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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로 Mar 30. 2017

서류에 면접까지..공동 육아 도전기

[삐딱한 엄마 일기 12편] 어린이집 선택 장애

신생아 때부터 지독한 엄마 껌딱지였다. 자아가 형성되기 전에도, 내 궁둥짝만 안 보이면 울어대는 아이어서, 화장실을 갈 때도 안고 가야 할 정도였다. 본격적으로 낯가림이 시작되자 꼼짝달싹할 수가 없었는데 그 와중에 다행인 건 우리 엄마나 내 동생 같은 믿을 만한 어른이 있으면 또 괜찮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리어 좋았다. 독립적인 편인 나도, 내면에는 알 수 없는 외로움의 구슬처럼 박혀 있어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아이에게는 그런 미묘한 마음의 틈이 생기지 않도록 충분한 사랑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인가, 둘은 너무 사랑에 빠져버렸다. 아이랑 가끔 떨어져 있으면, 내가 더 불안해서 견딜 수 없는 심정이 되었다.


이런 성격의 아이와 나는 어린이집을 보낼 시기가 다가오자 두려워졌다. 내 뼈마디는 삭아가고 정신의 끈은 끝까지 늘어져 휴식을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초강력 껌딱지인 아이를 어디에 맡길 수 있을까.


또다시 '넷맘'으로 변신했다. 집 주변의 어린이집은 죄다 검색해보며 정보들의 바다를 헤엄쳤다. 지역 엄마 카페에는 알짜 정보로 보이는 의견들이 줄을 이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고민을 십분 이해하는 양, 자신의 솔직한 평을 공유했다. 좋은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었다. 도대체 내 아이를 어디에 보내야 만족할 수 있을까.


그러다가 생각이 도착한 곳은 공동육아였다. 공동육아란 기존의 어린이집과는 달리 엄마들이 어린이집 운영의 주체가 되어서, 선생님을 뽑는 것부터, 시설관리, 행정 등의 전반적인 원장의 사무를 나누어서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터전의 기반이 되는 출자금도 나눠 내고,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해 월 부담액이 조금 높은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 아이들이 실컷 흙을 만지며 놀고, 숲으로 산으로 놀러 갈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이 있었다. 거기에 엄마들이 주체가 되니 TV에서 떠드는 각종 어린이집 사건에 대해서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먹거리도 모두 생협이나 유기농을 사용하였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나는 처음부터 일반 어린이집에 보낼 생각이 없었던 것처럼 공동육아에 집착했다.


사회성 발달이 또래보다 조금 느린 우리 아이에 이런 공동체 활동이 좋을 것만 같았다. 우리나라 전통 놀이를 배우고, 또래들과 함께 자연에서 어울려 뛰어놀고, 얼굴 까맣게 유아기를 보낼 수 있다면 충분히 즐거울 것 같았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대부분의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꽁꽁 숨어져 있다. 매의 눈으로 관심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쉽게 발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공동육아와 공동체 교육' 사이트에 가면 주변에 있는 공동육아 정보를 알 수 있지만, 단편적인 정보가 대부분이었다.


일단 집 주변의 단체부터 하나씩 살폈다. 홈페이지에 입소대기 신청을 해놓았지만, 언제, 어떻게 인원을 모집하는 건지 모호했다. 나는 용기를 내서 전화를 해보기로 했다.


"저기 공동육아 신입 아동 모집에 대해서 문의할 수 있을까요?"


전화에 서툰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아직 공고가 나지 않았어요. 모집 일정이 확정되면 대기 명단에 따라 연락을 드릴게요."


끝? 그냥 기다려야 한단 말이야? 언제? 어디까지? 물어볼 것이 목 끝까지 차오르는 느낌이지만, 급 소심해져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나는 참담한 심정이었다. 나이별로 뽑는 인원이 5-6명 밖에 되지 않아서 입학의 문턱(?)은 높았다. 여기만 믿고 다른데 대기를 안 걸어뒀다가 아무 곳에도 보내지 못하면 어떡하지?


고민을 하느라 밤잠을 설치기 시작했다. 기다리고 검색하고 지인들에게 묻기를 몇 달. 드디어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인원 모집을 하고 있으니 메일로 이력서를 보내달라는 말이었다.



