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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뉴 Feb 28. 2019

당신의 존재가 나의 온전함이 된다

대니쉬 걸 (2015)



  풍경화가 아이나 베게너는 누구보다도 자신을 이해해주며, 화가 생활을 함께 하는 자신의 아내인 게르다 베게너를 누구보다 사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평화로울 줄만 알았던 두 사람의 삶에 '릴리 엘베'가 찾아오면서, 그들의  일상은 송두리째 달라진다. 게르다의 초상화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여자 모델의 지각이 잦아지고, 마감을 맞추기 위해 그녀는 자신의 남편에게 스타킹을 주면서 초상화 모델을 부탁하는데, 그때 아이나의 마음속 늪에 감춰져 있던 '릴리'가 세상 밖으로 나온다. 아이나는 자신 안에 있는 여성성을 확인하려 드레스룸 안에 들어가 전신 거울에 자신의 알몸을 비춰보기도 하고, 유곽 여인을 보고 그녀의 포즈를 따라 하면서 자신이 여자임을 상상하기도 하는 과정에서 심한 젠더 디스포리아를 겪게 된다. 결국 자신 안에서 릴리의 존재가 더 커져버린 그는 성전환 수술을 받을 것을 결심한다.


릴리 엘베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는 젠더에 대한 시대적인 몰이해 속에서도 온전한 자신으로서의 삶을 찾으려 애썼던 용감한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따라서 주인공은 게르다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인 동시에 이기적인 인물로 묘사될 수밖에 없다. 그의 어려움에 대해서 이해하고 공감하지만, 영화에서는 그가 너무 자신의 문제에 휩싸여서 게르다는 전혀 생각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 또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나는 자신의 내성적인 성격을 핑계로 그녀의 첫 단독 전시회 파티에 참여하지 않고, 그녀가 '남편'이 보고 싶다고 울부짖을 때조차도 자신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게르다는 그를 누구보다도 가장 잘 이해해주며 끝까지 사랑한다. 아이나가 처음 게르다의 잠옷을 몰래 입었던 것을 게르다에게 들켰을 때도, 그녀는 비난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게르다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을 수도 있으나, 그녀는 그가 드레스를 마음껏 입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사교적인 자리에서 늘 연기하는 기분을 느꼈던 아이나가 ‘릴리’로서 자유로울 수 있게 해 주었다. 모든 의사들이 남편을 ‘비정상’으로 몰아갈 때, 게르다만이 자신도 ‘그를 여자라고 생각한다’며 릴리의 존재를 인정했고, 그로써 사랑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미치지 않았다’고 그를 다잡아주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수술 후에 릴리는 더 이상 그녀의 남편 아이나일 수가 없는데도, 그녀는 계속해서 릴리의 곁에서 그를 이해하고 돕는다.

놀랍게도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실제 게르다와 아이나의 모습


  만약 게르다의 온전한 사랑이 없었다면, 아이나가 온전한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릴리’를 찾을 수 있었을까? 이 영화의 제목인 <대니쉬 걸>은 언뜻 보기엔 릴리를 말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덴마크 여자(Danish Girl)’라는 말이 등장하는 장면은 아이나의 옛 친구이자 미술상인 한스가 전화통화를 하던 중 “끊어야겠어. 대니쉬 걸이 기다리고 있어서.”라고 말할 때다. 고통스러워하는 남편의 어릴 적 친구를 찾아와 도움을 구하기 위해 초조하게 기다리는 덴마크 여자가 바로 게르다였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릴리 엘베를 불러낸 장본인이면서 그녀의 모습을 화폭에 담는 대가로 남편이자 친구였던 그를 동시에 떠나보내야 했던 게르다, 그리고 그녀의 사랑과 지지에 힘입어 세상에 맞서 온전한 자신을 찾으려 고군분투했던 릴리 두 사람 모두의 이야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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