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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Jan 20. 2020

어서 와~ 천사채 놀이는 처음이지?

천사채가 물감을 만나면 놀이판이 커지지

 햇살 좋은 어느 날, 내 친구와 함께 아이의 친구가 놀러 왔다. 몇 달 전 우리 집에서 신나게 물감놀이를 한 후로 줄곧 아이는 "이모네 가자, 채유네 가자"며 졸랐다고 했다. 우리 아이도 문득문득, 친구와 놀았던 이야기를 꺼내는 걸 보니, 친구와 함께한 시간들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나 보다.


 나는 이번에도 아이들에게 특별한 경험과 추억을 선물해주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아이들과 뭐 하고 놀면 좋을까? 고민 끝에, 채유가 문화센터 퍼포먼스 미술놀이에서 재밌게 놀았던 '천사채'를 떠올렸다. 곧바로 모바일을 켜 천사채 2kg를 주문했다.



 짜잔! 너희들을 위해 준비했지!


  

 아이들 점심을 먹인 후 그들끼리의 놀이가 소강상태에 이르자 드디어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적절한 타이밍에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미리 준비한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거실을 다 감쌀 만큼 넓은 놀이 비닐을 깔 때부터 아이들은 이미 신이 나서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사채  1kg를 찬 물에 씻어 쟁반에 펼친 뒤 비닐 위에 올려놨다. 아이들은 달려와 쟁반 앞에 자리를 잡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양 손으로 천사채를 조물조물거리기 시작했다.


 한 번 먹어봐! 맛이 어떤지



 아이들에게 천사채 시식을 권하자 내 친구가 나를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묻는다. 정말 먹어도 되는 거야? 그럼, 이거 다이어트 식으로 많이들 먹던데? 천사채 구매 후기를 보니 샐러드나 국수 대용으로 먹고 있다고 했다. 저칼로리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꼬들꼬들한 천사채를 앙증맞은 앞니로 똑똑 끊어서 맛을 보기 시작했다. 별 맛은 없지만 그 식감이 재밌는지 야금야금 쉬지 않고 먹더니 서로 권하기까지 하며 까르르 웃었다.




각자의 그릇을 가지고 본인의 스타일대로 천사채 놀이를 하는 3세 아이들 © 엄마 엘리



엄마, 이거 국수야?
머리카락 같아!



 아이는 꼬불꼬불 길게 늘어진 천사채를 한 움큼 쥔 채 해맑게 묻는다. "이건 천사채라고 해, 요리할 때도 쓰고, 채유 미술놀이 시간에도 가지고 놀았었지?" 하며 방에서 다양한 색상의 물감과 플라스틱 수저, 칼 등을 챙겨 왔다. "물감을 섞을 거니까 이제부터 먹으면 안 돼!" 물감을 주면서 놀이 규칙을 명확하게 알려줬다.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끄덕 거린다.


 자기중심적 성향이 강한 3세 아이들이기에 각각의 그릇을 나눠주며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놀게 했다. 성향, 성격만큼이나 둘의 놀이 스타일도 확연히 달랐다. 채유는 다양한 색깔의 물감 여러 개를 한 번에 섞고 김장하듯이 버무린 후 천사채 뭉치를 그릇에 빼서 바닥에 펼치며 즐거워한 반면, 친구는 천사채를 그릇 안에 둔 채 처음에 파란색 물감만 넣다 나중에 보라색 하나를 더 섞어가고, 그다음에는 노란색을 넣으면서 천사채가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다.




계란판을 추가, 아이들의 놀이 방식을 지지해주었다 © 엄마 엘리




 아이들이 물감 버무리기에 흥미가 떨어진 듯 보이자, 베란다에 차곡차곡 모아뒀던 계란판을 꺼내 줬다. 모든 재료를 한 번에 제공하기보다는 시간차를 두고 하나씩 하나씩 꺼내 주면 아이가 더 오래 집중해서 재미있게 놀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계란판을 보자 채유는 곧바로 천사채를 조금씩 집어 계란판 칸칸마다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자신의 손을 판 위에 놓고 천사채를 손 위에 쌓아 올리며,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노래를 부른다. 남은 천사채들을 칼로 썰면서 "지금 요리하는 거야, 채유가 맛있게 요리해줄게" 하고 친구를 위해 요리도 한다.


 채유가 이렇게 계란판을 추가해 노는 동안, 친구는 여전히 천사채에 물감을 버무리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아이는 실험정신과 호기심이 많은 편이고, 아이 친구는 집중력과 관찰력이 뛰어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재료로 놀아도 아이마다 이렇게나 관심사와 방법이 다르구나 새삼 느낀다.


 놀이에 집중하는 시간, 빛나는 아이들의 눈빛과 해맑은 표정을 바라본다. 꿈결 같은 그 순간들이 놀이의 주도권은 아이에게 있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아이가 원하는 놀이에 즐겁게 동참해주는 엄마가 되자고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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