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마다 소풍 Oct 30. 2020

예쁜 옷 입고 출근하고 싶다

운동화 신고 미국 학교에 출근하는 특수학급 보조교사의 작은 소망


생존 영어로 미국 학교의 특수학급에서 보조 교사로 일하고 있는 한국 아줌마가

미국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생존의 기술, 그리고 그 몸부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편안한 티셔츠에 청바지나 반바지 그리고 운동화. 그것이 학교로 출근하는 나의 교복이 된 지 삼 년이 되어간다.

가끔 생각한다. 다시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고 출근해보고 싶다.




내가 초등학교 교사로 초임 발령을 받던 시절만 해도 선생님에게 청바지가 웬 말이냐고 하던 교장 선생님도 있었는데, 지금은 교사들의 복장이 많이 자유로와졌다.

하지만 여전히 학생들 앞에 서서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로서의 기본 스타일은 존재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미국에 오기 전까지 내 옷장에는 교사의 느낌이 나는 옷들만 가득했다.

누가 지적을 하지 않는데도 교사로 십삼 년을 사는 동안은 교단에 서는 사람으로서, 매일 만나는 아이들과 언제 어디서 마주칠지 모르는 학부모들을 의식하며 옷이나 신발을 사고 입고 신으며 살았다.

품위까지는 아니더라도 교사의 향기가 느껴지는 옷차림을 하는 교사가 되려 애쓰며 살았던 것 같다. 

대학시절 교육학 교수님께서 강의 중 매일 자신들 앞에 서는 똑같은 교사를 내내 바라봐야 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옷차림에 신경을 써야 한다면서, 수업도 지루한데 교사의 옷차림도 지루하면 학생들이 얼마나 재미없겠냐는 말씀을 한 적이 있었다. 

교직을 꿈꾸던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는지 교수님의 강의 내용은 다 잊었음에도 넥타이나 스카프 색이라도 바꿔가며 출근하라는 말씀은 교직생활 내내 귀에 맴돌곤 했다. 

그래서 교직에 있는 동안 고급진 옷은 아니어도 어제와 다른 분위기의 옷차림으로 아이들을 맞이하려 마음을 쓰곤 했다.


얼떨결에 남편을 따라 미국에 와서 제일 좋았던 것이 무엇을 입건, 어떤 것을 신든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자유로움이었다.  

시선을 신경 쓸 필요 없는 나라에서 전업주부로 살다 보니 옷차림은 점점 더 편안하고 자유로와졌고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게 일상이 되었다.

가끔 기분 내키는 날에는 나름 조금씩 멋을 내며 입는 것에 신경을 쓰기도 했지만 내 맘대로 내키는 대로 입고 신는 생활에서 오랜만에 경험해보는 해방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런데 특수학급 보조교사 일을 시작한 이후 슬리퍼나 조금 멋나는 옷차림조차 사치가 되었다.

언제 누가 어떻게 무엇을 내 옷에 묻힐지 모르는 데다가 언제든 아이들 뒤를 쫓아갈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 특수학급 보조교사라는 일은 나에게 운동화에 티셔츠와 바지라는 교복을 입게 만들었다.

교사스럽던 옷차림을 한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 만큼 특수학급의 보조교사로의 옷차림이 일상이 되었고 다시는 교단에 오를 일이 없게 된 나의 옷장에서 교사의 향기가 묻어있던 옷은 점차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편안함과 효율성이 느껴지는 옷이 채워졌다.

버리지 못하고 가져왔던 구두가 있던 신발장에는 운동화가 늘어났다.  

물론 옷장에는 아직도 차마 정리하지 못한 내 미련이 묻어있는 정장이나 스커트와 블라우스가 몇 벌 남아있다.

미국에 와서 손에 꼽힐 정도밖에 안 입었는데도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거나, 교단을 떠난 후 한 번도 입지 않았던 그 옷들이 눈에 띌 때면 맵시 나게 입고 또각또각 소리가 나는 구두를 신고 출근하던 시간이 그리워지곤 한다.




미국 학교의 교직원들의 복장은 매우 자유롭고 개성적이다.

나처럼 보조교사로 일하거나 학교 안전요원이나 학교 관리를 하는 이들은 대부분 운동화와 티셔츠를 입는다.

어쩌다 치마를 입더라도 움직임에 불편함이 없는 형태에 편안한 신발이 필수다.

선생님들 중에는 동네 슈퍼 가듯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사람도 있고 편안하게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교정에서 내 눈을 끄는 사람들은 교사의 느낌이 나거나 전문직 여성의 향기가 풍기는 옷을 입는 멋쟁이 여선생님들이다.

운동화 바닥에 불이 나게 학교를 누비다가 가끔 맵시 나게 차려입고 또각거리며 교정에서 지나는 그 선생님들 곁을 지나칠 때면 문득 그 옷차림을 부러울 때가 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 선생님들의 차림새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한다.


그들이 입은 옷의 브랜드나 가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옷차림에 따라 직업의 경중이나 고저가 정해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보기 좋고 세련되게 입고 윤이 나는 구두를 신은, 전형적인 일하는 여성 같은 이미지의 옷차림을 하고 출근하는 그 모습이 부럽다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옷차림은 나 자신과 나를 만나는 다른 이들 그리고 내 생활에 리듬과 활력을 준다고 생각한다.

어제와 다른 분위기와 색채의 옷을 입는 아침이면 새로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매일 같은 학교의 특수학급으로 출근하는 쳇바퀴 같은 생활이지만 분주한 아침에 짬을 내어 옷을 골라 입는다.

물론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특수학급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데는 무엇보다 안전화 효율이 중요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틀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래서 편안한 옷차림에 운동화를 신더라도 나 스스로에게 변화를 주고 내 개성과 감성을 보여줄 수 있도록 신경을 쓴다.

내가 한 번 더 생각하고 옷을 입었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은 아니다.

사실 오늘은 어떤 옷을 입고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까 고민한 것을 나 자신밖에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작은 기분전환으로 나의 하루가 특별하게 시작되는 기분이 든다.


오늘도 우리 학교 멋쟁이 선생님들이 세련된 모습으로 교정을 오가는 것을 보았다.

아직도 기저귀를 차는 우리 반 1학년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교실로 돌아가다 나도 모르게 그 선생님들을 보느라 걸음이 느려졌다.

정신을 차리고 교실로 돌아가는데 괜스레 씁쓸함이 밀려드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그런 기분이 들었던가 싶을 정도로 다시 남다른 우리 반 아이들의 폭풍에 휩쓸렸지만 말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선생님이라고 보여주는 정갈하면서도 맵시 있는 우리 학교 멋쟁이 선생님들을 보면 그런 옷차림이 당연했던 시간이 그리워지곤 한다.

특수학급의 보조교사는 입기 어려운 옷차림으로 수업을 하는 그 선생님들을 볼 때면 10여 년 전 교단에 섰던 시간과 그때의 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가끔 마켓에서 전문직에서 일을 하고 있음을 품어내는 정장 차림으로 퇴근길에 장을 보러 온 여성의 옷차림을 볼 때면 다시 그렇게 차려입고 출근했던 시간으로 돌아가 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누가 들으면 웃을지도 모르지만 가끔 혼자 생각한다.

나도 다시 예쁜 옷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옷에 어울리는 구두를 신고 출근해도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입을 일 없다고 지나쳤던 옷가게의 정장 코너에서 맵시 나는 옷을 한 벌 사고 싶다.

그 맵시 나는 옷을 예쁘게 입고 다시 교단 위에 서고 싶다.  



이전 17화 틀린 답이 없는 미국 학교에서 정답을 배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