올레! 이제 모집을 하는구나. 다섯 군데에 대기를 걸어놓고 있었고, 그중 2군데에 이력서를 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이력서를 보내기 전에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이 있었다. 바로 남편. 공동육아는 엄마 아빠가 함께 참여해야만 하는데, 겨울 되면 눈도 쓸어야 하고, 고장 난 문도 고쳐야 하고, 생각보다 아빠가 참여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


우리 남편은 누군가. 한국에서 가장 보편적인 남성 아니던가. 육아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로 육아 참여율이 저조했다. 물론, 마음은 있었겠지만 어떻게 아이를 다뤄야 하는지 모르는 바쁜 직장인이었다.


그런 신랑을 설득시키는 게 가장 힘들었다. 신랑은 왜 돈 내고 내가 일을 해야 하냐며, 그냥 집 가까운데 보내면 안 되냐고 말했다.(물론 맞는 말이다)


나는 이야기했다. 그것보다 더 좋은 것들이 있으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보내는 거 아니겠냐고. 여기는 유기농 먹거리에 자연과 뛰어놀고 어쩌고 저쩌고 나도 겪어보지 못한 장점을 나열해가면서 신랑을 설득했다.


사실 공동육아는 신랑보다 내가 더 문제였다. 우리 신랑은 한국의 보편적인 남성답게 누구와도 잘 어울리고, 사회성이 좋고, 둥글둥글했다.


하지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삐딱한 엄마' 아닌가. 과연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써 잘 해나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각종 행사뿐 아니라, 아이들이 먹는 김치도 같이 담는 일과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거기에 아이뿐만 아니라 부부들도 그 인연의 끈으로 엮어져서, 같이 여행도 가고 주말도 보내고 한단다. 나같이 개인적인 사람이 잘할 수 있을까?


합격을 하지도 않았는데 이력서를 쓰는 과정에서 고민이 깊어갔다. 그래서 그렇게 꼼꼼한 이력서를 받나 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아이를 위해 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인가.


드디어 1차 이력서, 2차 원장 면접, 3차 학부모 대표 면접까지 총 세 번에 걸친 철저한 검증(?)이 시작되었다.


일단 이력서를 통과시키고 원장님을 만나서 어린이집을 방문했다. 어린이집은 대부분 대중교통이 쉽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당시 운전을 하지 못했던 나는 좌절했지만, 어떻게든 합격되면 연수를 받아서 차를 몰고 오리라 다짐했다.


내부는 나무 목재로 되어있고, 솔방울, 나무토막, 흙 같은 자연물로 만든 장난감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원장 선생님의 교육 철학을 들으며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이가 가진 특성을 인정하고, 교육시키기보다는 함께 자라는 느낌의 교육을 진행했다. 사교육 역시 일절 금지되었는데 여러 부분에서 이상적으로 느껴졌다.  


아이를 위해서는 너무 좋은 선택으로 보였다. 상담하면서 만난 아이들을 밝고 경쾌하게 보였으며, 마당 텃밭에 자리하고 있는 모래 놀이, 여름이면 내내 물놀이를 한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선생님들은 연륜이 있으신 듯 인자해 보였고, 따뜻했다.


하지만 역시, 내가 문제였다. 나의 내면은 벌써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주말마다 만나서 함께 하고 남의 아이도 자기 아이처럼 같이 생각한다지만, 그렇다면 아이를 뺀 내 생활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공부도 하고 글도 쓰고 싶은데 과연 이 아이를 위해 내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반복하면서 두 군데 이력서와 면접을 진행하였고, 그중 한 군데는 합격하고 한 군데는 떨어졌다. (놀랍게도 우리와 느낌이 더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합격되었다. 사람 마음이 다 비슷한가 보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 입학을 포기했다. 너무나 아쉽고, 시간 내서 면접까지 봐주신 여러 분들께 죄송했지만, 결국 난 '삐딱한 엄마'라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결국 어떻게 되었냐고? 차선책으로 선택한 집 앞 분더바움에서 처절하게 적응실패 하였다. 놀랍게도 아이는, 자연에서 뛰어노는 것을 싫어했다.


앉아서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정적인 활동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세상밖의 자유는 고통스러웠나보다.


그렇게 나는 또 한 번 아이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나의 욕심과 나의 바람은 아이의 의지 앞에서 단번에 무너졌다.


그렇게 돌고돌고돌아, 지금은 회사 어린이집에 다닌다. 가끔 울기도 하고, 가끔은 집에 가기 싫다고도 하면서 평범하게 다니고 있다.


정말,
아이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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