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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sun Kim 김희선 Apr 18. 2019

상뽐회라는 모임이 있다

친구들이 해주는 뽐뿌질의 힘

작년이 거의 끝나가는 가운데 한 일 하나가 내가 최근 몇년간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로 벌써 판명이 나고 있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공유하고 싶다. 지난 일요일 드디어 대망의 10K를 완주한 것도 그 일 덕분이라 더더욱 지금 그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12월에 친구들이랑 이야기 하다가 한 6-7명을 모아서 글을 쓰는 모임을 만들어보지 않겠냐는 아이디어를 냈다. 사실 이건 나의 오리지널 아이디어도 아니고, 여름에 만났던 친구 제뫄뫄님의 글쓰는 모임의 아이디어와 후배 이뫄뫄님의 박사논문 쓰는 친구들의 아이디어를 차용한 것이었음을 여기에 밝혀둔다. 룰은 간단했다. 뭐든 각자가 쓰고 싶은 것을 길든짧든 1주일에 한꼭지씩 써서 나머지 사람들에게 그룹 이메일로 보낸다는 것이었다. 7명이 각자 다른 요일을 맡으면 하루에 하나씩 내 이메일 인박스에 아주 통통하고 영양가 높은 이메일이 들어올 것이었다. 들어오는 것이라고는 돈내라는 빌과 광고 스팸메일 밖에 없던 내 인박스에! 


서로서로는 가볍게만 알고 있던 나의 절친들(중에서도 이걸 할 것 같은 사람들)을 섭외하고, 그들이 그들의 절친들도 섭외해서 7명이 꾸려졌다. 그룹의 이름은 서로 상에 뽐뿌질 뽐자를 써서 상뽐회(相뽐會)라고 지었다. 서로 뽐뿌질을 해주는 모임이라는 뜻으로! 로고도 만들었다 (아래) 우리들은 서로를 뽐들이라고 부른다. 

상뽐회 로고




처음 시작할 때는 다들 바쁘고 힘든데 몇주나 가겠냐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도 일단 12주만 시험삼아 해보자고 했다. 그런데 아니? 이게 꽤 재미가 있는 거다. 글을 써서 이메일로 보내면 득달같이 읽은 나머지 여섯명이 챗방에서 와글와글 그 글에 대해서 혹은 온갖 다른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반응해주고 피드백을 주고 토닥토닥해주고 꾸짖어주고 새 아이디어를 내어 준다. 이게 너무 재미있어서 페이스북을 안하게 되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절친의 절친 정도로 시작했던 뽐들과의 관계도 어느새 작고 단단한 소셜 네트워크가 되었다. 그들은 이제 내가 농담으로 “내 인생의 Board of Directors”라고 하는 서포트 그룹이 되었다. 이렇게 적은 수의 신뢰가 가는 사람들에게만 글을 쓰니 자기검열없이 솔직한 글을 쓰게 되더라. 일단 솔직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글을 써놓고 나면 그걸 밖에 내놓을만하게 편집하는 일은 쉽다. 그렇게 해서 나는 2-3년째 (혹은 더 오랫동안) 생각만 하고 만들지는 못하고 있던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고, 상뽐회는 이번주로 18주째 이 이메일 그룹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 계속해서 모두가 다 일주일에 한번 글을 쓰는 것만이 상뽐회의 효능(?)이 아니었다. 나는 작년 퍼스널 플래닝 워크샵을 하면서 올해 목표중에 하나에 5K를 두 번 뛴다는 (3월에 한번 6월에 한번?) 목표를 잡았지만 과연 내가 할까 하고 반신반의 하고 있었다. 십대때도 체력장 오래달리기는 그냥 포기하던 내가 40대가 되어서 과연 얼마나 달리겠냐고… 그러던 차에 친구 김뫄뫄님이 금문교를 넘어갔다 오는 아름다운 코스의 Levi’s Presidio 10K에 대한 본인의 인상깊은 스토리를 들려주어 나를 낚는 바람에 4월 14일 레이스에 덜컥 사인업을 해버린 것은 아직 5K도 뛰기 전인 3월 초. 그때 나는 2주 뒤의 5K 레이스를 어떻게 뛸거나 엄청 걱정 하고 있었는데 10K를 사인업하자 그 걱정이 더 커서 5K는 걱정도 안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 미친 짓(?)을 당장 상뽐회에 보고하고 “10k-and-me”라는 챗방을 팠다. 

