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응하는 삶 과연 괜찮은가
지난 목요일 밤, 팀원과 같이 야근하다가 이런 대화를 나눴다.
대화 1
팀원 : 클라이언트 잡 안 힘들어요?
나 : 힘들었는데, 같이 하니까 나아졌어요. 요령이라는 게 생겨서 그런가 봐요.
대화 2
팀원 : 목표가 있고, 그걸 성실히 하는 사람들은 부러워요. 유림님은 목표 있어요?
나 : 열심히 성실히 한다고 다 잘 되는 것도 아니고, 운이 많죠.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대응하며 사는 게 최고라고 생각해요. 저는 대표가 될 줄도 몰랐고, 이렇게 팀원이 많이 생길지도 몰랐어요. 요즘 같이 불확실한 시대에는 목표를 세우는 것보다 자기 위치를 알고 잘 대응하는 스킬이 중요하다 생각해요.
주말 저녁 집 앞 카페에 나와서 오랜만에 혼자 있는 이 시간, 갑자기 이 대화가 생각났다.
열심히 하지 않는 자신을 게으르다고 비하할 필요 없다. 그런 위로가 하고 싶었던 맘도 있었다. 그 팀원은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하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그 뒤에 말이 내 현재 상황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려는 참 부끄럽기 짝이 없는..? 말이다.
지난주 예기치 못한 변수들이 생기고, 코 앞에서 프로젝트들이 엎어지고 다시 리셋되거나,
급하게 처리하거나 신경을 못썼던 일들에서 문제들이 하나둘씩 터지면서 수습하느라 애먹었던 일주일을 보내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 아 클라이언트 잡....(우울..)
그래 클라이언트 잡 장단점이 분명하지.
단점은 클라이언트마다 일하는 방법을 새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좋다고 생각하는 포인트가 회사마다 다르다.
어떤 곳은 디자인적 요소가 많아야 좋고, 어떤 곳은 깔끔해야 좋고, 어떤 곳은 웃긴 콘텐츠가 좋고 어떤 곳은 힙하고 세련된 게 좋고.
이런 취향은 담당자와 그 회사의 성향 윗사람의 성향 그 회사의 전략과 맞닿아있기에. 외주 사에서 주장보다는 회사의 입맛으로 결정되고 흘러가게 되어있다.
그리고 우리는 다 잘할 수 없다. 잘하는 영역의 콘텐츠, 톤이 무엇인지 좀 더 고민해보자. 그걸 보고 찾아오도록.
둘째. 클라이언트와 방향성 커뮤니케이션에 시간과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클라이언트 측에서 신경을 많이 안 쓰는 곳은 일하는 과정은 편하지만 마지막에 힘들다.
어 이런 결과물 내가 원한 게 아니었는데? 이거 보고했는데 위에서 아니래요.라고 귀결되는 곳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반면, 클라이언트 측에서 많이 신경 쓰는 곳은 일하는 과정에서 의욕이 많이 떨어지고, 결과물에 애정이 잘 안 생긴다...
신경을 많이 쓰는 곳과 일할 때 애정을 만드는 방법. 이건 좀 더 고민해봐야겠다.
셋째. 에이전시에게 가장 큰 프로젝트 성과는 좋은 포트폴리오다.
물론 돈을 위한 프로젝트, 신입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비교적 낮은 난이도의 프로젝트들도 필요하지만..!
그래도 좋은 포폴을 쌓을 수 있는 클라이언트를 발굴하자.
그래도 이만큼 할 수 있었던 것. 다 다른만큼 보는 시각도 다르고, 그 보는 시각에 분명히 장점이 잇기에
프로젝트할 때마다 클라이언트한테 배운 게 많다.
디자인을 중시하는 곳에서는, 좋은 디자인을
확실한 전략과 기획을 좋아하는 곳에서는, 기획력을
그리고 문제가 터지고 수습하는 생활을 반복하면서, 대응력을..!!
사실 이 대응력은 나를 위해 만든 말이다.
괜히 많이 기대했다가 실망하지 않도록, 문제가 터지거나 힘든 일이 생겨도 마음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 들 힘들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다.
목표가 없이 대응하며 산다고 했던 게 부끄럽다.
가능한 즐겁고, 가능한 세상과 소통하고, 가능한 주변 사람들에게 신뢰와 믿음을 쌓고 마음을 나누며 살고 싶다.
요즘 나는 그 반대라 좀 머리가 아팠던 것 같다.
그러고 있기엔 너무 좋은 날씨고,
오랜만에 쓴 이 글은 의식의 흐름대로 무 맥락으로 흘러가는구나.
2022년 4월 17일의 일기