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알바일지 3] 텔레마케팅
“야, 꿀알바 구했는데 같이 할래?”
고등학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청난 ‘꿀알바’를 봤다며 같이 하겠냐는 전화였다. 마다할 수 없지! 나는 일말의 의심도 없이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는 걸 모르던 나이였다) 친구의 부름에 응했다. 그때 당시 파격적인 알바비! 시간당 만 원이었던 것 같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평균 키에 못 미치는 조그만 여자아이 둘이서, 이상한(?) 건물을 찾아갔다.
넓기만 넓은 사무실에는 별다른 가구 없이 책상만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책상마다 전화기 한 대씩, 그리고 파티션이 쳐져 있는 구조. 뭘 팔았는지 품목도 기억 안 난다. 건강기능식품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운동기구였던 것 같기도 한데, 이걸 누가 살까 싶은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런 물건이었다. 그런 물건을 전화로 파는 일인데, 쉽게 말하면 스팸 전화인 거지. 그런데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 했다. 으레 그렇게 물건을 파는가 보다 싶었던 거다.
고3 겨울, 나는 텔레마케팅 사기꾼이 될 뻔했다.
나는 부산에서 나고 자라서 사투리를 쓰는데, 그래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투리를 팍팍 써가며 전화를 돌렸다.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을지도?ㅎㅎ)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냐고? 20년 전만 해도 스팸 전화의 출처는 졸업사진 뒷면이었다. 너무나도 개인정보가 하찮게 취급되던 그때 그 시절에는, 초등학교 졸업앨범 뒤에 집 전화번호를 적었더랬다. 전국에서 공수한 수십 개의 졸업앨범 마지막 장을 복사해 나눠 가졌다. 맙소사!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루 4시간. 나는 그만둔다고도 이야기 못 하고, 소심한 마음에 대충 ‘콜’ 수만 채워 넣었다. 최대한 천~천~~히 버튼을 하나하나 누르며 전화를 걸었는데, 대부분은 받지 않고, 받더라도 금방 끊어버리기 일쑤였다. 가끔 전화를 받아주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러면 오히려 더 긴장되었다. 전화받는 사람이 이 물건을 사는 게 아닐까? 라며 오히려 걱정될 정도. 이게 맞나... 라는 생각에 '덜'열심히 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니 뭐 하나도 팔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초조했고, 친구는 유능했다
하지만 같이 간 친구는 야무진 아이였다. 걔는 무려 두 갠가를 팔았다. 그 사무실에서 거의 유일한 실적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그걸 보니 나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4일쯤 되자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 우리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나는 도망가는 심정으로 그만두었는데 친구는 달랐다. 4일 치 일한 돈을 받아야겠다는 거다. 그래서 대학생 친언니를 소환했다. 그 언니는 사무실로 쳐들어와 고성을 지르며 사장에게 달려갔다. 고소한다, 경찰을 부른다며 소리소리 질렀던 거지!
“아무것도 모르는 미성년자들을 데리고 뭐 하는 거야?”
나는 쭈글쭈글 옆에 서 있었다. 싸우는 게 무서웠지만, 나 역시 돈을 받고 싶었기 때문에 도망치지 않았다. 시급 만 원에 4시간을 일했으니 하루 4만 원. 4일이면 무려 16만 원 아닌가! (그때 시급이 2천 원이 안 되던 시절이었다) 거기에서 일하던 우리 같은 어리바리들은 아무도 돈을 못 받았는데, 내 친구는 16만 원을 다 받고 나는 8만 원을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웃긴 일이다. 같이 일하고, 같이 있었는데 말 안 한 놈들은 하나도 못 받고, 목소리 큰 놈은 16만원, 옆에 서 있던 쭈글쭈글한 놈은 8만원!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사기였을까? 아니면 우리가 사기를 친 걸까? 그때 판 물건은 실제 배송이 됐을까? 친구가 판 물건은 전화상의 ‘구두계약’이었기 때문에 돈을 받지는 않았다. 그러고는 사무실이 없어졌기 때문에 그 뒤의 일은 잘 모르겠다. 가끔 그 시절의 내가 생각이 난다. 어처구니 없었던 아날로그 스팸 전화 알바. 그때 그 졸업앨범 뒤편의 전화번호 리스트를 떠올리면 어이가 없다. 게다가 나, 생각이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