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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Jan 16. 2021

미국 학교의 신기한 교장 선생님

이상하고 아름다운 교장 선생님이 있는 미국 학교

미국 초등학교에서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 중 특별히 신기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교장 선생님이다.

그 신기한 교장 선생님은 노크도 없이 교실에 들어서고 예고도 없이 직원들의 근무 공간에 들어선다.

전교생의 이름을 다 알고 있고 가끔 우스꽝스러운 옷차림을 하며 집에 있는 개를 학교에 데려오기도 한다.

그 이상한 교장선생님은 특수학급 교사들의 SOS 신호에 구조하러 달려오기도 한다.




아무 때나 불쑥 교실에 들어오는 미국 학교 교장 선생님


한국을 떠난 지 제법 시간이 흘러 요즘은 한국 학교의 현장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한국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때는 교육청 장학 지도를 위한 공개수업이나 학부모 수업 참관이 있는 날에나 교장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와 내 수업을 지켜보곤 했다. 오래전 학교 환경미화 심사 같은 것이 존재하던 시절에는 교장 선생님을 위시한 교사들 떼로 몰려다니며 이 교실 저 교실을 둘러보기도 했지만 그런 정해진 날이 아닌 이상 교장 선생님은 이 이따금 복도를 지나면서 교실 안을 들여다 보기는 해도 수업 중에 교실에 불쑥 들어오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미국 학교에서 일하면서 놀란 것 중 하나가 교장 선생님이 예고도 없이, 아무 때나 불쑥불쑥 교실에 들어와서 수업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하고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아이들의 활동에 참견하는 모습이었다. 간혹 어떤 문제나 일을 상의하러 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학교를 둘러보다 노크도 없이, 소리도 없이 교실에  스윽 들어온다. 가끔 교육청이나 다른 학교의 방문객이 있는 경우 예고를 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때는 갑자기 우르르 방문객을 몰고 들어와서 교실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교사나 학생들에게 말도 걸기도 한다.

그런 방문이 교사나 수업 평가를 위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누군가 불쑥 들어와서 보고 있으면 어찌 되었든 불편할 것인데, 미국 교사들은 교장 선생님의 뜬금없는 방문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수업을 하다가도 아이들이나 교실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특히 특수학급 같은 경우 아이들이 말썽을 부릴 때 들어오는 교장 선생님은 무척 반가운 존재다. 말썽을 피우던 아이들의 분위기가 환기되기도 하고 아이들이 얼마나 심하게 난리를 치는지,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교장 선생님의 눈으로 직접 보고 교실에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알게 되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이들과 씨름하다 보면 어느새 교실에 들어와 있는 교장 선생님의 모습에 익숙해졌지만 보조교사를 시작했던 초반에는 교실을 책임지는 담임교사가 아님에도 교장의 소리 없는 방문에 당황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곤 했다.

 

전교생의 이름과 형제들, 심지어 부모의 이름도 외우는 교장 선생님


미국인들은 이름을 참 잘 기억한다. 상대방의 이름을 들으면 그것을 기억해서 이름으로 불러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 문화 때문인지 학교의 교직원들도 대부분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한다. 특히 교장 선생님은 전교생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 아이들의 형제자매에 대해 묻기도 하고 학부모를 만나면 학부모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내가 가르쳤거나 우리 반에 있는 아이들의 이름밖에 모르는 교사로, 학교에서 유명한 문제가 있는 아이나 학부모 임원의 자녀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교장 선생님 아래서 교직생활을 했던 나에게 미국 학교 교장이 교내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는 것은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다. 교직원들은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아이들은 교직원들의 이름을 기억하며 서로 이름을 부르는 미국 학교의 문화는 교직원과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하는 것 같고, 교장 선생님도 그 물꼬를 트는 선두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하다.  


교사들의 SOS에 응답하는 교장 선생님


오래전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교장실에서 교장 선생님과 상담을 나누고 교장 선생님이 아이들의 사사로운 문제들까지 개입하는 장면을 볼 때면 그 모습이 실제 하는지 궁금했었다. 드라마나 영화 속 교장 선생님과 학생들의 관계는 실제 미국 학교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미국 학교에서 일하면서 경험하게 되었고, 그런 그들의 모습은 내가 한국에서 살면서 가졌던 교장이라는 위치에 대한 편견을 깨 주었다.

