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학교에서 학부모에게 선물 받는 법
연말이 다가온다. 상점이나 백화점마다 선물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그 선물 중에는 아이들의 학교 선생님을 위한 선물도 있다. 나는 미국 학교에서 선물 받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내가 근무하는 캘리포니아의 초등학교는 12월이 시작되면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옷차림이나 장신구를 하고 등교하는 아이들과 교직원들로 연말 분위기가 한껏 살아난다. 12월의 포근한 캘리포니아의 햇살 아래 귀여운 방울이 달린 털모자를 쓰거나 털부츠를 신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이나 반짝이는 리본이 달린 빨간 방울 모양의 귀걸이나 루돌프 머리띠를 하고 근무하는 교사와 교직원들을 교내에서 수시로 마주친다. 그러다가 겨울 방학이 시작되는 날이면 크리스마스 파티에라도 온 것 같은 모습으로 학교에 오는 아이들이나 맵시 있게 연말 파티 분위기로 치장한 교직원들이 교정을 장식한다.
이번 주에 우리 학교는 2주 간의 짧은 겨울 방학을 맞이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새해가 있는 겨울 방학을 맞이하는 날,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온몸에 흠뻑 바르고 등교하는 아이들의 얼굴이 유난히 밝고 환했다. 방학의 설렘이 가득한 아이들의 손에는 평소와 다른 특별한 것들이 들려있었다. 바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은 담임교사나 보조교사, 학교 직원들을 위한 선물이었다.
어떤 아이들은 두 팔로 크리스마스의 대표 식물인 포인세티아나 화려한 꽃다발을 안고 교실로 향했다. 눈사람이나 크리스마스트리가 그려진, 자기 등에 멘 가방만큼 큰 선물 가방을 들고 차에서 내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예쁘게 장식된 초콜릿이나 케이크 상자를 들고 신나게 운동장을 뛰어가는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여러 장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들고 교내를 돌며 교장 선생님부터 학교 안전요원들에게까지 카드를 전달하느라 분주한 꼬마 산타들도 있었다. 물론 빈 손으로 학교에 온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선물을 가져온 아이도 선물을 가져오지 않은 아이도 서로에 대해 어떤 참견도 하지 않았다.
미국 학교에서 근무하고 맞은 첫겨울 방학 날, 크고 작은 선물 보따리를 전해주는 학생이나 학부모들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었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나 싶어 두리번거리다가 주변의 담임교사나 다른 보조교사들이 고맙다면서 포옹을 하거나 하이 파이브를 하며 즐겁게 선물을 받아 드는 모습을 보고 태연한 척 그들을 흉내 내면서도 선물을 받는 것이 괜찮은 건지 염려가 되었다. 당시 선물 준 사람 앞에서 선물을 열어보며 감탄사를 내뱉거나 호들갑스럽게 선물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동료들의 모습은 낯설고 신기했다.
오래전 한국의 초등학교 교단에 서던 어느 해부터인가 스승의 날에 받는 선물이 뇌물로 공공연히 언급되기 시작했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선물을 일절 보내지 말라고 미리 안내장을 보냈는데도 선물을 가져온 아이가 있었다. 엄마가 직접 수를 놓아 만든 수건이었는데 서운해서 눈물을 찔끔거리는 아이 편에 학부모의 양해를 구하는 편지와 함께 선물을 돌려보내면서 몹시도 미안했다. 그리고 스승의 날 꽃 한 송이도 받지 않아야 하는 분위기가 당연시되던 무렵 교단을 떠났다.
한국에서 학생이나 학부모가 교사에게 주는 선물이 뇌물로 치부되던 문화를 경험하고 온 탓인지 미국 학교에서 일하면서 한동안 선물을 받을 때면 받아도 되는 건지,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곤 했다. 지금은 선물은 마음의 표현이며 준 사람의 마음에 충분히 고마워하면 되는 것으로, 정말 고맙다면 다소 과장되게 좋아하는 몸짓이나 고맙다는 말 또는 감사카드를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미국인들의 문화에 적응이 되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되돌려 보내는 수건이 든 선물 가방을 들고 서운해서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 하교하던 그 아이의 모습이 종종 떠오르곤 했다.
