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상, 뽐뿌질 뽐,의 정신으로
작년여름에 그 3년전에 코파운딩한 회사를 떠났다. 완전히 번아웃된 스스로를 치유도 할 겸, 16년을 일했으면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면서 연말까지 7개월 동안 일하지 않고 원없이 놀아보는 사바티컬을 했다. 그동안 포터리를 배우고 (시간이 순삭) 여행을 다니는 등 평소라면 못했을 일도 많이 했지만, 의사가 간곡히 권고한 카디오 운동이나 2-3년째 생각만 하고 있던 블로그 글쓰기 같은 “해야하는 일”들은 아무런 제약이 없는 사바티컬 중에도 시작을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12월에 상뽐회를 시작해서 꾸준히 한주에 하나씩이라도 글을 써서 내놓게 되고, 이 친구들에게 ‘보고’하는 재미로 1월부터는 달리기도 시작하게 되었다. 내 달리기 경험에 관해서 글을 벌써 몇개나 적고 많은 사람들에게도 이야기해주고 있는데, 이게 내가 이젠 달리기를 잘하게 되어서라든가 하는 게 절대 아니라 (진짜 잘 달리는 분이 보면 코웃음칠 수준이다), 내 스스로 내가 달리기를 얼마나 싫어하고 못하던 사람인지 아는데 하프마라톤을 달리게 된 것이 너무 신기해서 그렇다.
사람이 그전까지는 못하고 있던 어떤 일을 성취하여 꾸준히 하게 된다는 것은, 그라운드 0에서 액티베이션 에너지를 임계점까지 쏟아부어 생활을 변화시켜 그라운드 1로 올려놓는 것과 같을 것이다. 나의 달리기 이야기를 돌아보면, 맨 처음에 거대하게 앞을 가로막고 있던 멘탈블록을 깬 것은 친구들에게 뛰겠다는 말을 해두었다는 간단한 것 하나였다. 집을 나서자마자 바로 돌아오고 싶었지만 (이불 밖은 너무 위험하니까요) 그래도 운동화끈을 동여매고 달리러 나가게 한 것은, 계속 안나가면 친구들에게 면이 서지 않는다는 다소 웃긴 이유였다.
일단 나가 처음으로 달려본다는 멘탈블록을 넘어서고 나니, 한번 달려봤다, 한번 해봤다는 것이 힘이 되었다. 게다가 내가 얼마나 절망적으로 못 달리는지가 스스로도 너무 웃겨서 친구들에게 개그를 쳤다가 다들 같이 웃어주고 메시지로 격려해줘서 그 “재미”로 계속 뛰는 게 한참 갔다.
핏빗+스트라바가 그려준 달리기 맵과 그래프의 비쥬얼을 친구들에게 쉐어하는 것도 큰 재미였다. 친구들이 그 비쥬얼을 재미로 챙겨보고 오오 잘 달렸다 혹은 (잘 못 달린 날도) 이게 어디냐 잘했다 잘했다 해주는 것이 큰 힘이 되었다. 내 친구들은 다 잘했다고만 해줬는데, 나는 이걸 “우쭈쭈 테크”라고 부른다. 계속해서 리포팅을 하고 이런 인터랙션을 받는 것이 재미있어서, 지금도 달리기를 끝내고 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핏빗의 싱크를 하고, 스트라바 화면을 캡쳐한 다음에 친구들이 있는 챗방에 보내는 것이다.
이런 격려와 이야기의 힘이 액티베이션 에너지가 되어서 그라운드 0에서 그라운드 1까지 올라가는 초반을 견인했다면, 그라운드 1이 되기 전까지 무수히 dip들도 많았다. 감기가 걸렸을때, 여행을 다녀와서 시차에 헤롱거릴때, 아이나 남편의 스케쥴로 내 시간을 도저히 내지 못했을 때, 달리는 근육도 무뎌지고 더 나쁘게는 달리고 싶은 의지도 꺾였다. 그럴때조차도 친구들의 힘이 루틴으로 다시 더 힘차게 돌아오는 회복탄력성을 높여줬다. 우리는 네가 할 수 있다는 걸 안다 이제까지 보아왔다 걱정말고 푹 쉬고 돌아오너라 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안 돌아올 수가 없었다.