특수학급인 우리 교실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런 경우 우리는 교장 선생님에게 SOS를 친다. 아이들을 교장 선생님에게 데리고 가거나 지나가는 교장 선생님을 교실에 모셔와서 도움을 받는다. 교장 선생님은 스스럼없는 구조 응답으로 교실에 와서 아이들은 말썽을 멈추기도 하고 난리 법석이던 교실이 환기시켜 주기도 한다. 스쿨버스를 타지 않겠다며 버티는 아이를 스쿨버스에 데려다 주기도 하고 싸우는 아이들 사이에서 중재자가 되어주기도 하는 미국 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교사의 SOS에 언제든 손을 내밀어주는, 어쩐지 나와 한편인 존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들을 이름을 기억하며 교실에도 수시로 들어오는 교장 선생님은 전교생의 문제나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도망가는 남다른 꼬마를 쫓아가다 교내에서 마주치면 말 몇 마디에 상황을 대강 눈치채고 해결사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남다른 꼬마의 말썽에 난처한 경우 우연히 마주치는 교장 선생님은 간혹 나와 같은 특수학급 보조교사를 구해주는 슈퍼 히어로가 되기도 한다.

  

피터팬과 엘리스를 자처하는 교장 선생님


미국 학교의 특징 중 하나가 옷차림이나 분장으로 행사를 즐기는 것이다. 잠옷이나 내복을 입고 학교에 오는 Pajama day 나 독특하고 우스꽝스러운 양말을 신는 Crazy socks day 또는 Halloween에 앞장서서 분장과 옷차림에 신경 쓰는 사람 중 하나가 교장 선생님이다. 그런 행사에 튀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미국인들의 특성 탓에 대부분의 교직원들이 열심히 꾸미고 참여하는데 교장 선생님의 열정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잠옷을 입교 교내를 누비고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나 피터팬 복장으로 아이들 이름을 부르는 교장 선생님이 전혀 이상하지 않고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모습이 전혀 당연하지 않게 느껴질 만큼 처음에는 무척 낯설었지만 어느새 익숙해졌는지 지금은 교장 선생님의 옷차림과 분장에 나도 모르게 엄지 척을 자연스럽게 날리게 되었다. 


개를 데려오는 교장 선생님


루시라는 이름의 세 살짜리 골든 리트리버(Golden Retriever)를 키우던 전임학교 교장 선생님은 종종 개를 학교에 데려오곤 했다. 교장 선생님이 루시를 데려오는 날이면 아이들은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교장 선생님과 루시를 졸졸 따라다니곤 했다. 간혹 교장 선생님이 공이나 장난감을 던져 루시가 잡으러 달려가면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쳤다. 전교생의 관심에 루시가 지칠 때쯤 되면 교장 선생님은 루시를 교장실에 묶어 두었고 교장실 옆 사무실을 지나는 사람들은 교장 선생님 대신 루시에게 인사를 건네곤 했다. 교장 선생님이 루시를 데려오는 날은 전교생이 술렁였고 교장 선생님은 그런 분위기를 즐기며 종종 루시를 학교에 데려오곤 했다.

 



미국 학교에서 몇 년간 근무하면서 내가 한국에서 가졌던 교장이라는 직책과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이 완전히 바뀌었다. 한국에서 학교에 근무하던 시절, 어쩐지 부담스럽고 우리 교실에 찾아오는 것이 달갑지 않았던 존재로 느꼈던 교장이라는 이미지가 미국에서 만난 이상하고 아름다운 교장들을 통해 반갑고 친근한 존재로 바뀌었다. 내가 경험한 미국의 교장 선생님은 더 이상 위엄과 권위의 상징이 아니었고 교장실이 아닌 교실과 학교 곳곳 그리고 아이들 속에 함께 하는  친근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노크나 허락도 없이 불쑥 교실에 들어오고 아이들의 언니와 형, 부모의 이름까지 기억하며 아이들보다 더 독특한 의상과 분장으로 출근하기도 하고 개를 데려와서 아이들과 같이 놀기도 한다. 그 신기하고 재미있는 교장선생님은 우리 반의 SOS 구조대가 되어주기도 한다.

오늘도 우리 학교 교장 선생님은 쉬는 시간에 테이블에 앉아 아이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이 교실 저 교실에 다니면서 아이들과 같이 웃고 있었다. 어린 시절 우리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러주고 우리 교실에 와서 내가 무엇을 배우는지 궁금해했더라면 어땠을까? 아이들이 속을 섞여서 한숨이 날 때 교실에 들러 이야기를 들어주는 교장 선생님과 함께 근무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오늘도 아이들 속에 있는 교장 선생님 옆을 지나치는데 그런 생각이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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