매일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삶의 언어, 업무 글쓰기

결국, 업무 글쓰기는 단순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태도이고, 사고방식이며, 삶을 정리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일을 쓰듯 글을 하고 글을 하듯 일을 한다. 그렇게 쌓여 가는 순간들이 나를 만들어 간다. 글은 삶의 언어다. 그리고 우리의 업무는 매일 그 언어를 연습하는 훈련장이 된다.

금,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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