그런가하면, 달리기에는 5K 대회, 10K 대회, 12K 대회, 하프 마라톤, 풀 마라톤이라는 식으로 계속해서 더 높은 수준의 도전들이 있다. 같은 거리라도 속도라던가 심박수 같은 것들을 향상시킬 수도 있다. 처음에는 그냥 일주일에 몇번 뛰러 나간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하던 내가 대회들을 나가게 된 것은 친구들이 그런 정보들을 적절한 때에 나에게 피드를 해주고 엄청 뽐뿌질을 해줬기 때문이었다. 5K도 못 뛰던 때에 10K를 사인업 하고, 10K를 뛰기전에 이미 하프 마라톤을 사인업 했다. 혼자서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스트레치 골이지만 뽐뿌를 받아서 “해보지 뭐”라는 기분으로 도전을 해보는 것이다. 물론 이 도전이 먹혔을때의 선순환은 말할 것도 없다.
친구들과의 재미의 힘으로, 친구들이 뽐뿌한 힘으로, 친구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내 낯을 세우기 위해서 달리기를 시작하고 몇달채 끌어오다보니 어느새 달리는 것 자체에 내가 재미를 붙였다. 이제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는 날 저녁에는 런클럽을 가야겠다 미리 준비를 하고 있고, 주말 아침에는 장거리 10마일+를 뛰겠다고 미리 선언을 해둔다. 여행을 가서도 어디를 달릴까 미리 지도에 매핑을 해보는 버릇이 생겼다. 하는 일의 본질적인 재미를 알게 되어하는 것, 이게 진짜 이제 그라운드 1에 올라선 것일 것이다.
물론 그라운드 1에 도달해도 이전보다는 수월해도 여전히 슬럼프가 생기거나 게을러질 수 있다. 그럴때 역시도 같이 하는 사람들의 힘은 작용한다. 한국에 있을 때 친구들이랑 같이 뛰었는데, 나 혼자였으면 도중에 거리를 줄여 뛰고 정신승리했을 것을 친구들이 있어서 끝까지 뛰었다. 비록 나중에는 서로 너 때문에 더 멀리 뛰었다고 서로를 비난했지만. :)
내가 올해 달리기를 하게 된 것이 신기해서 주변에 이야기 하다보니 이게 나만의 경험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혼자서 꾸준히 뭔가를 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지만,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과 같이 뭔가를 해서 효과를 보았다는 사람들은 많았다. 같이 하는 것으로 혼자 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책임감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었다. 심지어는 to-do list 조차도 아무도 체크하며 뭐라하지 않아도 그냥 다른 사람과 쉐어를 해 놓는 것만으로도 훨씬 달성률이 높아진다고 했다. 아 소셜에 뭔가가 있구나, 소셜의 힘이 목표달성에도 도움이 되는구나 하고 절감했고, 다른 사람들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좋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서 오랜동안 생각만 해오던 일을 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졌다. 달리기만이 아니라 다른 목표들에 이 소셜의 힘을 끌어다 쓸 수 있는 재사용가능한 템플릿을 만드는 것의 수혜자가 바로 나와 우리팀 여러분들이 될 터였다.
그런데 조금 더 파보면, 같이 하는 것은 너무 좋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시간과 에너지의 비용이 들기도 했다. 같이 하기로 한 것들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같이 트래킹을 하는 것은 이 툴 저 툴을 옮겨다니며 ad-hoc으로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같이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어드민의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 짐이 많이 지워져서, 이 사람이 바빠지거나 하면 잘 되고 있던 그룹도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모두의 커밋먼트 레벨이 유지 되는 동안은 좋지만, 구성원 중 누군가의 커밋먼트 레벨이 낮아지면 어떻게 그룹의 동력이 같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할 것인가 하는 것도 큰 문제 중의 하나였다.
어떻게 하면 소셜의 힘을 차용해서, 멘탈 블록을 깨고, 필요한 우쭈쭈와 뽐뿌를 받고, 새로운 레벨에 도전을 하게 되고, 잠시 삐끗한 것으로부터도 벗어나올 원동력을 마련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각 개인을 그라운드 0에서부터 진짜 자신의 안에서 원동력을 자가발전하는 1로 올려놓는 데 가이드를 줄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그룹의 주도자에게 지워지는 시간적 혹은 정신적인 짐 없이도 할 수는 없을까? 기술을 사용해서 이 섬세하고 복잡다단한 소셜 인터랙션의 어떤 과정을 어느 정도까지 스무스하게 해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 올해 3월쯤이었다. CoDo App은 그 긴 여정의 자그마한 첫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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