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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의 먼지 Dec 28. 2023

그리자벨라의 라떼는~

 개인적으로 사람이 못나 보인다고 생각하는 과거에 대한 발언들이 있다.


- 얼마나 많은 이성들을 만났는지 / 인기가 많았는지

- 네 나이 때 나는 술을 이만큼 마셨어! 하는 주량 자랑

- 남녀 불문 '과거' 몸매 자랑. 덧붙여, 너보다 더 날씬했었어!

- 얼마나 잘 놀았는지, 이틀에 한 번 집에 들어갔어!


듣는 사람은 어떨까? '와? 진짜요? 멋있다!'라고 할까? 

겉으론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속마음은?

'아 어쩌라고??'


 마음이 너그러워진 건지, 이젠 나이를 먹은 건지. 인생 선배들의 일명 '라떼는~' 발언이 그렇게 싫지 않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라떼의 ㄹ만 나와도 자리를 피하곤 했는데 지금은 맞장구까지 쳐주고 있다. 사실 그들의 과거가 궁금해서도 아니고 흥미 있지도 않다. 그런데, 나는 보았다. 그들이 과거 얘기를 훈장 삼아 얘기할 때의 그 빛나는 눈동자와 상기된 얼굴을. 아, 당신 과거에 살고 있구나. 


 실제로 얼마 전 위의 예시를 그대로 들었다. 그런데 불쾌하지도 지루하지도 않았다. 나는 충분히 들어줄 마음의 여유가 있었고 언젠간 끝날 이야기이니 서두르지 않았다. 자진모리장단으로 휘몰아치는 나의 맞장구에 신나서 얼쑤! 이야기가 술술 나온다. 이렇게 주고받는 이야기로 우리의 사이가 더 윤택해진다면 나는 얼마든지 들어줄 테다. 그래, 당신이 행복한 10분을 보냈으면 됐다. 그걸로 됐어. 


 [잘 나갔던 과거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아, 인생사 새옹지마인가! 다 부질없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밀려오는 허무는 나의 몫인가.]


  뮤지컬 캣츠의 'memory'를 들어보자. 그리자벨라의 화려했던 과거와 늙어버린 현재를 노래한다. 그리자벨라는 과거의 빛났던 힘으로 현재를 산다. 새로운 날은 새벽으로 밝아오고 어젯밤은 과거가 된다. 그리고 얘기한다. 절대 좌절하지 말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빛나는 미래를 보라고 말이다. 



 선배들의 라떼는~이 지겹고 힘든가? 그럴 땐 그리자벨라의 'memory'를 머릿속으로 재생해 보자. 웅장하고도 비장한 bgm이 깔리면서 시작되는 이야기. 생각만 해도 흥미진진하다. 곧 선지자 고양이의 선택을 받고 하늘로 올라갈 것 같은 박진감도 느껴진다. 아아. 선배님! 이대로 올라가시면 안 돼요! 일은 마저 끝내고 가시지요!


 의외로 선배들의 이야기 속에 얻는 생활의 지혜도 있다. 역시 인생 선배답게 먼저 겪은 어려운 일들로부터의 탈출기를 먼저 청해보자. 대출이나 노동법부터 좋은 자취방 얻는 꿀팁까지 인생에 도움 되는 팁들을 무료로 전수해 줄 거다.


 나라고 후배들 앉혀놓고 과거 이야기 꺼낸 적이 없을까? 있지. 있겠지. 있었을거다. 

후배들이라고 없을까?그 후배들의 후배들은? 


 꼰대, 또는 라떼라고 조롱하지 말자. 

당신도 선배가 되고 나이를 먹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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