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지, 기억나시나요?

[나의 알바일지 5] 롯데백화점 지하 1층 판매 아르바이트

by 이유하

쌈지, 기억나시나요? ‘죽지도 않고 돌아오는’ 그 브랜드. 딸기 캐릭터가 붙은 옷과 가방을 70% 세일로 푸는, 매장은 없지만 항상 어딘가에 나타났던 그 브랜드 말이다. 대학교 방학 무렵, 나는 롯데백화점 지하 1층 쌈지 매대에서 알바를 했다. 그때 내 알바 레벨은 한 10점 만점에 3~4쯤. 애송이 티는 벗었지만 중간치엔 못 미치는, 애매한 단계였다.


그래도 이 알바는 꽤 괜찮았다. 그건 아마 내 성격 덕분이었을 거다. 내 장점(?) 중 하나는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잘 건다는 거다. 친구 말로는 그게 ‘부산 사람 특성’이라나 뭐라나. 옷 가게에서 옷 고르는 사람을 보면,

“저게 더 나아요, 그건 색깔이 좀 이상한데요”


이런 식의 훈수를 곧잘 두는 스타일이고,

재래시장 떡볶이집에서도


“이 집 떡볶이 왜 이렇게 쫀득해요?”


하며 스몰토크를 곧잘 한다. 그러니 쌈지 매대는 내게 꽤 잘 맞았다. 손님이 오면,


“이건 오늘 막 들어온 거예요”,

“아까 어떤 아줌마가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두고 가셨어요”


이런 식으로 말을 붙이며 물건을 팔았다. 팝업 알바의 장점은 실적 압박이 없다는 것. 물건이 싸니까 손님들도 쉽게 사고, 나는 부담 없이 수다 떨며 일했다. 옆 매장 언니들과도 금방 친해졌고, 일도 점점 재미있어졌다. 게다가 백화점 지하 1층엔 구경거리가 많지 않나. 먹을 것도 많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세일 첫날, 문이 열리기도 전에 셔터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문이 열리자 우르르 쏟아져 들어오는 그들.


으악~ 경쟁자 없는 한정판 사냥꾼, 자칭 ‘꾼’들이었다.


그들은 물건을 매만지고, 찜해두고, 사겠다고 해놓고 안 사고, 다음 날 와서 왕창 환불하기도 했다.


“이거 조금 있다 다시 사러 올 건데, 따로 빼놓을 수 있어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요청에도 나는 처음엔 “네…” 하고 빼줬다. 진짜 다시 올 줄 알고. 참, 빨리도 알았다 ㅋㅋ

정리도 처음엔 칼같이 했는데, ‘호떡’처럼 물건 다 뒤지고 그냥 가는 손님 지나가고 나면 “그냥… 됐다” 싶었다. 사람이 몰려 매장이 초토화되면 의욕도 같이 무너졌다.


하지만 진짜 힘든 건 따로 있었다. 복장 규정! 백화점 유니폼은 물론이고, 커피색 스타킹에 단화 착용이 필수였다. 나는 워낙 덜렁거려서 스타킹에 올이 자주 나갔다. 단화를 신고 온종일 서 있으면 다리는 퉁퉁 붓기 일쑤였다.


게다가 백화점엔 창문이 없다. 시간이 지나도 해가 지는 걸 알 수 없다. 바깥 세상과 단절된 그 공간은, 생각보다 훨씬 답답했다. 휴게실은 더했다. 화려한 매장 뒤편, ‘관계자 외 출입금지’ 문을 밀고 들어가면

좁고 회색빛의 개미굴 같은 공간이 있었다. 의자 몇 개 놓인 탈의실이 전부였고, 식당은 있었지만 앉아 쉴 곳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곳에서 물건을 팔았고, 사람을 구경했고, 동료들과 수다 떨었고, 별별 손님과 마주했고, 웃었다. 동시에 화려한 조명 아래, 올 나간 스타킹을 감추고, 퉁퉁 부은 다리를 버텨가며 일했다. 보고 듣는 건 늘어가는데, 내가 가진 건 초라해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방학이 끝났고, 그 알바도 끝났다. 반짝이는 것과 아닌 것 사이에서 소심하게 비교하면서도 깔깔 웃으며 일하던 그때의 내가, 가끔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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