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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Oct 06. 2021

교실 뒷자리에서 보는 교실 풍경은 다르다

미국 학교 교실 뒷자리에 앉게 된 한국 아줌마의 색다른 경험

십이 년의 정규 교육과정과 대학 생활을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교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본 적이 없었다. 미국 학교의 특수학급 보조교사로 일하면서 특수반 아이가 일반 학급 통합수업을 갈 때 동행하게 되었고 생전 처음 교실의 맨 뒷자리에 앉게 되었다. 교실 맨 뒷자리에서 보는 교실의 모습은 내가 경험해왔던 교실 풍경과 사뭇 다름을 매일 체험한다. 




새 학년이 시작되면서 나는 7명의 2학년과 1학년 1명으로 구성된 특수학급 13번 방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새 학년 두 번째 주부터 점심 쉬는 시간이 끝나면 13번 방의 남자아이 둘을 데리고 통합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건너편의 2학년 일반 학급 14번 방으로 가고 있다. 그중 한 아이는 내가 1:1로 맡고 있는 필립이고 다른 아이는 일반학급으로의 편입을 준비하고 있지만 아직 혼자 통합 수업 참여가 어려운 이튼이다. 우리는 오후에 한 시간 반 남짓 14번 방에 머무르는 객식구인 관계로 교실의 맨 뒷자리에 추가로 놓인 자리에 앉는다.


오늘도 14번 방 담임 Mrs. 프리가 점심 쉬는 시간의 땀과 열기로 범벅이 된 아이들을 추슬러 수업을 시작했다. 선생님은 교과서를 펴라, 준비가 된 사람은 연필 든 손을 들어 올려라, 1번 문제를 읽어라 주문을 하면서도 웃음을 놓치지 않고 수업 분위기를 잡으려 애를 썼다. 나는 선생님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양 쪽에 앉은 필립과 이튼의 수업 준비를 도왔다. 스스로 문제 푸는 것이 어려운 필립과 이튼을 위해 종이에 열심히 계산 과정과 답을 적어주면 두 아이는 내가 적어준 것을 책에 베끼는 방식이었다. 베껴 쓰기만 하면 되는 대도 징징대는 필립을 다독이며 수업을 따라가는 것이 숨이 찼다.

그때 교실 왼쪽에 앉은 알렉이 갑자기 울부짖는 소리를 냈다. Mrs. 프리가 수업을 멈추고 알렉이 있는 쪽을 쳐다보자 알렉 건너편에 앉아있던 로라가 "맞아, 넌 꿈 안 꿔."라며 알렉을 위로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알렉은 "나는 꿈을 꾸지 않는다"라고 빨개진 얼굴로 다리를 구르며 소리를 질렀다. Mrs. 프리는 누가 꿈 이야기를 꺼냈냐고 물었고 아이들은 처음 듣는 소리라는 듯 순진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Mrs. 프리는 더 이상 꿈 이야기를 하지 말라며 학급 전체를 향해 엄하게 경고를 한 후 알렉을 달랬고 알렉이 잠잠해지자 다시 수업을 진행했다.


그 과정을 교실 맨 뒷자리에서 지켜보면서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알렉은 정서가 매우 불안정하고 집착증이 심한 아이인데도 부모가 특수학급에 보내는 것을 반대해서 일반학급에서 생활하면서 언어와 정서 치료를 받고 있다. 너무 예민해서 하루 종일 소음을 줄여주는 헤드폰을 착용하고 있는데 어떤 한 가지에 꽂히면 그것에 대해 계속 되물으면서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곤 했다. 오늘 쉬는 시간에 알렉이 운동장에서 자기가 꿈을 꾸고 있냐고 묻고 아이들은 "너는 꿈을 안 꾸고 있다"라고 대꾸하는 것을 보며 '오늘 알렉은 꿈에 꽂혔구나'생각했었다. 나에게도 달려와서 같은 질문을 하기에 "너는 꿈을 꾸고 있니?"라고 되물었다. 다른 사람들이 꿈을 꾸지 않는다고 위로하는 것과 달리 도리어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반문하자 알렉은 '이 반응은 뭐지?' 하는 표정으로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너는 이미 네가 꿈을 꾸지 않는 걸 알고 있네"라고 대꾸했다. 알렉이 같은 질문으로 사람들을 찾아가는 것은 몰라서가 아니라 그런 뜬금없는 질문으로 불안증을 호소하며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자신에 대한 걱정을 맛보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들 꿈을 안 꾼다고 위로하는데 자신에게 반문하는 나의 태도에 당황했는지 알렉은 다른 사람을 찾아 질문하기 위해 나를 놓아주었다.


