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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주 Feb 14. 2021

06. 지극히 개인적인 편지

글/그림_희주

한 자 한 자 적어본다.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던 큰 상심은 이제껏 나를 괴롭히던 모든 문제들을 아주 보잘것없는 것으로 만들었어. 난 왜 이렇게 작은 것들에 집착하며 마음 썼을까. 왜 ‘나’라는 별것 아닌 존재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작은 세계 속에 살았던 걸까. 나는 지금 더 큰 존재가 되었는지 아니면 덜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는지 잘 모르겠어. 마음은 무겁지만 또한 가볍기도 해. 이 마음을 설명할 단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설명할 수 있는 재능이 나에게 있다면 얼마나 큰 행운일까. 나는 때때로 이 형편없는 재능에 울다가도 엄마 아빠를 생각하며 '설마 그렇게까지 형편없진 않을 거야'라며 나를 위로하곤 해.


난 왜 이렇게 작은 것들에 집착하며 마음 썼을까.

    아빠, 나는 항상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것 같아. 이런 얘길 하면 항상 '아휴, 왜 그런 소리를 하니, '라며 '아빠는 항상 너희들이 자랑스럽지, '라고 대답해 줬지. 뭐하나 자랑스러울 게 없는데도 말이야. 난 그런 위로와 응원의 마음을 너무 당연한 것처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 '아빠니까 당연하지'라면서. 사실 아빠도 아빠이기 이전에 한 사람인데. 가족에게 헌신하고 인내하는 동안 스스로의 시간도 많이 필요했을 텐데. 아빠로 산다는 게 참 쉽지만은 않았겠지. 내가 당연하게 받았던 그 모든 사랑과 응원을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내해야 했을까. 이제 아빠라는 이름을 위해 지워야 했던 이름 석 자를 다시 찾았겠지?


아빠와 함께 할 오늘이, 내일이, 한 달 후, 일 년 후, 십 년 후.
그렇게 다음이, 미래가 있을 거라고 얼마나 자만하며 살았던 걸까.

    

    아빠, 나는 아빠의 죽음을 슬퍼하기보다 아빠가 살아온 인생과 우리에게 보여준 사랑과 따뜻한 마음씨와 굳건한 인내심과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정신을 축하하고 기념하고 싶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큰마음을 지녔다고, 아빠의 인생이 값진 것이었다고, 꼭 말해주고 싶어.


    난 아직도 많이 울고, 때때로 현실을 부정하고, 우울에 빠지고, 화를 내기도 하지만 이런 감정들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고, 꼭 필요한 과정이겠지. 이런 내 모습이 조금 속상하더라도 너무 꾸짖지는 말아 줘. 차츰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생기겠지.


    그동안 밤낮으로 돌봐준 아빠에게 미안해서 앞으로 하늘에서 우리를 돌봐달라는 염치없는 말은 못 하겠다. 그곳에서 아빠가 할 일은 그저 푹 쉬고, 건강한 몸과 편안한 마음을 즐기면 되는 거야. 그리고 이승에서의 인연과 같이 우린 저승에서도 만날 거야. 아빠를 다시 만나는 날, 정말 사랑하고 고맙고 보고 싶었다고 말해줄 거야. 그리고 꼬옥 안아줄 거야. 아빠, 그날을 기다리자 우리.


안녕.


지극히 개인적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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