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문화권에서 배운 삶의 태도
호주에서 요리 공부를 시작하며 처음 품었던 작은 꿈이 있었다. 바로 브런치 카페를 운영하는 것.
그래서 호주에 온 초기에는 틈만 나면 여러 브런치 카페를 찾아다녔다.
그날도 어김없이 친구와 함께 한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으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작은 카페라 테이블은 촘촘히 붙어있었고, 듣고자 하면 옆자리의 대화는 얼마든지 엿들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옆자리엔 호주인 모자가 앉아있었고, 그들은 영어로 대화 중이었다.
아직 영어에 익숙지 않았던 나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자동 음소거 기능이 탑재되어 있었다.
그렇게 우리끼리 한국말로 신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문득 어떤 한 문장이 내 귀에 또렷이 들렸다. 아니, 또렷하게 박혔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Life is beautiful."
그 순간, 나는 하던 말을 멈추고 친구에게 물었다.
"너, 들었어?"
친구는 고개를 갸웃하며 "뭐가?"라고 되물었고, 나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말했다.
"삶이 아름답대..."
그 짧은 한 문장은 꽤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물렀다.
내가 살면서 '삶이 아름답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은 적이 있던가 하는 회고부터
저 사람은 어떤 삶을 살기에 저 말이 저렇게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나 하는 감탄과 함께
한국 사회에서 저런 말을 들은 적이 있던가 하는 의문까지 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집에 가는 트레인 안에서 또다시 비슷한 말을 듣게 됐다.
"Life is good."
역시 호주인들이 웃으며 가볍게 나눈 대화 중 한 문장이었다.
처음 들었던 "Life is beautiful."의 충격이 다시금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어찌 보면 이 삶이 아름답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날은 유난히 화창했으며, 평일 아침부터 브런치를 즐길 여유가 있었고, 마침 음식은 너무 맛있었고, 좋아하는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삶이 아름답다고 말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던 순간이었다. 삶이 아름답다고 말하기 위해 거창한 업적이나 특별한 자격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그 말을 듣자마자 충격을 받았을까.
아마도 나는 삶이 아름답다는 말보다 "살기가 힘들다", "살기 팍팍하다"라는 말을 더 많이 하는 한국 사회에서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 누군가 행복한 티를 내거나 좋은 소식을 나누면 종종 허세로 비춰지거나 때로는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행복을 말하기 전에 항상 겸손해야 하는 사회. 그런 분위기 속에서 누가 행복하다 말하면 오히려 트집을 내 깎아내리는 사람들마저 생긴다. 심지어 누가 더 힘든가를 겨루는 불행 배틀을 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불행의 서열을 매기는 대신, 그날 옆자리에서 들려온 그 한 문장에 머물고 싶다.
"Life is beautiful."
이 말이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게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삶을 살고 싶다.
말은 삶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 내가 이 말을 의식적으로 반복하다 보면 내 삶의 결도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
항상 긍정적일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삶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기억하는 삶은 확실히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