미국에서는 연말뿐 아니라 학년 말, 교사나 교직원 감사 주간에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거리낌 없이 선물을 하고 교사나 교직원들은 부담 없이 기꺼운 마음으로 선물을 받는다. 선물은 하는 사람의 선택이므로 당연히 선물을 안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선물을 하는 사람도 하지 않는 사람도 서로에 대해 일절 평가하지 않는다. 고마운 마음이 있고 그것을 표현하고 싶다면, 기회가 될 때 거리낌 없이 적당한 물질로 마음을 표현한다.
선물 가방에 초콜릿이나 핸드크림, 쿠기나 양말 같은 5~10불 정도의 크게 부담 없는 것이 들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인지만 때때로 20~30불은 될 것 같은 액세서리나 고급스러운 소품이 담겨있기도 하다. 카드와 함께 5~10달러짜리 커피숍이나 아이스크림 가게 상품권이 들어있을 때도 있지만 아주 간혹 30달러 정도의 금액에 해당하는 식사 상품권이 들어있을 때도 있다.
미국 학교에서는 언제든 선물을 환영한다. 교사와 교직원들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주는 선물을 기쁘게 받는다. 그 내용물이 무엇이든, 가격이 어떻든 그만큼 나에게 고마운가 보다 생각하며 포옹을 하거나 호들갑스럽게 감탄하며 정말 고맙다고 인사한다. 그것으로 끝이다. 그것이 선물을 준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여긴다.
너무도 즐겁게 선물을 준비하고 서로 기꺼운 마음으로 선물을 주고받는 미국인들 속에서 살면서 종종 생각한다. 한국은 왜 선물이 뇌물과 동등하게 여겨지는 문화를 갖게 되었을까? 누군가에 대한 고마움을 선물에 담아 전하고 싶은 마음을 왜곡하고 그런 마음을 기쁘게 받아주지 못하게 된 것일까? 어째서 선물에 숨겨진 뜻이 있는 것으로 변질시키는 문화가 형성된 것일까? 어쩌면 선물을 주면서 마음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 다른 것을 기대하는 마음까지 담는 사람들이 많아진 탓일 것이다. 어쩌면 선물에 담긴 마음만 받는 것이 아니라 선물을 주는 이가 기대하는 무언가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탓일 것이다.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하고 그 선물을 기쁜 마음으로 받는 미국인들의 작은 이벤트가 참 좋다. 기쁘게 선물을 받아 주는 것을 선물 준 사람의 예의로 여기며 사는 그들의 일상이 좋다. 미국이라서 좋은 것이 아니라 선물에 담긴 성의에 고마워하며 주는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주는 그들의 일상이 좋은 것이다. 그래서 나도 연말을 맞아 그들처럼 고마움을 선물에 담아 전했다.
아들이 프로젝트를 마칠 수 있도록 도와준 코치의 가족을 위해 카드와 함께 영화관람권을 전했더니 코치가 문자를 보내왔다.
"와우! 최고야! 영화티켓 정말 고마워. 마침 이번에 새로 나오는 ** 영화를 보려고 했어. 네가 준 티켓으로 가족과 함께 영화 감상 잘할게."
클럽 활동에서 오랫동안 도움을 준 소그룹 카운슬러가 손톱 손질을 받으며 편안한 시간을 보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카드에 네일숍 상품권을 넣어 보냈는데 답변이 왔다.
"네일숍 상품권 너무 고마워. 네 마음이 담긴 카드와 사려 깊은 선물에 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의 고마움을 전해. 즐거운 시간 보낼게. 너도 가족과 즐거운 연말 보내."
고마움을 담아 보낸 선물에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코치와 카운슬러의 인사에 나의 고마움이 충분히 전달된 것 같아 선물을 보낸 내가 더 행복했다.
겨울 방학을 맞이하고 기분 좋게 집에 돌아온 오후, 선물에 담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마음 담긴 선물을 주며 살 수 있어서 참 좋다고, 보조 교사인 나에게까지 선물을 준 학부모와 학생들의 마음을 하나하나 열어보며 생각했다.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images/id-4669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