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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Feb 27. 2020

위기상황 속에서 일상을 유지한다는 것

두려움, 공포, 불안으로부터 하루하루 나를 지탱하기 위한 작은 노력

 온 세상이 공포에 질려버렸다. 코로나19는 발병지인 중국 우한을 넘어, 한국, 일본, 이탈리아, 이란 등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세계 경제도 충격에 휩싸였다. 미국의 3대 주가지수가 모두 연이틀 3% 안팎으로 급락했다. 유럽, 일본, 아시아 증시 역시 약세장이다. 그 누구도, 당장 내일 무슨 일이 펼쳐질지 알 수 없게 됐다.


 지난 월요일 전국 유치원, 초, 중, 고등학교 개학을 1주일 연기한 정부는 오늘부터 내달 8일까지 전국 어린이집 휴원을 결정했다. 4세 아이의 엄마인 나의 경우, 사는 곳 인근에 확진자가 나와 2월 중순에 이미 2주간 어린이집을 보내지 못한 적이 있다. 등원한 지 이제 겨우 1주일 만에 다시 어린이집이 휴원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바로 엊그제 엄마들과 독서모임을 하면서 흘러나왔던 얘기가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갔다. 


 오늘이,
어쩌면 우리 마지막 모임이 될지도 몰라





 코로나19라는 재난은 평온한 일상을 앗아가 버렸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희미해지고 사라지고 있다. 매일 하던 것, 매일 가던 것, 매일 먹던  것, 매일 듣던 것 등 자연스럽게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던 모든 것들에 제약이 생겼다. '나'를 이루어왔던 모든 요소들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매일같이 들려오는 암울한 뉴스는 일말의 기대와 희망마저 주저앉힌다. 기세 등등 퍼져나가고 있는 바이러스는 전 세계에 불신과 공포심도 함께 퍼뜨리고 있다. 급격한 사회적 혼란과 공포심이 세계를 잠식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누굴 믿어야 할지, 어디가 안전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전혀 가늠할 수가 없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소중한 일들로 하루하루를 채우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또는 의식적으로 매일매일 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하루 한 곡 클래식 듣기, 매일 10분 영어 낭독하기, 하루 한 번 요가 스트레칭 하기, 하루에 1가지씩 버리기, 하루 3가지 감사하기, 매일 책 읽기, 가 바로 그것이다. 1년 넘게 실천해온 것도 있고, 반 년정도 된 것도 있고, 두 달 정도 지속해온 것도 있다. 매일매일 내게 주어진 시간에 스스로가 생각하는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여기는 무언가를 행하면서 작은 성취와 만족감을 느끼곤 한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일상의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다. 어린이집, 도서관, 스포츠센터 등이 불시에 휴원 하면서 꾸준히 반복하던 일상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가정 보육을 함에 따라 자연스레 개인 시간도 줄어들었고 아이 컨디션에 맞추다 보니 하루 일과를 예측하기도 힘들어졌다. 문제는, 이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나는 요 며칠, 아니 돌이켜보면 한 주이상 거실만 괜히 서성거렸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요가나 명상을 할 수도 없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수시로 어질러놓고 두려움이 마음을 들쑤시는 상황에서 평정심을 찾기란 무척 어려운 것이었다. 


 나는 간절히 알고 싶어 졌다. 불안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어떻게 하면 나의 몸과 마음을 조금이나마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을까? 암흑 같은 이 시기가 길어진다면, 이렇게 손 놓고 불안을 키울게 아니라, 하루라도 빨리 평정심을 되찾고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나와 가족을 위한 길이란 생각에 미친 것이다.


 

집은 나의 일상을 유지하며 가장 '나다운 나'를 만드는 중요한 공간이다 © Unspalsh



  언젠가 읽은 책 <걷는 사람, 하정우> 속 '나는 나의 기분에 지지 않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의 책을 다시 펼쳐 들었다. 희한하게도, 지금 상황에서 힘이 되는 문장이 나를 찾아왔다.


나에겐 일상의 루틴이 닻의 기능을 한다. 위기상황에서도 매일 꾸준히 지켜온 루틴을 반복하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희미하게나마 보인다. <걷는 사람, 하정우> 165p 



 이 문장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루틴을 반복하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인다'는 그의 말은 내 마음을 환하게 비쳐주었다. 


 나는 다짐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 불확실한 것들에 흔들리지 말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자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들, 손 자주 씻고 마스크 착용하고 사람 많은 밀폐된 곳에 가지 않는 것, 을 하면서 매일 반복했던 나의 소소한 루틴을 실천하자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평온한 일상이 찾아올 것이라고.


 새삼 네덜란드의 철학자, 베네딕트 드 스피노자의 명언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는 비록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의' 사과나무를 심기 위해서 평정심을 찾으려는 노력은 내려놓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사과나무를 심겠다
Even if I knew that tomorrow the world would go to pieces, 
I would still plant my apple tree. 



두려움, 불안, 공포 속에서 나를 지탱하기 위한 하루하루의 작은 노력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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