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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로 Nov 29. 2019

"엄마, 막상 해보면 재미있을 거예요"

[놀먹자 치앙마이:제이 1편] 3인 가족 치앙마이 한 달 살기

즉흥적인 느낌주의자 모로, 철저한 계획주의자 로건, 싫고 좋음이 명확한 7살 제이, 치앙마이에서 한 달 동안 놀고 먹고 잡니다. 셋이 각자 다른 시선으로 한 달을 기록합니다. 제이 1편은 모로가 씁니다.


아침에 한바탕 전쟁을 치른 뒤였다.


영원한 집돌이인 제이는 여행을 와서도 숙소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나가기 싫어하는 아들과 제발 한 번만 나가서 밥만 먹고 들어오자고, 막상 가보면 재미있을 거라고 30분을 넘게 꼬드긴 뒤에야 어렵게 궁둥짝을 떼었다.


정확한 녀석! 나도 한 성격 하는 데 이 녀석도 만만치 않다. 어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아기띠에 앉아서 울 때가 차라리 다행이었지 이제 머리도 커지고 말도 똑 부러지는 제이가 논리적인 근거로 반박을 할 때는 이길 재간이 없다. 그래서 기나긴 설득과 회유, 마지막에는 아이패드 사용권까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늘 이런 패턴이다.


아무튼 그렇게 내가 사랑하는 프리마켓을 한 나절 구경하고 난 후 로건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러 떠났고, 나와 제이는 숙소에서 조금 쉬기로 했다. 약속대로 아이패드를 하는 사이 나는 달콤한 낮잠을 자고 있었다. 마악 낮잠이 들려는 무렵 옆에서 제이가 방방 뛰면서 나를 깨웠다.


"엄마 수영하러 가요"

"수영은 아빠 담당이잖아. 엄마는 수영을 못 해서 안돼. 내일 아빠랑 하자."

"싫어요. 지금 하고 싶단 말이에요. 한 번 도전해 보세요. 막상 해보면 재미있을 거예요."


피식 웃음이 났다.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들이 고스란히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침에 나는 길고 길게 일장연설을 했다.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에서는 말이야.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해서는 안돼. 엄마, 아빠가 지금 나가고 싶은데 어린이는 혼자 있으면 안 되겠지? 한번 나가보자.



그래, 제이도 지금의 나만큼 가기 싫었을까. 숙소에서 빈둥빈둥 쉬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고 함께 수영장에 갔다. 백번 양보해서 너는 수영하고 나는 배드에 앉아있겠다고 타협을 보았는데도 제이는 말했다.


"엄마도 나처럼 연습하세요. 초보니까 열심히 연습하라고요. 연습하면 잘할 수 있을 거예요."


나가기 싫어하고, 혼자인 걸 좋아하는 여리고 섬세한 아이. 나를 닮았다. 아이를 그저 어른의 스케줄에 맞추려고만 했으니, 얼마나 고단할까. 조금 더 양보를 해야겠다.


그래, 나는 오늘도 너에게 배운다.
정말로 막상 와 보니 좋네.




제이의 픽 

콤파스- 세트 (80바트 / 3200)


동네 문구점에서 찾았다. 수학을 좋아하는 제이가 고른 컴퍼스와 자 세트다. 다양한 물체의 길이를 재보는 게 제이에겐 재밌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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