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트로보 Jan 15. 2019

<그린북> 실화 왜곡 논란? 물증은 영화 속에 있었다!

영화 <그린북>은 1962년, 명망 높은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가 인종차별이 노골적인 남부로 콘서트 투어를 떠나기 위해 백인 운전사 겸 보디가드 토니를 고용해 여정을 함께 하게 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려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영화에 대한 호평에 힘입어 이미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각본상과 작품상, 남우조연상(마허샬라 알리) 트로피를 손에 넣었고 오는 3월 개최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유력한 수상 후보작으로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개봉이 가까워지며 돈 셜리 박사의 실제 유족들로부터 <그린북>이 실화를 크게 왜곡했다는 항의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극중에서 돈 셜리 박사는 정이 두텁고 왁자지껄한 토니 가족과는 달리 형제들과 연락도 닿지 않는 아주 외로운 처지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돈 셜리 박사가 동생들을 키우다시피 해 돈독한 사이였고, 서로 연락이 끊긴 적도 없었다고 한다.

영화에서 돈 셜리 박사는 이렇게나 외로운 사람으로 보여진다


또한, 영화에서는 돈 셜리 박사가 흑인으로서 스테레오 타입에 갇히는 걸 경계해서 프라이드 치킨도 입에 댄 적이 없고 아레사 프랭클린처럼 유명한 흑인 뮤지션도 아예 모르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돈 셜리 박사는 사라 본이나 듀크 엘링턴 등 흑인 뮤지션들과 친분이 두터웠고, 유명한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지지해 인종차별 반대행진에도 참여하는 등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인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프라이드 치킨을 먹어본 적도 당연히 있고 말이다.

극중에서 흑인음악에 대한 경계심을 '백인인 토니의 도움으로' 극복한 돈 셜리.........


무엇보다도 유족들의 주장에 따르면 돈 셜리 박사는 토니 발레롱가와 영화에서처럼 우호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1962년도 남부 콘서트 투어에 운전기사 겸 보디가드로 고용을 했던 것은 사실이나 8주간의 투어 일정 전체를 함께 하지 않았다. 영화에서도 묘사된 바 있지만 운전기사로 고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차 문을 열어주지도 않고 가방도 들어주지 않고 운전기사 모자를 제대로 쓰고 다니지도 않았기 때문에 결국 돈 셜리 박사로부터 해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둘 사이에 고용주-피고용인 이상의 우정이 싹틀 수가 없었음은 물론이다.

극중에서 프라이드 치킨을 통해 화기애애해진 두 사람......


영화 <그린북>의 크레딧을 보면 ‘닉 발레롱가’라는 이름이 두 번 등장한다. 영화의 각본가이자 프로듀서로서 말이다. 극중에서 비고 모텐슨이 연기한 토니 발레롱가의 실제 아들이 시나리오를 쓰고 제작자로도 참여한 것이다. 이야기가 토니 발레롱가 입장에서 그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닉 발레롱가가 영화에 얼마나 빈틈없이 개입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몇 가지 공개된 바 있다.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의 식사장면에 토니의 가족들이 잔뜩 등장하는데 이들이 실제로 토니 발레롱가, 닉 발레롱가의 가족과 친척들이라고 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자신의 가족, 친척들을 캐스팅하기 위해서 피터 패럴리 감독 앞에서는 비고 모텐슨이 그 사람들을 캐스팅해주길 원한다고 말하고, 비고 모텐슨 앞에서는 피터 패럴리 감독이 실제 가족들을 캐스팅하기로 했다고 양쪽에서 말을 꾸며댔던 것이다. 두 사람은 이 사실을 영화가 완성이 된 이후에나 알게 되었다고.