매일 비슷한 상황을 만드는 알렉과 생활하는 14번 방 아이들은 이런 알렉의 행동과 반응에 익숙하다. 오늘은 아침부터 수백 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냐고 묻고 아니라는 대답을 했던 아이들은 오늘 알렉을 자극하는 말이 "꿈"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선생님이 수업을 시작하자 알렉의 앞에 있던 노아가 "알렉, 꿈..."이라고 알렉을 향해 속삭이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 말에 교실에 들어와 자신만의 딴생각에 사로잡혀 멍하게 앉아 있던 알렉의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옆의 피터가 "야, 꿈 이야기하지 마"라고 경고하는 척을 하며 알렉을 힐끗거렸다. 알렉은 더 안달이 났고 선생님이 수업을 멈추고 교실의 모두가 자신을 주목하자 로라의 위로하는 대답에 더 흥분해서 소리를 지른 것이다. Mrs. 프리의 험상궂은 표정에 아이들은 찔끔해서 수업에 집중하는 척했지만 나는 아이들이 그 상황을 여전히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가 처음 시작했는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 천진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던 아이들의 눈가에 그 소란이 즐거웠다는 웃음이 스쳐가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교실 뒤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며 나는 마스크에 가려진 아이들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지 않을까 엉뚱한 생각을 했다.




어려서부터 키가 작았던 탓에 내 자리는 늘 교실 맨 앞 줄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면서 키가 쑥 커서 두 번째 줄에 앉아보는 영광을 누리기 전까지 체육시간 줄을 설 때면 항상  첫 번째 아니면 두 번 째였다. 고 3이 되었을 때는 제법 반에서 중간 정도의 키가 되었지만 그때는 선생님들이 키대로 자리를 배치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첫 번째나 두 번째 줄에 앉곤 했다. 늘 앞에 앉았던 탓인지 칠판과 멀어지면 이상스레 불편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직에 몸 담는 동안에는 늘 칠판 앞에 서서 수업을 하는 것이 일이다 보니 내 자리는 여전히 교실 앞자리였다. 그래서 내가 아는 교실의 풍경은 늘 비슷했다. 

학생으로 자리에 앉아있던 시절에 내가 앉은 뒤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날도 있었지만 맨 앞 줄에 앉는 키 작은 나에게는 남의 세상 이야기 같았다.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내가 칠판을 향해 섰을 때 아이들이 내가 볼 때와 다른 엉뚱한 행동을 한다는 것을 느끼고 다 아는 척을 했지만 내 눈을 뒤통수에 붙일 수는 없었다.


미국에 와서 특수학급 아이들을 데리고 통합 수업을 가면서 나는 처음으로 교실 맨 뒷자리에서 보는 교실 풍경을 경험하고 있다. 교실에서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분주하고 소란스러운 일들이 조용히 벌어지고 있었다. 마주 보고 있을 때는 알 수 없었던 아이들의 숨겨진 모습과 음흉한 의도가 속속들이 내 눈에 들어와서 조용히 놀라는 때도 있다. 의도치 않았음에도 보이고 들리는 아이들의 모습과 소리를 경험하며 그동안 내가 알았던 교실 풍경은 실제 교실의 작은 일부분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오늘도 수업과 상관없이 멍 때리기에 들어간 알렉을 일부러 자극하기 위해 속삭였던 알렉 앞에 앉는 노아는 평소 선생님 말을 잘 듣던 착한 아이였다. 그 친구에게 알렉에게 꿈 이야기를 하지 말라며 알렉을 보호하는 듯 행동했던 피터는 부러 더 크게 그 말을 내뱉으며 알렉이 흥분할 것을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선생님이 수업을 멈추고 쳐다보자 꿈을 안 꾼다며 위로하는 목소리를 건넨 친절한 로라가 실은 노아가 처음 알렉에게 꿈에 대해 속삭일 때 킥킥거리며 자기 짝에게 알렉을 보라고 눈짓을 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게 뭘까 알 수 없었던 묘하고 이상하지만 내가 깨닫지 못했던 교실의 숨겨진 풍경들이 하나하나 드러나는 기분이었다. 교단에 서서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이 볼 수 없는 그 작지만 파도를 일으키고 평화로운 듯하지만 위태로운 기류를 일으키는 아이들의 팔랑거림을, 나는 통합수업에 온 특수학급 두 아이의 사이에 앉아서야 보게 되었다. 교실 맨 뒤에 앉아야 보이는 다른 풍경 속의 피사체가 되어서야 내가 알던 교실 모습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차마 일일이 담임에게 고자질할 수 없는 아이들의 자질구레하고 낯선, 조용한 소음 속에 머물면서 나는 교실의 남다른 실체를 마주하고 있다. 

      

내일 교실 뒷자리에서는 어떤 교실 풍경을 마주하게 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모르고 지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는 시시콜콜한 실체들은 마음에 담지 말라고 교실 앞 풍경만 보고 살았던 시간들이 알려주는 듯하다.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images/id-2093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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