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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Jan 21. 2020

생선구이로부터의 해방

가시 바른 생선 구이도 배달되는 집밥의 혁신에 감사하며

 국내 가정간편식(HMR) 시장 규모가 지난해 4조 원을 넘어섰다는 뉴스를 접했다. 2015년 100억 원의 규모에 불과했던 새벽 배송 시장도 4년 새 1조 원까지 커졌다. 가히, 집밥의 혁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인 가구, 맞벌이 신혼부부, 워킹맘은 물론, 육아와 살림을 병행해야 하는 나 같은 전업 엄마에게도 가정간편식, 새벽 배송은 일상에 여유를 가져다주는 고마운 존재다. 그렇기에 식품업계, 유통업계 모두 앞다퉈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친환경, 고급화, 다양화 등을 고민하며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는 소식은 반갑기 그지없다.






 이렇듯 집밥의 혁신이 요동치는 가운데서도 유독 혁신 속도가 더디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바로, 생선 구이다. 온갖 밑반찬, 나물, 잡채, 제육볶음 등등 다양한 반찬이 즐비한 반찬가게에서도 생선 구이는 찾아볼 수가 없다.


 결혼을 하고 나니 비로소 깨닫는 게 있다. 그중 한 가지였던, 어렸을 때 엄마는 왜 생선을 자주 안 구워주셨는가 (갈치를 참 좋아했는데 말이지), 에 대한 물음이 해소된 것이다. 밥상을 받아먹을 땐 몰랐다. 생선이 손질부터 굽고 일일이 가시를 발라주고 냄새 뒤처리까지.. 참 손이 많이 가고 번거로운 식재료라는 것을.


 아이 이유식 할 때 제철 친환경 유기농 야채, 한우 등 먹거리에 신경 썼으면서도 유독 생선 이유식은 많이 만들어주지 못했다. 돌 이후 아이에게 골고루 먹이고 싶은 마음에 자반고등어, 갈치, 가자미 등 손질된 생선을 구입해 간간이 구워주기는 했지만 잘 손이 가지않았다. 어쩌다 한 마리만 구워도 반 이상 남기기 일쑤였다. 아이에게 생선을 구워주는 날이면 그날의 저녁 반찬은 생선 구이가 되어야 마땅하지만 남편은 생선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생선을 맛있게 굽는 것이 나에겐 늘 어려운 숙제였다. 전문가의 노하우대로 전분가루를 묻혀 튀기듯이 구워도, 정말 똑같이 해도, 내가 구운 생선은 늘 껍질과 살이 분리되고 부서져버리기 일쑤였다. 우리 집 식탁에서 '겉바속촉' 생선구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가시 바른 생선 구이도 배달되는 시대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의 최애 생선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보리굴비다. 신혼 초, 남편을 위해 보리 굴비 10 미를 산 적이 있다. 냉동실에 보관해놓고 먹을 때마다 쌀뜨물에 담그고, 등, 배, 지느러미, 비늘 등을 제거해 큰 냄비에 쪄내면 보리굴비 맛집에서 먹던 그 맛이 재현되었다. 정말 맛있었다. 정말 맛있었지만, 10 미를 다 먹고 나서 재주문은 차마 하지 못했다. 손질도 손질이지만, 찌고 난 후의 뒤처리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생선을 굽지 않고 전자레인지에 30초 돌리면 완성되는 생선 반찬 © 엄마 엘리



 그러던 어느 날, 보리 굴비 살만 발라내 진공 포장한 상품이 있다는 것을 남편이 발견했다. 정말 맛있을까? 집에서 쪄서 먹는 맛과 똑같을까? 반신반의했지만, '전자레인지에 30초만 데우면 된다'는 말에 혹해 4팩을 구입했다. 업체에 따르면 1팩이 2마리 분량이라고 했다. 도착한 날 저녁, 우리는 녹차물을 우려내 보리 굴비를 먹기로 했다. 렌즈에 30초 돌려 그릇에 옮기기까지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김치 놓고 녹차물 놓고 밥 덜고 수저 놓고..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건, 혁명이다!


 

 한 입 맛보는 순간, 아, 여기가 보리 굴비 맛집이구나. 싶었다. 녹차물에 만 밥을 한 술 크게 떠서 짭조름하고 쫄깃한 보리 굴비 한 점을 올려 먹으면, 캬, 씹으면 씹을수록 깊은 풍미가 우러났다. 가시를 발라낼 필요도, 찌기 전 공들여 손질할 필요도, 찜기 사이사이에 눌어붙은 잔여물을 닦을 수고를 하지 않고도 이 맛을 취할 수 있었다. 이런 게 혁명이구나! 게다가 3살 배기 아이까지 정말 잘 먹는 게 아닌가. 보리 굴비 찬에 저녁 식사를 순삭 하고 설거지까지 끝냈더니 저녁 6시 50분. 망망대해처럼 펼쳐진 이 저녁 시간은 무엇? 진정한 저녁 있는 삶이 이런 게 아닐까. 잠시 감상에 젖어들었다.



다양한 종류별로 맛볼 수 있는 순살 생선 구이 세트 © 엄마 엘리




 '생선살'에 눈떴을 때, 때마침 친구가 아이용 생선구이를 판다는 온라인몰을 알려주었다. 우럭, 갈치, 고등어, 연어, 달고기, 가자미  다양한 종류의 생선을 밑간을 하지 않은  오븐에 구운  가시까지  발라낸 '생선 구이 ' 판다고 했다.



 뭐? 생선 구이 살만 판다고? 나는 친구에게 재차 확인했다. 그리고 알려준 쇼핑몰에 들어가 여러 후기를 탐색했다. 생선살이 손바닥 만한 분량으로 작게 진공 포장되어 있어서 급할 때 아이 반찬으로 그만이라는 극찬이 눈에 띄었다. 생선을 많이 먹이고 싶어도 한 번에 많이 해야 하거나 번거로워서 많이 못해줬는데 너무 간편하고 맛도 있는지 아이가 잘 먹고 있다는 평도 많았다. 이유식으로 사용한다는 엄마들도 꽤 있었다. 아, 왜 진작 알지 못했던가? 나도 곧바로 한 세트를 주문했다.




 아이에게 1주일 3 생선을



 주문한 생선 세트를 직접 받아먹어보니 양이며 맛이며 만족스러웠다. 이미 조리된 것이기에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가볍게 1분 정도 굽거나, 전자레인지에 30초 정도 돌리면 바로 먹을 수 있었고, 별도 소금간이 되어있지 않아 생선전, 생선살 된장찌개, 해물볶음밥 등 다른 요리에 활용하기에도 좋았다.


 이제 부담 없이 아이에게 1주일에 3번은 생선 반찬을 차려줄 수 있게 되었다. 나처럼 전업이지만 요리는 잘 못하는 엄마들의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주어서 고맙다. 요리에 긴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지 않아도 양질의 요리를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반갑다. 무엇보다, 평소 육식 위주의 식단이 마음에 걸렸음에도, 번거롭고 귀찮은 마음에, 생선 냄새가 집안에 배는 것이 싫어서, 생선을 자주 먹이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을 덜 수 있다는 것이 나로서는 가장 만족스럽다. 집밥 혁신의 시대에 엄마로 살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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