상뽐회에서 이러고 논다

뛰는 사람은 나혼자지만, 나머지 여섯명 중에 풀코스 마라톤 유경험자가 2명, 온갖 응원을 아끼지 않은 것은 모두였다. 그로부터 6주 정도간 매주 3-4번씩 뛰면서, 뛰는 것을 멈추자마자 뛴 기록이 나오는 스트라바 화면을 캡쳐해서 이 친구들 그룹에다가 보고했다. 그러면 친구들이 격려해주고 북돋아주고 잘했다 잘했다 해줬다. 사람이라는 게 너무 웃긴게 객관적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잘했다 잘했다 하니까 너무 신이 나서 이걸 계속 하게 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천천히 뛰는 거리를 2마일에서 6.2마일로 늘리고, 여행중의 레이캬빅과 헬싱키, 서울과 싱가폴에서도 계속 뛰었다. 특히 처음으로 10K 거리를 뛰게 된 싱가폴 마리나 베이에서의 비맞으며 달리기라는 잊을 수 없는 멋진 추억도 가지게 되었다. 


상뽐회 정리봇인 정뫄뫄님이 정리해주신 나의 달리기 차트


3월 17일에 5K를 뛰고 불과 한달도 지나지 않아 4월 14일에는 그 두배인 10K를 완주했다. 

지난 일요일에 뛴 Presidio 10. 너무나 샌프란시스코적인 코스.


그것 뿐인가. 친구들의 뽐뿌를 적극수용하여 7월 말에는 하프마라톤에도 사인업을 해놓았다 (이건 21K = 13.1마일, 당연히 자신감이라고는 1도 없다). 지난 10년간 카우치포테이토로 살던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본래 목표는 3월에 한번, 6월에 한번 5K를 뛰는 것이었는데…. 무슨 일인거죠?! 나조차도 어리둥절하다. 무엇보다도 평생 고개조차 돌려보지 않았던 달리기가 어쩐지 재미있어져서, 5월에는 Bay-to-breakers 12K, 6월에는 Pride run 10K, 8월에는 Bridge-to-bridge 10K를 라인업을 다 해놓게 되고야 말았다. 10K를 뛴 다음은 조금 쉬지만 빨리 다시 회복해 뛰어 보고 싶어서 좀이 쑤시게 되었다. 이게 다 상뽐회 때문이다. 

무서워요 7월의 하프마라톤




꾸준하게 노력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혼자의 의지력만으로는 부족함을 겪나요? 하다 때려치거나 아예 시작도 못하고 있는 일이 있나요? 긴 시간동안 꾸준히 박사논문이나 소설을 써야 하나요? 꾸준히 다이어트를 해야 하나요? 스포츠 트레이닝을 해야 하나요? 온라인 코스를 어느 정도의 시일에 걸쳐서 꾸준히 들어야 하나요? ‘꾸준’이라는 단어를 평생 써본 적이 없나요? 뭘 진득히 하려고 앉으면 벌써 페북에 로긴하고 있나요? 여기 저의 비밀 팁을 써보세요. 


서로 뽐뿌질을 해줄 친구들을 모아요. 그리고 시시콜콜히(이게 키입니다) 진행 상황을 업데이트해줘요. 전혀 상관없는 딴 이야기 잡담도 많이 많이 해요. 어느 순간 하려고 하던 걸 꾸준히 계속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걸 하는 것 자체에서 일말의 재미마저 발견한 자신을 깨닫게 될 거에요. 기억하세요 서로 상 뽐뿌질 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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