<그린북>의 각본과 제작에 참여한 닉 발레롱가와 아버지 토니 발레롱가


여러 매체에서 실화 왜곡 ‘논란’이 있었다는 사실이 보도되었고 이를 알고는 있었지만 실화를 영화화할 때 얼만큼의 각색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린북>을 보러 극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실제로 영화는 만족스러웠다. 우아하기 그지없는 예술가와 나이트클럽 기도 출신 무식쟁이가 부딪히며 벌어지는 불협화음이 꽤 유쾌하고, 때로는 적나라하고 때로는 은근한 인종차별에 함께 맞서다 쌓인 둘의 우정이 제법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영화 본편이 끝나고 엔드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 머리를 얻어맞는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가 훈훈하게 마무리되고 돈 셜리 박사와 토니 발레롱가 등 실제 인물들의 사진이 뜨면서 그들의 남은 생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는 문구가 보여졌다. 대충 돈 셜리 박사는 그 이후로 음악활동을 어떻게 했고, 토니 발레롱가는 뉴욕의 나이트클럽에서 오래오래 일했고, 두 사람은 2013년 몇 개월 차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우정을 나누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선생님? 1962년부터 2013년까지 장장 50년 넘게 우정을 나누었다는 두 사람이 왜 함께 찍은 사진이 없죠? 그렇다. 돈 셜리 박사와 토니 발레롱가가 오랜 기간 동안 우정을 나누었다는 자막 위에는 서로 어깨동무라도 하고 찍은 투 샷이 아니라 두 사람이 각자 따로 찍은 독사진 두 장이 나란히 보여졌던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기 전도 아니고 2013년 작고한 이들이 친구였더라면 같이 찍은 한 장이 없을 리가 없다. 영화가 사실에 기초했고 둘의 우정이 진짜라고 누구보다 주장하고 싶은 제작진이 손에 넣지 못했다면 그런 사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닉 발레롱가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가장 명백한 증거가 영화의 마지막에 제시되자 영화를 통해 느꼈던 감동이 한 순간에 파사삭 부서져 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 우정........... 가짜.........;;



흠을 잡는 김에 하나만 덧붙이자. 영화에서 토니 발레롱가는 뉴욕 외곽 브롱스의 가난한 동네에 사는 이탈리아 이민 2세이다. 그런데 (실제 닉 발레롱가네 가족이 출연했으니 너무도 당연하게) 온가족이 찐 이탈리아계인 와중에 주인공 토니를 연기하는 비고 모텐슨만 KTX를 타고 봐도 도저히 이탈리아계로 보이지가 않는 것이다.

실제 이탈리아계인 린다 카르델리니 vs 덴마크계인 비고 모텐슨

잘생기면 알 파치노, 못생기면 조 페시, 근육을 키우면 실베스터 스탤론, 덩치를 키우면 쿠엔틴 타란티노 대충 이런 얼굴이 이탈리아계다. 파란 눈동자에 좁고 높은 콧대, 그닥 곱슬거리지 않는 갈색 머리칼을 보면 이 남자가 남유럽의 뜨거운 피를 이어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하다. ‘~슨’으로 끝나는 이름을 보면 짐작할 수 있지만 비고 모텐슨(Viggo Mortensen)은 아버지가 덴마크인인 북유럽 혈통이다.  


덴마크의 아들, 비고 모텐슨


영화에서 토니가 앵글로색슨계 주류 백인이 아닌 이탈리아계라는 설정은 꽤 중요하게 다루어 진다. ‘발레롱가’라는 성을 남부 상류층 앵글로색슨계 백인들이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장면이 여러 번 보여지고, 영화 후반부에 흑인 야간통행 금지구역이라며 시비를 걸어온 경찰에게 토니가 박사를 두고 ‘나의 보스’라고 밝히자 “너도 반쯤 깜둥이라 흑인을 모시고 다니는 군? 하며 이탈리아계를 비하하는 장면도 나온다. 또한 이탈리아계가 가족 간의 유대가 특히 돈독한 걸로 유명하기 때문에 극중에서 외로운 사람으로 설정된 돈 셜리 박사와의 대조가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비고 모텐슨이 압도적으로 연기를 잘하는 배우이긴 하지만 할리우드에 이탈리아계 배우가 없는 편도 아닌데, 도대체 왜 실제 이탈리아계 배우를 캐스팅하지 않았는지 영화를 다 보고 난 지금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